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마곡선이 아름답구나, 아니 지혜롭구나
옛 우주관 천원지방 따라 평면 직사각형 혹은 원형
비바람에 기둥 젖지 않게 완만한 지붕면 곡선 생겨

◇ 목조건물의 평면구조

오늘은 직접 건물을 하나 짓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기둥 네 개로 이루어진 평면 사각형 건물이다. 전통 건축에선 이런 집을 '한 칸집'이라고 한다. 기둥과 기둥 사이가 칸이다. 이런 집은 앞에서 봐도 한 칸, 옆에서 봐도 한 칸이다. 그래서 1×1=1인 한 칸 집이 된다. 경치 좋은 곳에 있는 작은 정자를 생각하면 된다. 두 칸을 만들 생각이면 기둥을 세 개 구해 와야 한다. 그리고 전체 집의 칸 수는 앞에서 본 칸 수와 옆에서 본 칸 수를 곱하면 된다. 앞에서 봐서 세 칸, 옆에서 봐도 세 칸인 사각형 집은 9칸 집이다. 조선시대 부의 상징인 100칸 집은 한울타리 안에 있는 모든 건물의 칸 수가 100칸인 집이다.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건물 100채란 말은 아니다. 반대로 아주 작은 집의 상징인 초가삼간은 지붕은 초가로 얹은 세 칸짜리 집이라는 말이다. 세 칸이라 해봐야 우리나라는 추워서 반드시 난방과 취사가 필요하니 방 하나에 부엌 하나 그리고 마루나 창고가 하나인 기본적인 생활을 위한 작은 집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기본 시설도 없는 집은…, 그냥 기찻길 옆에 있었던 오(두)막이다.

우리는 기단과 주춧돌을 만들고 그 위에 기둥 네 개를 세웠다. 하지만 여기에 바로 지붕을 얹을 수는 없다. 기둥이 주춧돌 위에 살짝 올라가 있을 뿐이기 때문에 그 위에 뭔가를 올리려면 기둥 끝에서 튼튼하게 기둥들을 잡아주는 뭔가가 필요하다. 전통건축에선 이 구조물을 보 혹은 들보라고 한다. 들보는 이렇게 기둥이 안정적으로 버틸 수 있게 고정할 뿐 아니라 지붕의 무게를 받아주는 역할도 한다. 이 들보가 목조건축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집의 평면 크기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길이 100m짜리 목재를 구할 수 있고 그 무게를 버틸 수 있는 기술만 있으면 이론적으로 한 변의 길이가 100m인 집을 지을 수 있다. 하지만 숲에서 그런 나무를 구할 수는 없고 우리나라 건물의 한 칸은 평균 2.1m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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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기둥을 올렸다. 기둥과 기둥 사이가 한 칸이고 이 건물은 앞에서 보면 기둥 네 개를 가진 정면 3칸 건물이다. 기둥 위로 가로지른 구조물이 들보다. 지붕 가장 윗부분에 들보와 같은 방향으로 놓여 있는 것이 용마루고 용마루와 수직으로 떨어트려 지붕 골격을 만든 부재가 서까래다. 건물의 가장 바깥 기둥에서 지붕선의 끝까지가 처마가 된다. 용마루에서 대략 처마가 시작되는 부분의 경사와 처마부분의 경사가 바뀌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전통건축에서는 이 부분의 각을 줄여 완만한 곡선으로 처리했다.

다음은 평면을 정사각형으로 할지 아니면 직사각형으로 할 것인지의 문제이다. 아마 열에 아홉은 직사각형으로 만들 것이다. 여러분은 이 산 저 산을 샅샅이 뒤져서 들보로 쓸 나무 네 개를 구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숲에는 그렇게 쓸모 있는 나무가 많지 않았다. 나라에서도 관아 건물을 짓거나 배를 만들기 위해 특정한 구역을 정해서 함부로 일반인이 베어 가지 못하도록 관리할 정도였다. 한국의 미라고 이야기하는 개심사 심검당(尋劍堂)의 구부러진 기둥도 실상은 우리나라 고유의 미감이라기보다는 목재를 구하기 어려웠던 상황의 반증에 가깝다. 어쨌든 산을 샅샅이 뒤져서 구한 목재의 길이가 10, 11, 12, 13이라고 하자. 이 상황에서 평면 정사각형의 집을 지으려면 한 칸의 길이는 가장 짧은 길이를 가진 부재에 의해 결정되어 버린다. 어렵게 13짜리 들보 재료를 구해왔지만 그 귀한 목재의 약 4분의 1은 못쓴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지은 건물의 전체 면적은 100이다. 하지만 긴 변과 짧은 변을 가진 직사각형 건물을 짓는다고 생각해보자. 짧은 변은 길이 10, 긴 변은 길이 12를 사용할 수 있다. 이 경우 건물 면적은 120이 된다. 어떻게 하시겠는가? 그래서 일반적으로 평면 직사각형 건물이 많이 만들어졌다.

