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력 없는 '굴욕 외교'제 발등 찍은 기밀 누설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비례대표)은 지난 9일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5월 하순 방일 후 한국을 방문해 달라고 전화로 제안했다"라고 폭로했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은 흥미로운 제안이고, 일정이 바빠 문 대통령을 만난 후 즉시 떠나야 한다고 반응했고,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단독 방한 제안에 대해서는 문 대통령이 거절하는 답을 보냈다"라고 밝혔다. 이는 한미 정상이 통화했던 내용 중 청와대가 공개하지 않은 내용이었다.

강효상 의원은 외교 소식통에 의해 전달받았다고 했지만, 외교부 조사 결과 주미 한국대사관 소속 외교관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외교관은 강효상 의원과는 고등학교 선후배 관계이고, 양국 정상이 통화한 다음날 그 내용을 강 의원에게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강 의원은 이를 공개한 것이 국민의 알 권리 차원이란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명백히 외교상 기밀누설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그러면 이 사안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정보는 공개가 원칙, 하지만…

우선 정보공개법은 "공공기관이 보유·관리하는 정보는 국민의 알 권리 보장 등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공개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이란 '국민은 정부에 공권력을 위임하고, 정부는 집행한 각종 활동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원칙 아래 만들어진 것이다. 정보공개는 집행 즉시 공개하는 것과 몇 년을 두고 순차적으로 공개하는 등 여러 단계가 있다.

그런데 이 원칙에는 엄격한 예외가 있다. 정보공개법 9조 1항 2호에는 '국가안전보장·국방·통일·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는 공개 시점을 유예하도록 하는데, 외교 관계의 경우 양 당사자 간 합의가 없는 경우 통상 25~30년 후 공개하게 된다. 공개유예 중 가장 긴 기간을 비공개로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는 양 당사자 국가 간에 합의하에 동시에 공개하기도 한다.

외교적 약속은 당사자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고, 특히 정상 간 통화내용과 외교 방문 관련 사안 등은 각종 보안 및 테러 위협 등으로 인해 비밀 정보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로 외교부는 정부 부처 중 정보공개에 대해서 가장 보수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

만약 비밀 정보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공개하려면 그에 맞는 이유와 맥락이 있어야 하고, 공개하는 사람은 엄청난 책임을 감수해야 한다. 위키리크스 어산지 대표나 전직 CIA 요원이었던 스노든이 지금도 세계를 떠돌며 도피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후폭풍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강효상 의원의 이번 기자회견은 어떤 관점에서 문제가 있는지 분석해보도록 하자.

우선 이번 정보를 누설한 당사자가 외교관이라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사안이다. 형법 113조는 "외교상의 기밀을 누설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사실상 외교관 및 외교공무원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법안이다. 일반인들은 외교상 기밀을 취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정보를 누설한 외교관도 "강효상 의원이 기자회견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것은 알지 못했고, 이를 정쟁의 도구로 악용할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며 더욱이 '굴욕 외교'로 포장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라며 사실상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5월 28일 <중앙일보> 보도). 외교관 스스로 심각한 기강 해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함 셈이다.

외교부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유사사례가 있는지 조사해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한국은 전 세계에 외교상 기밀이 언제라도 정치권에 흘러들어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게 될 것이다.

▲ 외교부가 3급 비밀에 해당하는 한미 정상 간 통화내용을 유출한 간부급 외교관 K씨와 기밀 유출의 원인을 제공한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을 형사 고발하기로 한 28일 국회 의원회관 강효상 의원실의 출입문이 잠겨 있다. /연합뉴스

◇외교관이 정보 누설

둘째, 강효상 의원은 국민의 알 권리를 얘기하고 있지만, 외교상 기밀누설을 하면서 공개한 내용은 국민들과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다. 심지어 형법 113조 2항 '누설할 목적으로 외교상의 기밀을 탐지 또는 수집한 자'에 해당할 수 있고, 이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아마도 강 의원은 '굴욕 외교'를 하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 싶었겠지만, 공개한 내용에서는 그런 내용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내용을 공개하는지 납득하기가 쉽지 않다.

셋째, 강효상 의원의 발언을 감싸고 있는 한국당의 행태도 문제로 보인다. 한국당은 그동안 한미공조를 그토록 강조하면서 한미공조를 깨고 있는 이런 발언을 감싸고 있다. 이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국당의 이념으로 봐도 심각한 보안사고다. 강효상 의원에 대한 출당 등 징계 조치를 취하는 것이 원칙이다.

마지막으로 지난 몇 년간 이런 사태가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로 보인다. 2차 남북정상대화록 무단 공개, 송민순 전 장관 발언 등 최근 들어 외교상 비밀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으로 공개하는 것이 일상화되고 있다. 이 같은 행위는 국가적 안보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국가 간 신뢰에도 심각한 타격을 준다. 남북 및 외교관 비밀 누설에 대해서 처벌 없이 유야무야 넘어가고 있어 유사사건이 반복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외교부와 검찰은 이번 사태를 엄정하게 인식하고 처벌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국민의 알 권리는 독재정권에 맞서면서 언론인, 시민활동가, 재야 정치인 등이 피땀으로 쌓아올린 개념이다. 한미 정상 간 통화를 무차별적으로 공개하는 것이 정말 국민의 알 권리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대체 어떤, 누구를 위한 알 권리를 충족시켰는지 말이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