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만든 언론 비평 프로그램 눈길
바늘 역할 자처한 후련한 방송 이어가길

촛불로 '디비진' 정국의 대통령이 취임한 지 2년을 넘어서도 언론지형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종이신문의 위세가 예전 같지 않음에도 조중동의 거들먹거림은 여전하다. 종편 또한 후줄근한 평론가 명색들이 우르르 둘러앉아 세상의 모든 일을 겁 없이 해설하고 있다. 자매지간인 '경제지들' 역시 현란한 숫자놀음으로 고봉밥을 먹고 있다. 지상파도 못잖다. SBS는 태생이 개인사업자니 차치하고라도 공영방송이라는 KBS·MBC는 기레기 티를 벗은 사장이 부임했음에도 이렇다 할 변화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제 모습을 찾으려는 PD수첩의 움직임이 두드러지게 눈에 띌 뿐. 다만 KBS의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 <저널리즘 토크쇼 J>(저리톡)가 비평이 사라진 풍토에 바늘 노릇을 자처하며 나선 것이 주목할 만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2주년을 맞아 KBS와 나눈 특집 대담이 지난주의 토픽이었다. 바람 잘 날 없는 정국에 당면한 현안에 관한 대통령의 의중을 들을 수 있는 중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정작 화제가 된 것은 엉뚱하게도 대담에 나선 KBS 기자의 태도와 자질에 관한 논란이다. 의당 양론으로 갈리고 시비가 생겼다. 대담 기자의 자질을 못마땅해하며 KBS에다 발발이 항의 전화를 하고 SNS를 달군 것은 시청자 일반이고 야당과 기자 집단은 입 맞춰 송현정 기자의 '기자정신'을 찬양했다.

<저널리즘 토크쇼 J>는 자사 구성원이 관련된 미묘한 문제였지만 비켜가지 않았다. 논란에 관한 각계의 의견을 묻고 리포트 한 것에 더해 일선 기자와 일반 시청자의 의견을 대비시켜 보여준다. 간극이 크다. "질문에 성역은 없다"가 기자들 주장의 요지였고 "너희는 예의가 없다"가 시청자 주장의 요지였다.

특이한 것은 시민들은 실명과 얼굴을 드러내고 인터뷰에 응한 반면 기자들은 익명에다 얼굴은 모자이크로 처리됐다는 점이다. 그건 좀 이상하다. 옹호를 하건 비판을 하건 시민들은 정체를 드러내며 자기주장을 하는데 저들은 왜 얼굴을 가리고 나오는 것인가. 기자는 어느 때나 아무 곳에서나 누구에게나 마이크를 들이밀고 까뒤집고 털고 비판하고 비난해도 되지만 그건 일방적이어야 한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그런 힘은 대체 어디서 부여받은 것인가. 그건 선별적으로 행사되는 것인가.

"한국 언론이 '기레기' 소리를 들으며 쓰레기 취급받는 것은 권력과 자본을 감시하는 미디어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문제의식을 품고 출발한다." 2018년 6월 <저널리즘 토크쇼 J>의 출사표다. 에둘러 눙치지 않은 카피만큼이나 진행 또한 후련하다. 군법무관 시절 4성 장군 두 명을 구속한 전대미문의 통뼈 최강욱 변호사가 초대 패널로 출발했다. 그이는 이내 청와대로 뽑혀갔지만 걸출한 능변의 교수 정준희가 역할을 이어받는다. 앵커 출신의 유연한 진행자 정세진과 시청자의 눈높이에서 토론에 재미를 더하는 최욱이 고정 멤버다. 드나드는 전문가로부터 모나고 경직된 표정으로 난삽한 단어들을 주워섬기는 '먹물'의 따분함이 덜한 것은 이 세 사람이 자아내는 힘이다.

그중 흥미로운 것은 시청자의 댓글이 윤색 없이 곧바로 피드백되는 것이다. "기자의 커리어는 경력이 아니라 생산한 '기사'에서 나온다. 그런 커리어라야만 질문과 비판의 정당성을 확보한다"거나 "생산한 기사를 단순 소비하는 대중으로 바라보지 않기를 바란다. 시민은 각각 수행 중인 직무에서 전문가다"라는 서늘한 말은 댓글에서 퍼 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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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 나온 얘기' 'TV에 나왔어' 하면 통하던 시절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언론의 자유지수는 높아졌으나 언론에 대한 대중의 신뢰는 낮아졌다'는 말, 눈여겨볼 대목이다. '저리톡'의 무운장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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