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3·1만세시위 뛰어든 하동소녀
태극기 준비 등 동참

▲ 3·1운동으로 투옥됐다가 같은 날 출옥한 수피아여학교 학생들의 기념사진. 하동 출신 홍순남은 없지만, 뒷줄 오른쪽에서 첫째, 둘째가 홍순남과 함께 태극기를 준비한 양태원, 최경애다. /독립기념관 국내독립운동·국가수호사적지(sajeok.i815.or.kr)
1919년 3월 10일 오후 2시께 전남 광주 부동교 아래 하천변 작은 장터. 1000여 명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시민과 학생, 기독교인이 대부분이었다.

기독교계 학교인 수피아여학교 학생들도 오후 3시 30분 가슴에 태극기를 품고 뛰어 내려왔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고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가운데 하동 덕양(현 하동읍) 출신 홍순남(洪順南·1902~?)이 있었다.

수피아여학교 학생들은 기숙사 지하실에서 자정을 넘기면서까지 몰래 태극기를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3월 10일 당일 교사 박애순은 독립선언서 50부를 학생 홍순남과 박영자 등에게 주고 장터로 모일 수 있도록 했다. 홍순남, 박영자, 최경애, 양태원 등이 태극기를 준비하고서 시위에 뛰어들었다.

이때 수십 명이 체포되고 구속되는데, 홍순남도 이를 피해갈 수 없었다. 같은 해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선고받고 광주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1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그가 다닌 수피아여학교는 3·1운동 이후에도 일제에 반대하는 모임이나 비밀결사 조직, 신사참배 거부와 자진 폐교가 이뤄진 곳이다. 

※참고문헌

<한국여성항일운동사연구>(1996), 박용옥, 지식산업사

논문 <부산지역 노동운동 역사:1930년대 전반기를 중심으로>(1993), 권혁주, 숙명여대

논문 <부산 조선방직 쟁의 행위에 따른 노동법 제정에 관한 연구>(2016), 이창규, 항도부산

우리역사넷 http://contents.history.go.kr

<이임하의 여성사 특강>(2018), 이임하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연구원, 철수와영희

논문 <해방직후 경남지역 여성운동조직과 여성운동>(2008), 임정연, 동아대

독립기념관 국내독립운동·국가수호사적지 sajeok.i815.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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