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 밖에서 교실 풍경 상상할 뿐
지난해 입학거부만 22.2%
이유는 신원·서툰 한국어
중도입국자 지원도 미흡

출생신고를 못하는 미등록 이주아동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없다. 학교에 입학하기 어려운 데다 단속 위험이나 교육비 문제로 부모가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신원이 불분명하다거나 한국어가 서툴다는 이유로 학교가 입학을 거부해 홀로 집에만 있는 아이들도 있다.

미등록 이주아동의 학습권은 여러가지 제약 탓에 보장되지 않고 있다. 지난 2010년 정부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고쳐 미등록 이주아동도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법으로 의무교육을 명시한 게 아니어서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는 데는 어려움이 많다.

미등록 이주아동에겐 취학통지서가 발부되지 않는다. 입학을 해도 출생등록이 안 돼 있어 학교 홈페이지에 가입할 수 없다. 영국, 폴란드 등은 교육 관련 법령에서 '모든 아동의 의무교육'을 명시하고 있다. 또 스웨덴, 프랑스, 이탈리아 등은 미등록 이주아동에게 국민인 아동과 동등하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주아동 문제를 지원해온 석원정 성동외국인지원센터 센터장은 "이 땅에 존재하면 안 될 아이처럼 법과 제도가 만들어져 있다"며 "사회가 아이들에게 '원래 너희는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데 중학교 마칠 때까진 억지로 쫓아내지는 않을게'라고 말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한국행정학회가 지난해 11월 법무부 의뢰로 진행한 '국내체류 아동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자 중 22.2% 미등록 이주아동들이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 입학 거부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거부 이유로는 외국인이라서(66.7%)가 가장 많았고, 한국어 능력 부족(38.1%)이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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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다니더라도 또 다른 고통을 겪는다. 미등록 이주아동 46.1%는 학교생활 중 괴롭힘을 당한 적 있다고 답했다. 10명 중 4명은 괴롭힘을 당하는 셈이다. 괴롭힘 유형은 언어폭력이 60.4%, 따돌림이 29.2%로 조사됐다.

중간에 학업을 중단한 비율도 미등록 이주아동은 56.1%로 등록 이주아동(7.3%)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중단 사유는 '부모의 체류 신분이 불안정해서'가 가장 많았다. 이는 미등록 이주아동에게는 입학은 물론 졸업도 쉽지 않은 현실을 보여준다.

게다가 미등록 이주아동은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다 보니 학대 등 범죄에도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점도 문제다.

결혼이민자 부모를 따라 한국에 오는 중도입국 청소년은 그나마 형편이 낫다. 적어도 체류 자격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 10대 초·중반까지 본국에서 살다 와서 한국어를 잘 못한다. 전문가들은 이들을 위한 한국어 교육기관도 거의 없어 지적·사회적 성장이 멈춰버린다고 지적한다.

5년 전 어머니를 따라 베트남에서 온 ㄱ 군은 홀로 공부해 토픽 한국어능력시험 3급(중급)을 땄다. 올 2월에는 고등학교도 졸업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그를 온전히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ㄱ 군은 대학에 갈 형편이 안 됐다. 취업을 준비하기 위해 이달 초 고용노동부 고용지원센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지원 자격이 안 된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한국 국적이 아니고 한국어를 잘하지 못하는 게 이유였다.

석 센터장은 "국적자가 아니라는 것과 한국어 능력 부족은 완전 결이 다른 문제"라며 "국적자 요건이 문제라면 한국어 능력과 상관없이 다 안 되는 건데 이상해서 함께 찾아가봤다"고 말했다. 이후 담당자가 매뉴얼을 잘 몰라 지원 자격이 없다고 판단해 돌려보냈단 것을 알게 됐다.

그래도 ㄱ 군 사정은 나은 편이다. 많은 중도입국 청소년들은 한국어 능력 부족 등으로 한국 사회 바깥에서 맴돌고 있다. 정부는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특별학급이나 예비학교를 만들고, 무지개청소년센터 레인보우스쿨 등을 운영한다.

올해 경남 1곳을 비롯한 전국 25곳에 지역 위탁기관을 선정했지만 현장에선 이 또한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여성가족부의 2015년 전국 다문화가족 실태 조사에서 9~24세 중도입국 청소년은 약 3만 2330명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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