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연구…최근 여성유공자 잇단 발굴
하동군과 전수조사 결실 "행정과 힘 합쳐야"

"그동안 여성독립운동에 관한 가치 평가가 제대로 안 이뤄졌다고 본다. 옥바라지나 봉양이라고 할지라도 그 고초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어쩌면 그들이 더 위대하고, 독립운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들도 함께 높이 평가해야 한다."

경남독립운동연구소 정재상 소장의 이야기다. 정 소장은 나아가 "독립유공자 서훈 기준도 폭넓어져야 한다. 누구든지 온당한 평가를 받게 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1995년 창간한 <하동정론> 기자 시절부터 독립운동 연구를 해왔다. 하동 악양면 출신 박매지 의병장 행적을 찾고 후손이 누구인지 궁금해 하면서 시작한 일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1997년에 꾸린 하동독립운동연구소는 2000년 경남독립운동연구소로 이름을 바꾸면서 활동 반경이 커졌다.

독립운동 연구에 필수인 판결문이나 각종 조서를 제대로 살피려면 한자와 일본어 공부를 병행해야 했다. 자문위원들을 두고 옛 자료를 읽고 해석하는 법을 배웠다. 또 25년째 아내, 아들과 함께 독립운동과 관련한 다양한 장소를 답사하고 있다.

정 소장은 일절 외부 지원이나 후원 없이 사비로 발굴과 연구를 하고 있다. 서훈 신청 자료를 작성할 때 제적등본·가족관계증명서 확인 등에 관해 행정적 지원만 받을 뿐이다.

▲ 정재상 경남독립운동연구소 소장이 독립운동가 발굴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경남, 전라, 충청, 제주까지 1000명 정도 발굴한 듯하다. 이 가운데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이들이 200명 정도 될 것 같다." 200명 중 경남지역 여성은 5명. 모두 하동 출신이다. 여성 유공자 수가 극히 적다는 것은 그만큼 여성독립운동가에 관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그런데 지난해 8월 의미 있는 일이 있었다. 하동읍 출신 여성독립운동가 제영순(1911~1992)에 대한 포상을 신청해 광복절에 건국포장이 추서됐는데, 그의 딸이 독립유공자 연금 첫 한 달분 100만 원을 선뜻 장학기금으로 기부한 것이다. 대전에 사는 전정자(75) 씨가 주인공이다.

정 소장은 "독립유공자 첫 연금을 뜻깊게 쓰면서 울림이 있었다. 특히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고민할 수 있는 계기였다"고 강조했다.

하동군과 경남독립운동연구소는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지난해부터 2020년 2월까지 미발굴·미포상 독립운동가 전수조사를 하고 있다.

"지자체 전수조사는 이번이 거의 첫 시도일 것이다. 독립운동가를 제대로 발굴하려면 연구단체와 행정이 함께해야 한다. 양쪽이 시너지를 내면서 결실을 거둘 수 있다. 행정의 뒷받침,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정말 큰 힘이 된다."

그는 독립운동가 문중을 존중하려고 애쓴다고 했다. 연구자나 지자체 이름을 앞세우지 않고 문중을 배려해야 독립운동에 관한 자긍심이 생긴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울러 정 소장은 하동 독립운동가들의 특징을 보면 교육 효과도 있다고 자신했다. "부모와 자녀, 형제나 남매 등 온 집안이 나서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은 교육적으로도 좋다. 이런 내용을 본 아이들한테 깨달음이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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