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화두 꺼낸 경제학자 우석훈
민주주의는 회사 문…〉 출간…직장 내 군대식 분위기 지적…일상·기업문화 '체질'바꿔야
수평적 대화 고민·실천 강조…'인증제 마련'기업 적용 제안…직장 갑질·폭행도 사라질 것

"자, 보세요. 직장 민주주의에 대해 우리가 그동안 너무 몰랐던 거예요. 지금 문재인 정부, (더불어)민주당 정권인데, 설마 안 하겠어요? 청와대부터 정시 출퇴근하고 해보세요. 돈도 들지 않아요. 그냥 하면 돼요. 더 이상 일하다가 자살하거나, 김용균 씨처럼 안전 미비로 억울하게 죽는 일은 없어질 거예요."

그의 낮은 목소리톤은 꾸준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김용균 씨'라는 단어 앞에선 목소리를 높였다. 그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눈 지 1시간이 훌쩍 지났을 때였다. 우석훈 박사. 스스로를 'B급' 경제학자라고 말하지만, 정작 그의 울림은 여느 'A급' 학자들 못지않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그의 입에서 '직장'과 '민주주의' 단어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지난해 12월 21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16번지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우 박사와 마주 앉으며 탁자 위에 이번에 나온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한겨레출판)를 올려놓았다. 전체적으로 깔끔한 표지에 제목과 그림 등, 무슨 책인지 머릿속에 쏙 들어온다. "제목이 직관적이다"고 했더니, 그는 "(책) 제목에 대해 유혹도 많았지만, 정직하게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우 박사의 말대로 그의 책은 정직하다. 게다가 책 속에 드러난 우 박사의 인식은 더 솔직하고 보다 근본적이다.

-책을 읽다보니, 단순한 '직장 갑질' 문제 이상을 생각하게 됐다.

"외부에서 청탁을 받아 쓴 첫 번째 책이다. 당연히 처음에 고민이 많았다. 쓰기로 맘먹고 자료를 수집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그러다가 초고를 (출판사에) 넘긴 다음에도 대대적으로 글을 뜯어고쳤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느낀 것이 많았다. 어찌 보면 사소할 것 같지만, 우리의 일상 생활부터 기업문화, 더 나아가 우리의 사회문화, 경제의 체질까지 바꿀 수 있는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책에 써 있더라. '지금 우리의 최대 약점은 자본의 궁핍이나 노동력 부족이 아니다'라고.

"그렇다. 우리가 지금 경제·산업 인프라가 취약해서 위기가 오는 걸까. 오히려 지식이나 인프라가 너무 많아서 문제라고 본다. 진짜 큰 문제는 많은 직장에서 최소한으로 갖춰야 할 민주주의적인 소양과 인식이 너무 부족하다. 정말 직장 민주주의만 제대로 해보자. 그러면 사람이 살고, 기업이 살아나고, 일자리가 늘고, 소득이 높아지면서, 우리 경제도 살아난다."

그는 갑자기 기자에게 "혹시 쉬는 날에 오마이뉴스도 산행 가느냐"고 물었다. "산행이 아니라 체육대회나 짧은 코스의 트레킹을 하곤 한다"고 답했다. 그랬더니, "이번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직원들 데리고 등산 가는 회사와 가지 않는 회사'로 나뉘었는데, 이것이 그 회사 직장 민주주의의 척도"라고 우 박사는 말했다.

기자는 "우리(오마이뉴스)는 대신 휴일이 아니라 평일 근무시간에, 노동조합과 회사가 함께 행사를 주최한다"고 '해명 아닌 해명'을 해야 했다.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보다 직원들이 단체로 산행 가는 회사들은 많이 줄지 않았나.

"(고개를 저으며) '예전'을 언제로 둘지 다르겠지만, 생각보다 여전히 많이 다니더라. 아직도 우리 기업문화는 군대식이나 상명하복, 일사불란 등 같은 분위기가 여전하다. 이번에 책을 쓰면서 만나보니까, 회사에서 직급이 과장 정도 이상은 '가족 같은 회사'를 좋은 회사라고 여기더라. 그런데, 요즘 젊은 직장인들은 그런 회사를 원하지 않는다. 그런 세대 간 갈등이 거의 모든 회사에서 벌어지고 있다."

