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는 말 대신 영원한 기다림으로
파란만장 재소자 합창단, 음악과 사연들 어우러져
그리그 곡 '솔베이그…'등 만남·이별 장면 감동 증폭

영화가 감옥을 배경으로 하였을 때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는 그 공간적 한계로 인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물리적 한계를 활용하여 더 높은 가치를 보여주려는 영화들이 있다. 영화 <쇼생크 탈출>이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하여 논하였다면 영화 <7번방의 선물>과 <하모니>는 사랑인 것이다.

◇상처

주인공 정혜(김윤진)는 살인죄로 10년형을 받은 재소자이다. 남편의 폭행에 우발적 살인을 저지르고 교도소에 들어온 것이다. 임신 중 교도소에 들어온 그녀는 그곳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고 있다. 생후 18개월 후에 헤어져야 할 운명이지만 사랑하는 아이 민우로 인해 행복한 그녀다.

그런 그녀와 같은 방에 있는 김문옥(나문희), 음대 교수까지 지낸 그녀는 자기의 제자와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장면을 목격, 이들을 살해한 혐의로 복역 중이며 가족들마저 살인자의 자식이라는 오명을 준 그녀를 원망하고 외면하는 처지다.

그러던 어느 날, 방문한 합창단의 노래에 감명을 받은 정혜는 합창단 만들기를 제안하고 당연 음대 교수 출신인 문옥에게 지도를 부탁하게 된다. 하지만 쉽게 흘러갈 수 없는 상황, 갖가지 사연을 지닌 죄수들을 다잡는 것도 문제지만 제대로 노래를 불러본 적이 없다는 것이 먼저다.

특히 소프라노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에서 영화적 설정답게 유미라는 성악과 출신 죄수가 있다. 우연히 그녀의 노래를 들은 정혜는 문옥과 함께 그녀를 설득해 보려 하지만 이미 마음의 큰 상처로 인하여 비협조적이다. 하지만 그렇던 유미도 '많이 힘들지' 하며 위로하고 '남은 시간이라도 열심히 살자'며 격려하는 문옥의 말에 무너지고 만다.

이제 문옥의 지도하에 점점 자리를 잡아가는 합창단, 아들 민우의 울음 유발 정혜의 목소리도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드디어 재소자들 앞에서의 공연, 그들은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이에 상으로 얻게 된 아들과의 특박에 정혜는 기쁘지만 이미 정해져 있는 아이와의 헤어짐, 이런 슬픈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려 애써 큰소리 치던 그녀였지만 막상 새 엄마의 품에 안겨 떠나는 민우를 보며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그로부터 4년 후, 특별초대로 합창경연대회 무대에 서게 됐다는 기쁜 소식이 합창단에 전해진다. 그보다 더 기쁜 건 공연 후 가족들과의 특별면회가 있다는 것. 목걸이가 분실되어 온갖 편견의 이목이 집중되지만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결국 무대에 오른 합창단은 보란 듯 멋진 화음(하모니)을 일궈낸다. 관객들의 눈시울은 불거지고 문옥의 딸도 유미의 엄마도 그들이 만들어 내는 소리에 눈물을 흘리고 마는 것이다.

이때 갑자기 꺼지는 무대의 불빛, 그리고 아이들의 노랫소리, 노랫말 크리스마스의 축복처럼 무대에 오르는 꼬마 합창단 속에 자신의 아이 민우가 있다. 손을 맞잡은 엄마와 아들, 민우는 그녀가 엄마인 것을 알지 못하지만 정혜에겐 소중한 선물이다.

이렇게 공연이 끝나고 소중한 이들과 만나는 단원들, 문옥은 힘겹게 찾아와 준 아들이 너무나 고맙고 유미는 힘겹게 돌아서 가는 엄마를 돌려 세워 화해의 포옹을 나눈다. 행복한 재회, 하지만 이들에겐 또 다른 서글픈 이별이 남아 있었다. 합창단의 어머니 문옥의 사형집행이 결정된 것이다.

이별의 날이 다가오고 면회를 핑계로 형장으로 가려는 문옥은 부럽냐며 능청을 부려보지만 모두가 이날이 무슨 날인지 안다. '면회 안 한다고 해'라며 투정 부리는 정혜를 뒤로하고 형장으로 향하는 문옥의 너머로 서글픈 '찔레꽃'이 울려 나온다.

▲ 영화 <하모니> 스틸컷.

◇페르퀸트와 트로이메라이

영화 <하모니>는 아름다운 노래들로 가득하다. 먼저 영화의 말미 그들의 초청공연 장면, 떠나버린 가족을 애타게 찾듯 애절하게 부르는 곡은 바로 북구 노르웨이의 작곡가 '그리그'의 극 부수음악 '페르귄트' 중 '솔베이그의 노래'이다.

