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은 시민 결집하던 공간
조선인 민족의식 고취에 한몫

'마산 야구 100년 기념 표지석'은 사진 3장과 함께 설명 글을 담고 있다. 이 지역 야구 줄기를 잘 함축해 놓았다.

글을 쓴 이가 박영주(59·사진) 지역사 연구가다.

그는 마산구락부 운동장이 야구뿐만 아니라 지역사에서도 큰 의미를 담는다고 했다.

"마산은 이전까지 변변한 운동장 하나 없다가 1921년 마산구락부 운동장을 조성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범시민모금운동'을 펼쳤던 거죠. 이는 1919년 3·1운동 이후 시민 의식 영향도 있었다고 봐야죠. (마산체육사는 이와 관련해 '조선인의 일은 오직 조선인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는 정신으로 조성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 운동장은 야구 등 체육뿐만 아니라, 시민 행사, 금주·금연 캠페인 등 각종 장으로 활용됐습니다. 다만 정치집회는 많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 박영주 지역사 연구가.

마산구락부 운동장은 1926년 '중앙운동장(지금의 마산 중앙동 장군천 인근)'이 들어서면서 조금씩 위축된 것으로 보인다.

"마산구락부 운동장이 조성될 때 일제가 노골적으로 방해했다는 흔적은 찾기 어렵습니다. 다만 중앙운동장이 그러한 쪽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중앙운동장 주변에는 일본인이 많이 살았습니다. 아무래도 일제가 마산구락부 운동장을 견제하려는 목적도 있었다고 봐야죠. 실제 중앙운동장이 만들어지면서 마산구락부 운동장은 시들해진 측면도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마산 야구'가 안고 있는 의미를 이렇게 풀이했다.

"야구는 협동을 필요로 하잖아요. 1914년 창신학교가 처음으로 야구부를 만들었는데, 이 학교에는 민족주의자가 많았습니다. 이후 일제 강점기에 구성야구단이 활동했습니다. 조선 사람이 야구로 힘을 합쳐 일본을 이기려는 의미도 담겨 있었습니다. 그 내면에도 민족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던 거죠. 마산 야구는 하나의 대중문화이면서도 민족주의 뿌리를 이끌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