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23일 토요일 아침이었다. 전날 경남대 대동제 주막에서 신나게 놀았다. '늦은 귀가 조치'로 오전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늘어지게' 자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근데, 웬걸! 마침 집에 들렀던 형수가 깨웠다. "빨리 일어나 보이소. 텔레비전에 노무현 대통령이…." "예? 뭐라고예?" 그의 황망한 서거 소식에 깜짝 놀랐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텔레비전 자막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데, 휴대전화기가 울어대기 시작했다. 선배가 말했다. "빨리 봉하마을로 가라! 보고는 나중에 하고! 아참, 노트북은 뺏길 수도 있으니 들고가지 마라."

봉하마을 입구에서 명희진 당시 도의원(현재 김경수 지사 정무특보)을 만났다. 이미 눈시울은 붉어져 있었다. 그는 "원칙을 가지고 일하려고 했던 분을 검찰과 일부 언론이 무자비하게 명예를 실추시키면서 이런 비극적인 일이 초래됐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상상할 수 없는 충격적인 일이다. 이번 일과 관련해 분명히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한 고등학생은 "평소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소탈한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을 정말 좋아했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흥분한 시민들은 기자들에게 삿대질을 하고 침을 뱉으며 "기자새끼들, 당장 꺼져라!" 소리쳤다.

겨우 '현장 스케치'를 하고서 마을 근처에 보이는 한 공장으로 냅다 뛰었다. 다행히도 공장 사장님이 '데스크톱'을 사용해도 된다고 했다. 그렇게 경남도민일보가 처음으로 발행한 '호외용' 기사 한 꼭지를 보낼 수 있었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어떻게 하다 보니 어제 봉하마을 노무현 대통령 묘역에서 엄수된 '10주기 추도식'도 언저리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노동존중 사회, 선거제도 개혁, 경남학생인권조례 제정 등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의 묘석 받침판에 새겨진 글귀를 보니 다시 용기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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