▲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 책을 펴낸 우석훈 박사. /오마이뉴스

-그래서인지 책에 "2000년대 우리는 집단적으로 실패했다"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그동안 우리 기업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되지'라는 식이었다. 전형적인 옛날 방식이다. 촛불집회 이후 우리 사회적 여건도 많이 바뀌었다. 기업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직원들에게 좀더 자유를 주고, 조금 더 과감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내부적인 의사소통도 훨씬 자유롭게…. 다른 선진 기업들이 다 하고 있다. 우리에겐 지금이 딱 분기점에 와 있다."

-직장 민주주의에 공감은 하지만, 나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어렵게 생각할 것도 없다. 무슨 엄청난 교육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팀장이면 팀원을 대하는 자세부터 다시 생각해보고, 수평적으로 대화하는 방식 등을 고민해서 실천하면 된다. 어떤 의사결정을 내리기 전에 충분히 서로 토론하고 협의하는 소통과정 등이다."

-사실 말로는 다들 사전에 충분히 의사소통을 한다고 하지만, 실제 실천으로 이뤄지려면 인식과 문화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서 교육도 필요한 것 같고.

"물론이다. 특히 우리 기업들에서 팀장급들, 임원급들에게는 기본적인 직장민주주의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 지금 비슷한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정부기관뿐 아니라 민간 기업들에 적용되는 여러 인증제도가 있다. 가족친화형 기업으로 인증받기 위해선 일정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또 성희롱 예방교육 등도 거의 의무화해 있다. 직장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하면 된다."

-직장 민주주의 인증제도? 기업에선 또 규제라고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기업은 아마 21세기에 살아남기 어렵지 않을까? '규제'가 아니라 '인센티브'로 하면 된다. 이미 품질이나 환경 등에선 국제적으로 인증(ISO·국제표준화기구)을 받고 있다. 가족친화인증도 2008년에 도입됐을 때는 별 관심 없었다. 하지만 중앙부처와 지자체, 공기업 등도 가족친화인증을 의무적으로 받게 하면서, 민간기업으로 확산됐다."

-별도의 인센티브가 있었나.

"이 제도는 '우리 부처 또는 기업이 출산이나 양육 지원, 유연근무 등에서 가족친화적'이라는 것을 정부 차원에서 인정해주는 것이다. 3년마다 재인증을 받는데, 만약 재인증을 못 받으면 정부기관이나 공기업은 성과급 등에서 차별을 받을 수 있다. 현실적으로 연봉이 줄어들 수도 있다. 직장 민주주의도 정부부처부터 해봤으면 한다. 당장 청와대와 기획재정부 등이 먼저 해보라."

-청와대부터?

"(목소리를 높이며) 거기부터 시작하면 된다. 촛불정권인데, 설마 직장 민주주의를 하지 않을까. 몰라서 못할 뿐이지, 알고도 안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청와대가 가장 먼저 직장 민주주의를 선언하고, 중앙부처와 공기업 등에서 따라가면…. 지자체와 교육기관, 병원 등 공공성 높은 곳부터 해보자. 그러면 정말 조용한 곳에서 직원 폭행하고, 욕하고, 협박하는 일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적어도 병원에서 간호사들의 '태움' 같은 것은 없어질 것 같다."

-얼마 전 재계 인사들 만났는데 '민주주의'라는 말만 나오면 조용해지더라.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이나 현대차의 정의선 부회장도 직장 민주주의를 좋아할 것이다. 팀장 이상급들이 민주주의 교육을 받고 사내에서 갑질 문화가 사라지면 회사에도 좋은 것이다. 회사 경쟁력이 높아지고 생산성도 좋아지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정부도 앞으로 기업에 각종 연구개발 자금을 지원할 때 직장 민주주의 인증제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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