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위, 가족장 종용·정보제공·공문위조 등 인정
사과·재발방지 권고에 노동계 "조치 빈약"비판

경찰이 삼성의 하수인 노릇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보경찰이 2014년 고 염호석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양산분회장 '시신 탈취 사건'과 관련해 삼성과 유족이 만나도록 주선하고 장례절차를 변경하도록 적극 개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14일 '고 염호석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원 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진상조사위는 당시 경찰청과 경남경찰청·양산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이 △유족에게 가족장 종용과 삼성 측 주선 △삼성에 노조·유족 정보제공 △거짓 공문 발급 등을 했다고 밝혔다.

염 분회장은 노사 갈등 과정에서 2014년 5월 17일 강원 한 야산에서 유서와 함께 주검으로 발견됐다. 애초 염 분회장의 부친은 유서 등에 따라 노동조합에 장례를 위임했다. 그러나 갑자기 부친이 가족장으로 치르겠다며 번복했다. 이 과정에 정보경찰이 개입한 것이다.

경찰청 노정팀장은 염 분회장 주검 발견 이튿날 삼성전자서비스 관계자 요청에 따라 가족장으로 장례를 치르도록 설득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노정팀장은 삼성 측이 염 분회장 부친에게 합의금 6억 원 중 3억 원을 전달하는 현장에 동석하고, 삼성을 대신해 나머지 3억 원을 직접 전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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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고 염호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양산분회장의 노제 장면. /경남도민일보 DB

양산서 정보보안과 하모 과장과 김모 정보계장은 염 분회장의 유가족 동선을 삼성 측에 알려줬다. 이들은 경남청 하모 정보3계장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가족장 합의를 위한 삼성과 유가족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다. 다만, 경남청 정보3계장은 "구체적인 지시는 안 했다"며 발뺌하고 있다. 서울 강남서 정보관도 염 분회장 시신이 있던 서울의료원 앞 노조동향 등을 수차례 삼성 측에 전달했다.

특히 양산서 정보계장은 염 분회장 부친의 지인을 동원해 '노조원이 운구차를 못 나가도록 방해하고 있다'는 취지로 가짜 신고를 하도록 했다. 그러자 신고를 받은 경찰이 노조원들을 강제 연행했고, 염 분회장 시신은 부산으로 옮겨졌다. 빈소는 부산의 ㄱ 병원에 마련됐으나 실제 시신은 ㄴ 병원에 있었다. 경찰은 노조를 따돌리고자 이를 극비에 부쳤고, 삼성 측은 이를 파악하고 있었다.

또 양산서 정보관은 염 분회장 시신 화장을 서두르고자 유족에게 동의를 받지 않고 "유족 요청에 의함"이라며 공문서를 고쳤다. 정보관은 강릉경찰서로부터 검시필증·시체검안서 등을 받아 넘겼고, 유족은 밀양에서 화장을 치렀다.

시신 탈취 사건에 개입한 경찰 가운데 경찰청 노정팀장, 양산서 정보과장과 정보계장 등 3명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뇌물)·부정처사후수뢰 등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경찰청 노정팀장은 삼성 측으로부터 6000만 원 상당 금품, 양산서 정보과장과 계장은 1000만 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진상조사위는 경찰청에 유사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라고 권고했다. 진상조사위는 "장례절차에 개입하고, 염 분회장 모친의 장례주재권 행사와 화장장 진입을 방해한 사실에 대해 사과하고, 객관 의무를 어긴 점 등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라"고 했다. 또 정보경찰 중립성 담보 대책과 통제방안을 마련하라고 했다.

노동계는 진상조사위 결과와 후속 조치가 빈약하다며, 구체적인 재발방지책과 제대로 된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최봉기 삼성전자서비스 경남지회 수석부지회장은 "사과만 하라니 너무나 화가 난다. 이미 재판 과정에서 누가 얼마를 받았고, 누가 지시를 했는지가 드러나고 있다. 현재 근무 중인 정보관도 있다"며 "어디서부터 지시가 내려온 것인지 등을 철저하게 조사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경남본부도 "권고 내용은 너무나 빈약해 혀를 내두를 정도다. 위법한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수사 권고도 없고 책임자 등 징계 조치도 없다"며 "무엇보다 경찰이 노동자 권리를 침해한 것이 드러났는데도 정보활동 폐지나 재조정 등에 대한 권고도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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