그리그는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국민주의 음악가로 독일로 유학, 라이프치히에서 음악을 공부 후 작곡가로서의 길을 걸으며 많은 작품을 남긴다. 특히 그의 피아노협주곡 도입부가 유명하며 헝가리의 음악가 '리스트'는 그의 협주곡을 연주한 후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역시 그의 대표작은 극음악 '페르귄트'일 것이다. 극 '페르귄트'를 쓴 작가는 노르웨이가 낳은 또 하나의 위대한 예술가 '헨릭 입센', 그는 민속설화를 바탕으로 한 신비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곤 극에 쓰일 음악을 '그리그'에게 위촉하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총 23곡으로 이루어진 멋진 극음악이 탄생하게 되는데 오늘날로 보자면 위대한 시나리오 작가와 영화음악가가 만나 한편의 멋진 영화가 탄생한 것이라 하겠다.

간단한 줄거리는 이러하다. 어려서 아버지를 잃은 페르귄트는 어머니 오제와 살고 있다. 늘 허황된 꿈만 꾸는 그는 사랑하는 여인 솔베이그가 있지만 다른 여자를 납치해 산으로 달아나는 터무니없는 짓을 하고 만다.

하지만 그녀와의 일탈도 잠시, 허무함을 느낀 페르귄트는 홀로 산속을 헤매다 산속마왕을 만나고 마왕의 딸과 결혼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혼비백산 도망친다. 다시 돌아온 페르귄트, 하지만 어머니 오제는 쓸쓸한 죽음을 맞고 이제 다시 페르귄트의 방랑이 시작된다.

세상을 돌며 흥망을 거듭하다 어느덧 죽음을 생각해야 할 나이에 이른 페르귄트, 그는 이제 고향이 그리워 그동안 모은 재물을 안고 고향으로 향하지만 배에서 만난 폭풍으로 모든 것을 잃는다.

초라한 몰골로 돌아온 페르귄트, 하지만 그곳엔 백발의 솔베이그가 있다. 기나긴 시간 동안 그녀는 변함없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늙고 지친 페르귄트는 그녀의 품에 기대어 평화로운 자장가와 함께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친다.

이렇듯 영화에 쓰인 '솔베이그의 노래'는 바로 솔베이그가 페르귄트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부르는 노래인 것이다.

'그 겨울이 지나 또 봄은 가고 또 봄은 가고 그 여름날이 가면 더 세월이 가네 세월이 가네. 아! 그러나 그대는 내 임일세 내 임일세. 내 정성을 다하여 늘 기다리네 기다리네.'

영화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명곡이 있다. 바로 작곡가 슈만의 '트로이메라이(꿈)'.

슈만은 제목이 딸린 피아노모음곡을 많이도 작곡했지만 아마도 이 곡이 가장 유명할 것이다. '조르는 아이', '술래잡기', '약이 올라서'와 같은 공감되는 제목을 지닌 13개의 곡들로 구성된 '어린이의 정경' 중 '트로이메라이'는 문옥과 유미가 피아노에 함께 앉아 연주하며 서로를 받아들이는 장면에서 흐른다.

그리고 관객을 울린 또 하나의 이별과 기다림의 노래가 있다. '솔베이그의 노래'가 주는 정서와 맞닿아 심금을 울리던 바로 그 노래 '대니 보이'.

19세기 중엽 아일랜드 지방에서 불리던 사랑의 노래가 20세기 초 새로운 가사를 입어 '대니 보이'라는 제목을 얻게 된 이 곡은 전쟁에 떠나 보내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담은 노래이다. 가사를 음미하다 보면 절로 눈물이 흐른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나 여기 오래 살며 너를 기다리다 혹여 땅에 묻히더라도 너의 발자국 소리를 듣는다면 나의 무덤은 따뜻하고 행복해지겠지. 네가 와서 나에게 사랑한다 말해줄 것이기에 나의 이 깊은 잠은 평화로울 거야, 네가 나에게 다시 돌아올 때까지.'

▲ 영화 <하모니> 스틸컷.

◇기다림

세월과 죽음을 이기는 기다림과 사랑, 페르귄트를 향한 솔베이그의 지고 지순한 사랑, 전쟁터에 나간 아들을 무덤에서라도 기다리겠다는 아버지의 사랑, 순수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동경과 이미지, 이러한 곡들과 어우러져 영화는 희생을 넘어 영원한 기다림을 말한다.

시간을 이기고 나를 기다려 줄 이가 있을까? 죽음을 넘어 나를 기억하며 기다려 줄 이가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행복일 것이다.

"저 목동들의 피리소리들은 산골짝마다 울려 나오고, 여름은 가고 꽃은 떨어지니, 너도 가고 또 나도 가야지."

※ 본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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