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협약·법 있어도 안 지켜
아동복지법 대상이지만 정부 의지 부족으로 소외
"출생신고부터 보장해야"

미등록 이주아동은 왜 사회안전망 사각지대에 있을까?

전문가들은 미등록 이주아동의 문제를 체류나 합법이 아닌 보편적 인권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소한 성인으로 성장해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정부가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도 미등록 이주아동의 의료문제를 서둘러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30년 전 약속, 아동권리협약 = 시민단체들은 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지 30여 년이 지나도록 한국의 현실은 변함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미등록 이주아동을 지원할 별다른 근거가 없다고 하지만 사실 국내외적으로 법적 근거는 충분히 마련돼 있다. 다만 정부가 미등록 이주아동을 제도권 안에서 보호할 의지가 부족할 뿐이다.

국제연합(UN)이 채택한 아동권리협약의 기본 원칙에는 '모든 아동은 부모가 어떤 사람이건, 어떤 인종이건, 어떤 종교나 언어를 사용하든 모두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196개국이 이 협약을 비준했고, 한국은 1991년 비준 당사국이 됐다.

강제성이 없는 국제협약 외에도 국내 헌법과 아동복지법은 외국인, 아동에 대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국은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과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협약'도 비준해 아동의 국적이나 신분과 무관하게 생존권·건강권·교육권 등을 보장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스스로 비준한 국제협약만 잘 이행하더라도 미등록 이주 아동의 의료인권은 상당 부분 보장될 수 있는 셈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6조 1항과 2항은 "법에 의해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며 "외국인은 국제법과 조약이 정하는 바에 의해 그 지위가 보장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당연히 한국 정부는 아동권리협약을 이행하기 위해 아동의 인종·출생·신분 등에 상관없이 협약에 규정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또 아동복지에 필요한 보호와 배려를 제공해야 할 책임도 있다.

구체적으로는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고 기본적인 보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건강권'부터 학대와 폭력 등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등이다.

◇아동복지법은 국적 제한 않아 = 국내법 중 아동 권리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법률은 '아동복지법'이다.

아동복지법은 "아동은 자신 또는 부모의 성별, 연령, 종교, 사회적 신분, 재산, 장애유무, 출생지역, 인종 등에 따른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받지 아니하고 자라나야 한다"고 규정했다. 또 아동을 '18세 미만인 사람'으로 정의하지 주체나 대상을 '국민'으로 표현하는 다른 법률과 비교했을 때 보편적 차원에서 아동의 범위를 설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등록 이주아동도 아동복지법의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출생신고가 불가능한 탓에 제도권 밖에 밀려나 있다.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미등록 이주아동들이 병원에 가는 일조차 쉽지 않은 이유다.

시민단체는 미등록 이주아동의 건강권 등을 보장하기 위해 우선 '출생신고'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보편적출생신고네트워크'는 국내에서 출생한 모든 아동의 출생신고를 허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장소에서, 또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부모로부터 태어났다는 이유로 한국에서 존재를 증명하지 못한 채 살아가라는 것은 가혹하다는 것이다.

보편적출생신고네트워크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엔 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국가인 미국도 미국에서 태어난 모든 아동은 미국 정부에 출생을 신고할 수 있도록 그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며 "출생신고 권리는 아동의 기본권과 직결된 권리로 아동인권보장의 시작"이라고 강조한다.

미등록 이주민들의 건강 보장성 강화방안을 연구한 최규진 인하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등록 이주아동들이 간단한 진료나 치료에도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 역시 문제지만 중증에 걸렸을 때 부모가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미등록 이주민 중 무슬림 아이들이 사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증언을 들었다. 이 문제는 미등록 이주아동이라는 단일 객체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라 모자보건의 시각에서 풀어나가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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