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병리적 범죄 예방하려면
진주사건 피의자, 개인 공격으로 사회불만 표출
복지·행정·형사사법기관 연계시스템 구축 필요
치료프로그램 개발·정신건강증진기관 확충해야

진주 방화·살인 사건 피의자 안인득(42)의 주거·생활 환경을 보면 '사회병리적 범죄' 가해자 특성과 일치한다. 전문가나 관계자들은 사회병리적 범죄를 예방하려면 취약계층에 대한 사례관리 연계·공유 체계와 전문 치료프로그램을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진주경찰서는 프로파일러를 통해 수차례 면담한 결과, 피의자가 10년 전 공장에서 허리를 다쳐 산업재해를 신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사회적인 불만이 가중됐고, 피해망상이 심화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피의자는 2011년부터 5년간 68회 정신병원서 조현병 치료를 받았으나 이후 범행 전까지 치료기록은 없었다.

▲ 21일 오전 진주 방화·살인 사건 희생자인 황모 씨의 발인이 한일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렸다. 이날 유가족들이 희생자의 영정을 들고 발인실로 이동하고 있다. /박일호 기자 iris15@

◇"가장 좋은 형사정책은 복지에서" = 치료는 잠재적 범죄자를 색출하자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병들게 한 책임에 대해 국가가 나서야 한다는 의미다. 묻지마 범죄의 주요 원인에는 사회에 대한 불만·분노 등 구조적 문제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묻지마 범죄'도 일종의 사회병리적 범죄에 속한다.

형사정책연구원이 2014년 발간한 <묻지마 범죄자의 특성 이해 및 대응방안 연구> 논문을 보면 가해자 48명을 조사한 결과 72.9%(35명)가 소득이 없었고, 75%(36명)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또한 75%(36명)가 두 차례 이상 범죄를 저질렀으며, 58.3%(28명)가 정신질환 진단을 받은 적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원은 "사회 실패자는 설 곳이 없고 희망도 없게 된다. 그 책임을 국가와 사회에 돌리는데, 그러면서도 유형이 없는 국가와 사회에 대한 공격 대신 이를 일반인에게 돌리는 것"이라며 "개인의 결함이 일차 원인이지만, 사회·경제적 불안 요인이 배경에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묻지마 범죄 증가는 사회가 병들고 있다는 경고"라고 진단했다.

연구에 참여한 윤정숙 연구위원은 "가장 좋은 형사정책은 사회복지정책에서 나온다"며 "종합적인 사례관리로 여러 기관이 협력하고 연계해서 사회병리 취약계층의 왜곡된 요소를 잡아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앞으로 경찰이 복지와 관련해 연계·공유하는 시스템도 필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면 보건소 등에도 자치경찰을 배치해, 복지시설에서 의뢰가 되면 같이 살펴보는 체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예방"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또 "사회병리적 범죄를 예방하고자 검찰·법원도 경찰과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고 했다.

◇"전문 치료프로그램 필요" = 안인득처럼 기초생활수급자 등 자활 참여자를 관리하는 자활센터 종사자는 전문 치료 프로그램이 부족하다고 했다. 자활사업은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등 일을 할 수 있는 근로빈곤층의 자립과 자활을 지원하고자 근로기회 제공, 취업 알선 등을 하는 것이다.

지난해 9월 창원지역 한 자활참여자였던 ㄱ(63) 씨는 주점에서 술을 마시다 옆자리 다른 일행과 시비가 붙어 말다툼을 하다 불을 지른 혐의(현주건조물방화치상)로 구속기소됐다. 이 사건으로 화상을 입은 2명이 숨졌다. 경찰 조사 결과 ㄱ 씨는 이 술집에 자주 갔었고, 여러 차례 소란을 피웠다.

ㄱ 씨의 자활센터 사례관리자는 "알코올중독 증세가 있었는데, 평소에는 조용하고 큰 문제없이 잘 지냈던 참여자였다. 술만 마시면 소리를 지르고 폭력을 행사하려는 등 문제가 있었다"며 "답답한 것은 참여자가 치료나 상담·교육을 거부하면 답이 없다. 보건소에 의뢰할 뿐 도움이 될 수 있는 전문 치료 프로그램도 생각보다 다양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사례관리자는 ㄱ 씨 외에도 문제를 일으킨 참여자가 많고, 매년 경찰이 수십 차례 사무실로 출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도내 한 자활센터 종사자는 "자활참여자 중에 정신병력 판정을 받을 정도는 아니나 정신질환·알코올중독 증세를 보이는 이가 많다. 평소에는 문제가 없다가도 갑자기 종종 난동을 부리기도 한다"며 "자활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심리치료가 우선돼야 하는데 행정은 이를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지난 18일 '칸막이' 복지 전달체계 개선 필요성을 지적하며 재발방지책 마련을 주문했다. 김 지사는 "기초생활수급과 보건의료 담당이 달라 앞으로 이런 사건을 막을 수 있을까 걱정된다"며 "각 시·군과 함께 근본적인 복지 전달체계를 실제 현장에 맞게끔 풀어나가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정신건강증진기관 인력·시설 부족 = 복지시설은 사회병리적 문제를 안고 있는 복지 대상자가 증세를 보이면 1차적으로 사례관리 상담을 하고, 심각하면 지역 보건소나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의뢰한다.

그러나 경남지역 '정신건강증진기관'은 부족하다. 2017년 기준 전국에 정신건강복지센터(243곳)·정신요양시설(59곳)·정신재활시설(349곳)·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50곳) 등 관련 기관은 모두 701곳이 있다.

이 가운데 경남에는 33곳이다. 인구 규모로 봤을 때 경남(337만 명)은 부산(344만 명·38곳)보다 적다. 인구가 적은 대구(246만 명·33곳)와 같고, 대전(148만 명·43곳)보다 적다.

게다가 인력 부족 문제도 있다. 경남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에 따르면 도내 20개 센터 평균 실무자 1명당 70∼80명을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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