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육 열망 딛고 평화·민주주의 세상 펼쳐야
진주제일여고 졸업생 김영혜 씨 "교사 징계 항의하다 정학…노동운동 투신"
해직교사 출신 이현권 씨 "4년 6개월만에 복직…사람 됨됨이 교육이 중요해"

1989년 5월 28일 창립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올해로 30주년을 맞는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지난 2013년 10월 전교조는 '법외노조'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새로운 정부가 집권하면 우선으로 (법외노조를) 철회하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전교조 지위는 그대로다.

30년 전 전교조 창립 당시 교육 현장에 있었던 교사, 학생을 만나 전교조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그 당시 교사와 학생을 각각 섭외했는데, 공교롭게도 두 명은 같은 학교에 있었다.

▲ 김영혜 전국건설노조 경남건설기계지부 사무부장./김구연 기자 sajin@

◇김영혜 전국건설노조 경남건설기계지부 사무부장 = 전교조 경남지부는 지난 3월 전교조 창립 30주년을 맞아 '1989년 전교조 결성 당시 피해를 입었던 학생을 찾는다'는 신문 광고를 냈다. 피해자의 중·고교생 자녀에게 장학금을 주기 위해서였다.

김영혜(47) 씨는 지인으로부터 그 소식을 듣고, 장학금을 신청했다. 모두 18명이 신청했다. 지난 13일 민주노총 경남본부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 1989년 당시 학교 분위기를 설명해달라.

"진주제일여고 3학년이었다. 학교에 전교조 선생님이 5분 정도 있었다. 제가 기억하기에는 학교에서 논란이 됐다. 전교조 하시는 분, 안 하시는 분으로 나뉘었다.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 전교조 결성 과정에서 기억나는 일은 있나?

"반 친구 3명을 포함해 13명이 전교조 선생님에 대한 징계 논의에 항의하고자 음악실 점거 농성을 했다. 친구의 제안으로 같이 했었다. 새벽에 5층 옥상에 있던 음악실에 들어가서 문을 걸어 잠갔다. 제법 큰 강당이었는데, 플래카드에 '우리는 선생님을 사랑합니다'라는 혈서를 썼다. 물, 소금까지 준비하고, 점거 농성에 성공하면 언론에도 알리려고 했다. 그런데 5분 만에 창문을 통해 몽둥이를 들고 온 학생주임한테 다 잡혀서 끌려 내려왔다. 허탈했다."

- 왜, 전교조 선생님을 위해 그런 행동을 했었나?

"선생님들이 교직원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해직됐다. 학교에서 쫓겨날 이유가 없는데, 단순히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학교를 떠나야 한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다. 영어, 수학, 윤리 선생님 3분이 기억난다. 영어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팝송을 들려줬고, 윤리 선생님은 인간성 회복이라는 철학에 대해서 알려줬다. 덕분에 대학에서 철학까지 전공하게 됐다. 수학 선생님은 우리를 친구처럼 대해줬다. 선생님이 진실하게 다가왔다."

- 점거농성으로 정학을 받았다고 들었다.

"친구나 다른 지역 학생들은 무기정학, 퇴학을 받기도 했는데, 저는 유기정학 1주일 징계를 받았다. 징계받은 후 전교조 선생님들이 왜 해직돼야 하느냐고 선생님을 만나러 다녔다. 고등학생협의회 같은 활동도 했다. 조직된 틀이 있지는 않았지만, 마산 등 다른 지역 학생들을 만났다. 당시에 전교조 선생님들이 우리 걱정을 많이 했다. (눈물을 흘리며) 학교 나가실 때도 잘 견디라고 하셨다."

- 전교조가 현재 법외노조인 상태다. 이에 대한 생각은?

"3년 전 법외노조가 됐을 때 마음이 아팠다. 잊고 살았는데, '참교육의 함성으로' 시작하는 노래도 생각나고 눈물이 났다. 지금 제 딸이 30년 전의 제 나이인 고3이다. 여전히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거농성은 인생의 한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크게 부정적인 영향이 없어서 마음의 짐이 없었던 것 같다. 그 사건 이후로 노동운동을 하고 있다. 친구들은 '저거는 고등학교 때부터 데모했다'고 말한다. (웃음)"

▲ 이현권 창원명지여고 영어교사./김구연 기자 sajin@

◇이현권 창원명지여고 영어교사 = 이현권(60) 교사는 전교조 창립멤버는 아니었지만, 창립 직후 전교조에 가입하고 해직됐다. 복직까지 힘든 시기를 견뎌내고 지금까지 교단에서 일하고 있다. 지난 21일 창원명지여고에서 그를 만났다.

- 전교조에 어떻게 가입하게 됐나?

"85년부터 교단에 섰다. 경기도 수원에서 첫 근무를 했는데, 하루 7∼8시간 수업을 하면서 병을 얻었다. 그래서 1년 쉬고 신문광고를 보고 진주제일여고에 오게 됐다. 87년 6월 항쟁 시위가 진주에서도 많았는데, 거기에 참가도 했었다. 전교조 창립 멤버로 참여하지는 못했다. 89년 5월에 전교조가 결성되면서 급박하게 학교 현장이 들썩였다. 진주제일여고에 전교조 가입 교사는 처음 10여 명이었는데, 절반으로 줄었다. 힘을 보태야겠다는 생각에서 제가 가입하면서 6명이 됐다. 6월 말 되기 전에 갑작스럽게 전부 해직됐다."

- 교사로서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쳤나?

"영어교사였지만, 사람 됨됨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좋은 글귀나 시를 항상 칠판에 적어뒀다. 놀랍게도 어떤 학생은 날마다 그걸 받아썼는데, 아직도 그걸 가지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방학 때는 1학년 학생과 같이 지리산 천왕봉까지 가기도 했다. 해직되고 학생들이 많이 슬퍼하면서 우리를 지지해줬다."

-해직되고 복직되기까지 만 4년 6개월이 걸렸다. 어떻게 지냈나?

"출근투쟁을 했다. 방학 때는 전국 규모 대정부 항의 투쟁을 했었다. 현장에 남은 교사들이 해직교사 생계를 걱정하고, 물심양면으로 노력했다. 전교조 해직교사를 위해 후원회비를 내줬다. 해직교사들은 양말, 노트 등을 교사에게 팔기도 했다. 저는 해직된 사실을 가족에게 말하지 못하다, 나중에 연로하신 아버지가 사실을 알게 되면서 건강이 악화했다. 복직도 되기 전에 돌아가셨다. 장남으로 노모 봉양을 위해 돈을 벌고자 여러 일을 했다. 아동용 책을 집집이 다니며 팔기도 하고, 지리산 산장에 물건을 배달하는 포터 일도 했다. 바나나 농장에 취업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 복직이 됐다. 학교에 이미 다른 교사가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립학교로 발령이 났다. 신규교사로 호봉, 연금이 책정돼 불이익을 당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민주화 운동 관련자 증서' 종이 한 장만 받았다."

- 지금 전교조가 법외노조 상태다.

"박근혜 정부 때 법외노조가 됐다. 해고자가 조합원으로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해직교사의 조합원 가입을 금지하고 있는 교원노조법 자체가 국제 기준에 맞지 않다며 개정을 권고한 상태다. 고용노동부 산하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도 노조법 시행령 제9조 2항 삭제를 권고한 바 있다. 28일 30주년 기념식에 교사들이 거리로 다시 나가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잘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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