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북〉 (감독 피터 패럴리)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
백인 다혈질 운전사 토니
1960년대 미국 남부 동행
일상 속 인종차별 그려내

그린 북(Green Book): 유색인종이 이용할 수 있는 숙소와 음식점 등을 소개한 안내서.

영화 제목의 '그린 북'의 뜻을 아는 관객이라면, 영화 줄거리가 인종차별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미국 등에서 인종문제를 다룬 영화는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감독 스탠리 크레이머), <흑백소동>(감독 E. 막스 프라이어), <아미스타드>(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헬프>(감독 테이트 테일러) 등 다양한 사건을 소재로 흑인 노예 문제와 인종차별을 스크린에 담았다.

이런 점에서 <그린 북>은 다른 영화와 달리 관객의 울분을 격하게 토하게 하는 커다란 사건이 없다. 하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마주하는 유색인종에 대한 '친절한' 이중성은 일상이기에 잔인하다.

뉴욕에 사는 토니 발레롱가(배우 비고 모텐슨)는 '떠버리 토니'라 불리며 말보다 주먹이 먼저 앞서는 허풍쟁이다. 나이트클럽 경호원으로 일하다 주먹질로 일자리를 잃는다. 그는 우연히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 돈 셜리(배우 마허샬라 알리)의 운전사직 제안을 받는다. 면접을 보러 간 날, 돈이 흑인이라는 사실에 놀라지만 아무렇지 않은 체한다. 사실 그는 집에 찾아온 흑인 수리공이 먹던 물잔을 버렸던 이였다.

돈은 크리스마스 즈음까지 미국 남부를 돌며 콘서트를 열 계획이다. 그는 자신과 동행할 운전사 겸 비서를 구하는데, 토니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가 요구한 주급을 주면서 고용한다.

이렇게 둘의 여행은 시작된다.

출발하기 전 토니 손에 들린 것은 그린 북. 1962년 짐 크로법(1876년부터 1965년까지 존재한 미국의 법으로 공공장소에서 흑인과 백인의 분리와 차별을 규정한 법. 당시 짐 크로법에 따라 흑인들은 식당 · 화장실 · 극장 · 버스 등 공공시설에서 백인과 분리돼 차별 대우를 받았다)이 존재했던 미국. 인종차별은 북부보다 남부에서 더 두드러졌는데 이를 알고 있던 돈은 토니에게 그린 북을 전한다.

영화에서 토니와 돈은 상반된 인물이다.

토니가 손으로 치킨과 피자를 먹고 쓰레기를 도로에 버리는 등 큰 불법이 아닌 선에서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면, 돈은 품위를 지킨다. 언제나 깔끔한 정장을 입고 포크와 나이프 없인 음식을 먹지 않고 발음을 분명하게 하는 등 기품을 지키려 애쓴다.

"품위를 유지할 때만 이긴다. 폭력으론 이기지 못한다"라고 말하는 돈. 이는 그가 미국에서 살아온 방식일 테다.

인정받기 어려운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일 터. 그래서 그는 외롭다.

▲ 주먹질로 일자리를 잃은 '떠버리' 토니 발레롱가(왼쪽), 품위를 잃지 않는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 어울리지 않을 듯한 둘은 서로를 점점 이해해간다. /영화 〈그린북〉 스틸컷

물질적으로 상위 1%의 삶을 누리고 무대에 올라 관객들의 박수를 받지만, 피아니스트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돈은 사람대우를 받지 못한다. 그런데 이런 처지가 어느 날 예외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 그 자체다.

돈은 지역에서 내로라하는 관객들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할 주인공이지만, 초대받은 파티장의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고 공연 시작 전 저녁 식사도 공연장에 딸린 레스토랑에서 먹을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려주는 이는 아주 친절하다. 그를 환영하며 만나게 돼 영광이라고 말하면서도 차별을 아주 자연스럽게 전한다.

돈은 지금까지 잘 받아들인 듯하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무대에서 연주를 하며 활짝 웃으며 그와 함께 트리오로 활동하는 다른 멤버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돈이 달라진다. 이렇게 애쓰는 그가 슬퍼 보인다 말하고, 당신의 연주는 당신만이 할 수 있다고 진심으로 이야기해주는 토니 덕일까.

돈은 남부 투어의 마지막 일정인 앨라배마주 버밍햄에서 자신을 가둔 틀을 깬다. 고급 피아노 앞에서만 연주했던 그가 흑인들이 모여 있는 허름한 식당에서 즉흥 연주를 벌이며 즐거워한다.

'발레롱가'라는 성을 가진 토니도 미국에서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으로 차별을 겪었을 것이다. 둘은 서로 이해하려고 애쓰며 상대방의 마음을 한 번 더 헤아린다.

자신은 충분한 흑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백인도 아니라고 울부짖는 돈.

영화 <그린 북>의 배경인 1960년대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오늘은 과연 어떠할까. 여전히 '그린 북'이 존재한다면, 당신은 안내서를 따를 것인가.

영화는 창원 씨네아트 리좀 등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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