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주총장 앞 대치 이어지자
사측 울산대로 옮겨 안건 처리
노동계 "주주 참석 보장 안돼"
노조 오늘 파업 "무효화 투쟁"

현대중공업이 회사를 둘로 쪼개는 물적 분할(법인 분할) 계획안을 지난달 31일 주주총회장 기습 변경 등 논란 끝에 처리했다. 주총 저지에 나섰던 노동조합은 원천 무효라며 법적 대응을 예고하는 등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이날 오전 11시 10분께 울산 남구 울산대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2019년 제1차 임시주주총회에서 분할계획서 승인 안건이 통과됐다고 밝혔다.

▲ 현대중공업이 지난달 31일 울산대 체육관에서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회사 물적 분할 안건을 처리했다. /현대중공업

이에 따라 현대중공업은 존속회사 한국조선해양(중간지주회사)과 신설회사 현대중공업(비상장 자회사)으로 나뉜다.

분할 계획을 포함한 주주총회 의안 설명서를 보면 한국조선해양은 지주회사로 바꿔 현대중공업 등 조선 자회사를 관리하고, 연구·개발(R&D)과 엔지니어링 기능을 합쳐 기술 중심 회사로 운영한다. 현대중공업 주식 100%를 보유한 상장 법인이다. 신설 현대중공업은 투자 사업을 제외한 조선·특수선·해양플랜트·엔진 기계 사업 부문에 집중하는 비상장 법인으로 둔다.

현대중공업그룹과 KDB산업은행은 지난 3월 8일 현대중공업 물적 분할에 따른 중간지주사 설립을 뼈대로 한 대우조선해양 인수 본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앞으로 국내외 기업결합 심사를 거쳐 산업은행이 보유한 대우조선해양 지분을 전부 출자하고 대신 한국조선해양 주식을 취득하는 방식으로 기업결합이 진행된다.

이런 과정이 마무리되면 한국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등 4개 조선 계열사를 자회사로 거느리게 된다.

한영석 현대중공업 사장은 "물적 분할은 대우조선해양과의 기업결합을 통해 현대중공업 역량과 가치를 최대한 올리고 재도약하기 위한 결정"이라며 "대우조선해양과의 기업결합을 성공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지난달 31일 변경된 주주총회 장소인 울산대 체육관 앞에서 노조와 경찰이 대치하고 있다. /이현희 기자

회사 측이 주총장을 바꿔 물적 분할 안건을 사실상 날치기하자 노동계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는 "이번 법인 분할 주총은 원천 무효"라며 "주총 변경 사항에 대한 충분한 사전 고지가 없고, 고시 후 변경된 장소로 이동 불가능한 시간으로 고지했으며, 주주들의 이동 편의 제공 안 하고, 주주들의 참석권과 의견 표명권 침해 등 중대한 결격 사유를 가진, 미리 준비된 몇몇 주주들만 모여, 숨어서 진행된 명백히 위법한 주총"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법인 분할 무효화 투쟁을 선언하고 6월 3일 하루 전면 파업을 하면서 향후 투쟁 방향을 결정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사측이 주총 개최 과정에서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속노조 법률원은 "현대중공업은 당초 개최 시간을 경과한 이후에 주주총회 장소를 울산대학교 체육관으로, 개최 시각도 최초 통지와 달리 11시 10분으로 변경해서 진행한다고 발표했다"며 "한마음회관에서 변경된 장소로의 이동 자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일부 주주들만 미리 모아서 의결 처리하려는 것"이라고 규탄했다.

법률원은 또 "우리사주조합을 통해 약 3% 주식을 보유한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주주총회 의견 표명은커녕 참석조차 할 수 없었다"며 "주주들의 참석조차 보장되지 못한 주주총회는 결코 적법하다고 볼 수 없고, 위법한 주주총회에서 통과된 안건 역시 유효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현대중공업이 총수 일가 사익 추구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덕 사업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며 "한마음회관에 모여 있던 현대중공업지부 조합원들이 주주로서 참가가 불가능하도록 주주총회 시간과 장소를 밤도둑처럼 변경해 법인 분할 안건을 날치기 통과시켰다"고 논평했다.

애초 주총은 이날 오전 10시 울산 동구 한마음회관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노조가 물적 분할에 반대하며 주총장을 점거·농성하면서 이날 오전 7시 40분께부터 사측과 대치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러다 오전 10시 30분께 사측이 울산대 체육관으로 주총 장소를 변경한다는 안내문을 내고 주총 개최를 강행했다. 노조는 주총을 저지하고자 급히 이동했지만, 한마음회관에서 울산대 체육관까지는 차량으로 30분 이상 걸리는 거리여서 주총을 막기는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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