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덟 장의 풍경 그 너머의 이야기를 찾아
도내 둘레길 삶·역사·전설
사색하며 걷는 여행 묘미 담아

내가 걸었던 길을 찾았다. 책장을 넘기며 고향길을 그리워하다, 당신과 걷고 싶은 길에는 밑줄을 그었다.

'경남 길'이라는 두꺼운 지도가 있다면 이 책이지 싶다. <경남도민일보> 기획이사직을 맡은 임용일 기자와 문화체육부에서 일하는 이서후 기자가 쓴 <경남을 걷다>.

'걸으며, 쉬며, 사색하는 경남 힐링 둘레길 38선'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은 임 기자가 지난해 경남 18개 시·군 38개 둘레길을 직접 걷고 쓴 책이다. 이 가운데 이 기자가 남해 다랭이 지겟길과 말발굽길 편을 썼다.

책이 저자의 손을 떠나면, 독자가 오롯한 주인이다. 그래서 어떻게 읽든 자유다.

▲ 전국 9대 일몰 중 하나인 사천 실안 노을. 죽방렴 뒤로 붉게 물든 석양이 지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DB

맨 처음 134쪽을 펼쳤다. 어렸을 적 걸었던 길. 사천 '실안 노을길'이라는 이름이 없던 그때, 해넘이가 전국에서 가장 예쁘다(2009년 한국관광공사 선정 전국 9대 일몰 명소)며 손꼽히기 이전에, 어른들 따라 연석 위에 올라 두 팔을 벌렸던 곳.

실안 노을길은 사천시가 2011년 조성한 이순신 바닷길 가운데 하나다. 4코스에 해당한다. 모충공원에서 늑도까지 8㎞다.

임 기자는 모충공원서부터 걸었다. 저자는 사천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모충공원 탄생 이야기를 하며 삼천포 마리나리조트까지 걸었다. 창선·삼천포대교로 이어지는 해안도로 주변에는 펜션과 리조트가 밀집해있단다.

'내 고향만은 그대로이길, 유년시절의 나를 그대로 품어주길 바라는 바람은 욕심이겠지.'

대규모 리조트가 들어선 까닭인지 한가롭고 여유로운 어촌 풍경은 아니었다는 저자의 인상이 그저 조금 서운할 뿐이다.

바다를 접한 곳이 흔한 경남이라 바다를 즐겨 보지만, 창선·삼천포대교에서 마주한 바다는 새삼스럽게 놀랄 때가 있다. 너무 아름다워서다. 맞다. 고향은 그런 거다.

다음은 438쪽을 찾았다.

하동 '십리벚꽃길'이다. 벚꽃이 만개한 오늘, 당장에라도 서 있고 싶은 길.

십리벚꽃길은 화개장터에서 오른쪽 쌍계사로 향하는 길이 시작이다. 곧 십리벚꽃길 가운데 벚꽃터널이 나온다.

이 길은 화개면 탑리 가탄마을에서 전남 구례군 토지면 송정리 송정마을까지 이어지는 지리산둘레길 15구간이 지나는 길이다.

임 기자는 십리벚꽃길이 4월 초 가장 아름답고 꽃비가 내리면 그 아름다움이 최고조에 이른다고 썼으나, 책 속 사진은 연두색이다. 그도 4월 초에 걷지 못했나 보다.

저자는 대신에 35년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자동차가 드문드문 다녔고 고작해야 식당 몇 군데가 전부였던 길. 그는 운치로 기억했던 길을 회상하며 벚꽃터널 아래를 걸었다.

▲ 호국불교와 경남 독립운동 근거지로 유명한 고성 연화산 옥천사길. 우거진 숲이 일품이다. /경남을 걷다

하동의 또 하나의 장관은 차밭이다. 무려 1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리산과 섬진강 덕으로 차를 재배한 하동. '河東(하동)'. 한자로 물 '하' 자를 쓰는 하동이지만 온통 초록이라는 인상을 받는 건 아마도 천년차나무가 있는 곳이라서 그렇겠다.

차밭의 싱그러움을 좇자니 함양 '상림' 숲길도 걷고 싶다. 상림은 '탐방'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넓고 깊다. 임 기자는 한낮 무더위를 피해 이른 새벽에 상림에 들어갔다. 그냥 발 닿는 대로 걸었다. 힘들면 쉬었다. 그는 이렇듯 걷고 쉬며 하나라도 더 보는 게 제일 좋은 탐방이라고 알렸다.

이 책은 갈 곳, 묵을 곳, 먹을 곳 등을 나열한 경남의 안내서가 아니다.

그저 묵묵히 걸으면 만날 수 있는 풍경 너머 무언가에 대한 것이다. 임 기자는 그냥 걷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전설과 역사, 삶을 찾고자 애썼다고 했다. 그래서 바닷가 절벽 위로 난 길을 따라가며 이순신 장군의 고뇌와 지혜를 생각했고, 시장통 골목길에서는 어디선가 불쑥 나타날 것 같은 시인의 숨소리를 느꼈다고 했다.

저자의 바람처럼 걷기 여행의 재미를 찾는 이에게 길잡이가 되기를, 또 경남만의 걷기 힐링프로그램이 만들어져 무형의 자산이 되기를.

또는 당신이 걸었던 길을 가슴속에 다시 새기는 책이 되기를.

도서출판 피플파워, 560쪽, 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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