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에서 직급을 부르지 않는 호칭 문화가 조금씩 퍼지고 있다. 아직은 일부에 불과하지만, 위계질서가 강고한 한국의 직장문화에서 수평적인 호칭 문화가 확산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창원의 중견기업인 센트랄은 2년 전부터 직원끼리 직함을 부르지 않고 이름 뒤에 '님'자를 붙여 쓰고 있다. 사장도 예외가 아니다. 직원과 고객을 존중하려는 방편으로 시작한 이후 이제는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일부 대기업의 경우 2000년대 초반에 이미 수평적 호칭을 도입한 곳도 있다. 이름 뒤에 '님'자를 붙이는 호명 방식은 우리 고유의 언어생활은 아니지만, 인터넷 공간에서 사용자들이 서로에게 나이나 사회적 직위를 모를 때 널리 쓰이게 된 방식에서 따왔다. 수평적인 호칭 사용은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히딩크 감독 체제에서 선수들 사이에서 높임말이 쓰이지 않았던 것이 화제가 되는 등 사회적 연혁은 오래되었다.

기업 차원에서 수평적 호칭 문화는 경영의 효율성을 위해 도입되고 있는 직급파괴 프로그램의 초보적인 일환에 속한다. 일부 대기업의 경우 직급 호칭을 쓰지 않는 단계를 넘어 직급을 축소 또는 통폐합하거나 심지어 직급을 폐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뿌리 깊은 연공서열 문화가 기업의 경쟁력 강화나 노동의 유연성 확보에 저해가 됨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노동 유연성 측면에서 도입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호칭 파괴'가 궁극적으로 노동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언어는 한 사회의 민주주의와 직결된다. 수평적 언어의 사용은 직장 민주주의를 포함한 일상적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서구 사회가 우리보다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직위나 연령에 상관없이 서로 이름을 부르는 데 익숙해져 있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런 서구도 처음부터 호칭이 평등했던 것이 아니라 68학생운동을 거치면서 대학에서 학생이 교수에게 존댓말을 쓰는 풍토가 사라졌다. 평등한 언어는 평등한 관계를 낳는다. 한일월드컵에서 뛰었던 어린 선수들이 '하늘 같은' 고참 선수들에게도 존댓말을 쓰지 않음으로써 민주적이고 공정한 문화를 만들었던 일화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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