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신학교 출신 1세대 인물
선수·사회조직 등 활동 다채

경남야구협회는 김성두(金性斗)를 '마산 야구 레전드' 시작 인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름 석 자 무게감에 비해 현재 남아있는 기록은 매우 초라한 수준이다.

김성두는 선수로서 업적보다는 '지역 야구 주춧돌 역할'로 더 많은 족적을 남겼다. 그는 '마산 야구 효시(1914년)'인 창신학교 출신이다. 이 지역 야구 출발점서부터 궤를 같이한 말 그대로 '마산야구 1세대'다.

김성두는 1926년 같은 창신학교 출신들과 함께 '구성야구단'을 만들었는데, 이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주목받았다. 그리고 1934년 만들어진 '쓰바메(제비) 야구단'에서도 활동했다. 당시 수준과 팀 체계를 짐작했을 때 '포지션' 개념에 큰 의미를 두지 않겠지만, 김성두는 투수 겸 외야수로 기록돼 있다.

김성두는 이후 1935년 <동아일보> 마산지국에서 주최한 연식야구전 준비위원을 맡기도 했다.

김성두는 사회조직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기존 청년 단체들을 통합한 마산청년동맹이 1927년 12월 창립했는데, 김성두는 여기서 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1933년 '제7회 시민대운동회'에서도 준비위원에 이름 올렸다.

김성두는 해방 이후에도 지역 체육계에서 활동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를 위해서는 마산체육회 흐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산체육회는 1922년 8월 26일 마산구락부회관에서 창립했다. 하지만 이 지역 체육활동은 1920년대 초중반 전반적으로 활성화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다 1928년 10월 1일 마산체육협회가 재발족하면서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특히 마산체육협회는 재조직 이후 첫 사업으로 야구대회를 열었다. 이후 마산지역 체육계는 1945년 8월 해방 직후 곧바로 조직 재건에 나섰는데, 여기에 김성두가 등장한다.

<디지털창원문화대전>에는 '마산 체육회는 1945년 10월 15일에 성호국민학교에서 옥종수·팽삼진·김성두·박삼조 등 40대 체육 동호인 4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발족하였다'고 되어 있다. 김성두는 여기서 공식적으로 이사 역할을 맡았다. 그는 이후 1948년 7월 개최된 '제1회 전마산부민체육대회'의 준비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이후 행적에 대해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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