물론 평면 사각형이 아닌 다른 모양 건물도 필요하면 만들었다.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고 동양에서는 땅(地)은 네모(方), 하늘(天)은 원(圓)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하늘과 관련되는 건물을 만들 때는 원형으로 만들었다. 조선은 사직단에 제사를 지내야 했고 대한제국은 천단(환구단)에 제사를 지냈다. 사직단은 땅을 상징하니 당연히 네모난 구조물이었고 환구단은 하늘을 상징하니 원형에 가까운 팔각형으로 만들었다. 문제는 이런 건물은 일상적으로 지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통상 직사각형을 기본으로 확장한 건물들이 많이 지어졌다.

▲ 사직단. 사직(社稷)은 토지의 신(社)과 곡식의 신(稷)을 말한다. /문화재청
▲ 환구단은 원구단(圓丘壇)이라고도 한다. 기본적으로 하늘을 나타내는 원형을 상징하는 건물이다. /문화재청

◇지붕구조

이제 지붕을 올릴 차례다. 지붕은 기본적으로 방안으로 들이닥칠 비를 막는 것이다. 하지만 또 하나의 역할이 필요하다. 그냥 막기만 하려면 평평한 지붕도 크게 문제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평면 지붕은 물이 흘러내리지 않고 계속 고여 있어 물이 샐 가능성을 높일 뿐 아니라, 겨울철 눈이 쌓이면 그 하중을 견디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물을 빨리 땅으로 흘려보낼 수 있는 경사가 필요했다. 실제로 비가 많이 내리는 열대우림지방 건물들의 지붕 경사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급하다.

그러면 지붕은 어떤 모양이 가장 효율적일까? 경사가 있으면서 최대한 가장 안정적이면서 경제적으로 만들 수 있는 모양은 네모난 평면을 두 개 마주 보게 하는 것이다. 이런 형태의 지붕은 그냥 네모난 평면 가운데를 살짝 꺾어서 기둥 위에 올려놓은 모습이다. 최대한 자연스러운 모양을 하고 있어야 만들기도 유지하기도 쉽다. 서로 이어지는 부분이 많을수록 마감하기도 어렵고 끊임없이 파고드는 비바람 때문에 나중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때 두 개가 마주 보는 부분을 용마루라고 하고 용마루에서 기둥방향으로 내려오는 구조물을 서까래라고 한다.

여기서 우리의 공사가 끝나면 좋겠지만 목조건축은 항상 물을 피하는 것이 큰 문제였다. 우리나라는 연간 강수량이 1000㎜가 넘은 비가 많이 오는 나라이다. 그래서 지붕에는 기둥을 최대한 물에 젖지 않게 하는 또 하나의 과제가 주어졌다. 우리는 이미 기둥이 습기를 피하고 바닥에서 튀는 물이 닿지 않게 하려고 기단 위로 들어 올렸지만 옆에서 불어 닥치는 비는 피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붕 끝을 기둥 바깥으로 최대한 뽑아내려고 시도할 것이다. 더운 여름날 뙤약볕이나 소나기를 피할 수 있는 처마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벽돌로 만든 집에서는 기둥이나 벽을 비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없어서 지붕선을 기둥 밖으로 끌어낼 필요가 없다. 처마가 있는 중세 유럽의 성당을 본 적 있으신가?

그런데 이 처마는 또 하나의 딜레마에 빠진다. 물을 빨리 흘려보내기 위해서 기둥의 각도는 급할수록 유리하다. 하지만 각도가 급하면 같은 길이의 서까래로 만들 수 있는 처마의 폭이 좁아진다. 우산을 생각해보자. 우산을 다 펴지 않고 절반만 펴보면 비는 빨리 땅으로 흘려보낼 수 있겠지만 나한테 들이치는 비를 막기는 어렵다. 그래서 한옥의 지붕은 용마루 부분은 경사가 있지만 처마 부분에서는 완만하게 이루어지는 서로 다른 각도를 가지는 지붕이어야 했다. 이러려면 용마루에서 급한 경사를 이루며 떨어지는 지붕선을 기둥부분에서 한번 완만하게 꺾어줘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접힌 부분은 일직선보다 물이 새거나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이 부분을 완만한 곡선으로 만드는 노력이 등장했을 것이고 지금 우리가 보는 완만한 지붕면의 곡선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 대략적인 목조건축의 진화방향이 드러났다.

※건축가 서현 교수의 책 <배흘림기둥의 고백>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조금 더 자세히 목조건축의 진화에 대한 내용을 알고 싶으신 독자들은 직접 책을 읽어보시길 권한다.

/최형균(LH 총무고객처) talktalk@lh.or.kr

※이 기획은 LH한국토지주택공사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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