"국적 원치 않아…차별 없는 삶 바랄 뿐"
재능 발산할 기회 전무
학교 필수품 제공 차별
"체류자격 부여만이라도"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미등록 이주아동들은 꿈이 있어도 작은 것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다.

방글라데시 출신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아이들을 밀양에서 만났다.

한 부부 슬하에 5살 난 여아가 있고, 또 다른 부부는 10살, 5살 형제를 키우고 있다. 부모들은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이 한국 사람임을 강조하며 차별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아이들과 부모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꿈도 사치라는 아이들 = 1년 늦게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알로는 미등록 이주아동이라는 주홍글씨에 알게 모르게 차별을 받고 있다.

우선, 대다수 학생이 할 수 있는 방과 후 수업도 못하고 있다. 과학자가 꿈인 이알로는 가장 하고 싶은 수업이 '창의수업'인데, 다른 친구들이 부럽다. 배드민턴이나 축구에도 소질이 있지만 이 역시 대회 출전 자체를 할 수 없어 하지도 못한다.

이알로 어머니 수잔(27) 씨는 "공부도 잘하고 체육도 잘한다. 선생님이 배드민턴이나 축구를 시키고 싶어하지만 할 수 있는 여력이 안 되는 게 그저 안타깝다"며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할 수 있고, 안전한 나라에서 살기를 바라는 게 욕심인지 반문하게 된다"고 했다.

이알로는 학교생활에서도 은연중 차별을 받는다. 모든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볼펜이나 수첩, 공책이 이알로에게는 제공되지 않는다. 미등록 이주아동인 탓이다.

수잔 씨는 "아들이 가끔 왜 나는 이런 것을 받지 못하느냐고 물어본다. 아직은 어려서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 않고 필수품을 사주는 것으로 넘어가지만 더 성장하면 아이가 상처를 받지 않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다른 아이들도 이미 한국사람으로 살고 있다. 부모가 사용하는 방글라데시 언어는 전혀 모르고 '떡볶이'를 가장 좋아하는 아이들이다.

▲ 지난 5월 23일 서울에서 열린 제12회 세계인의 날 행사에서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출신 어린이들이 장기자랑 대회 출전을 앞두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좋은 곳에서 살 수도 없어 = 아이들이 웃고 떠드는 사이 부모들은 현실적인 부분에서 차별이 많고, 억압받고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아이들 건강과 생존을 위해 조금 더 나은 보금자리를 찾아야 함에도 그럴 수 없는 처지다.

딸 소피(5) 아버지 미로(44) 씨는 지난 2000년 한국에 왔다. 그의 아내 소피아(39) 씨는 지난 2009년 한국에 들어와 함께 살고 있다. 이들은 한국에서 시험관 시술로 소피를 낳았다. 귀하게 얻은 소피가 건강하게 살기를 바라지만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갈 수 없는 현실을 토로했다.

미로 씨는 "한국에서 돈을 모을 수 없는 구조적 문제도 있지만 우리는 불법체류자라는 딱지를 받은 사람이다. 우리도 좋은 아파트나 집에서 살면서 소피를 건강하게 키우고 싶지만 우리가 언제 출입국사무소에 잡혀갈지 모르니 좋은 집으로 갈 수가 없다. 여권을 기재하지 않고 계약할 수 있는 공간이 우리가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라고 했다.

소피아는 경제적으로 피폐한 삶을 살고 있는 이유도 설명했다. 소피아는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보니 출입국사무소에서 남편을 잡아갈 수 있다. 만약 내가 일을 하고 있다가 나까지 잡혀가면 소피는 혼자 남게 된다. 소피를 위해서라도 둘 중 한 명은 집에서 아이를 돌봐야 한다. 그러다 보니 남편 혼자 일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 = 이주노동자 가족에 불편한 시선을 보내는 이들은 '한국인이 일할 직장이 사라진다',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다수 이주노동자 가족은 위험하지도 한국인의 직장을 탐내지도 않는다.

건설현장 막노동을 하는 살라(33) 씨는 한국인과 같은 일을 하고도 일당을 3만 원 적게 받는다고 했다. 그는 "주는 대로 받아가는 게 우리 삶이다. 나는 한국사회에서 최하층 계급이라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다. 나는 이런 괄시를 받아도 버틸 수 있다. 내 아내 수잔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내 아이들은 다르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 문화와 전통을 익혔다. 평범하게 살아가길 원할 뿐이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방글라데시로 가서 살겠느냐고 묻곤 한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우리 집이 여긴데 왜 다른 곳에 가야하냐고 반문한다. 이미 아이들에게 한국은 고향이고 내 집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너희는 방글라데시 사람이라고 어떤 부모가 말을 할 수 있겠냐"고 했다.

미로와 소피아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국적을 바라는 것이 아닌, 그저 평범한 사회 구성원이 되는 것이 꿈이다. 이들은 "우리가 국적을 얻을 필요는 없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국적이 부여되길 원하지 않는다. 다만,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 배울 수 있고, 아플 때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만 있었으면 한다. 체류자격만 주어져 묵묵히 한국사회에서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고 말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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