귓가에 맴도는 숨은 음악 이야기
40년 된 마산 명소 '해거름'
음악카페서 추억 쌓아
인기곡 탄생 비화 풀어 내

이야기는 언제나 솔깃하다. 더욱이 화자가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면 금상첨화겠다.

아내에게 배신당해 삐뚤어진 왕이 있었다. 그는 모든 여성을 증오했다. 신부를 맞아 다음날 아침이면 죽이는 일을 반복했다.

어느 날 한 대신의 딸이 자진해서 왕을 섬긴다. 그는 매일 밤 왕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왕이 이야기에 흠뻑 빠졌다가 정신을 차리면 어느덧 아침이었다. 그때 적절하게 여인은 이야기를 끊었다. 그러고는 교묘하게 둘러댔다.

"다른 이야기는 더 재미있답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 왕은 여인을 죽이지 않고 계속 곁에 뒀다. 그게 자그마치 1001일이었다. 결국, 왕은 마음을 고쳐먹고 여인과 행복하게 살았다.

익히 알려진 <아라비안 나이트>의 큰 틀이다.

<아라비안 나이트>를 이루는 수많은 이야기는 저마다 의미를 달리하지만, 재미있는 이야기와 타고난 이야기꾼이 만나면 매혹적일 수밖에 없다는 말로 압축된다.

잔인한 왕이 마음을 고쳐먹었을뿐더러, 책을 읽는 독자마저 안달하게 하였으니 말이다.

▲ <명곡의 탄생> 고굉무·이정국 지음.

고굉무·이정국이 쓴 책 <명곡의 탄생>은 재미있는 이야기,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갖췄다.

음악을 중심으로 소소한 사연을 풀어낸 현대판 아라비안 나이트 되겠다.

모름지기 재미있는 이야기는 쉬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누구나 엉큼한 구석이 있어 속에 감춰뒀던 이야기를 풀어낼 때 비로소 재미가 극대화한다.

책은 시대를 관통한 명곡에 얽힌 숨은 배경이나 사연을 소개한다. 30여 곡의 음악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꼭지마다 매력적인 구석이 다분하다. 가왕 조용필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실은 통영 출신 가수 김해일(김성술)이 먼저 불렀던 곡이었다든지, 정지용 시에 곡을 붙인 '향수'가 전도유망한 성악가를 무너뜨린 노래라든지.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이미 대중에게 알려진 이야기도 더러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이 남다른 까닭은 지은이가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사실에 있다.

같은 이야기라도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재미가 달라진다. 지은이는 마치 실제 사연을 겪은 것처럼 재치있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더욱이 책 부제를 보면 이 책이 왜 매력적인지 알 수 있다. 부제는 '해거름 카페지기가 들려주는 음악 야화'다.

▲ 창원 마산합포구 창동에 있는 음악카페 해거름은 40년이 된 지역의 명소다. /경남도민일보 DB

책을 펴낸 고굉무는 음악카페 해거름 2대 지킴이다. 또 다른 한 사람, 이정국은 해거름 추억 지킴이를 자처한다.

해거름은 40년 동안 마산 창동 골목을 지킨 명소다. 신청곡을 들으며 술을 마실 수 있는, 이제는 몇 없는 추억의 공간이다.

지금까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손님이 오갔을 터. 그들 각각의 사연이 공간에 켜켜이 쌓였다. 이야기보따리에 자연스레 살이 덧붙은 셈이다.

"설날을 코앞에 둔 어느 날이었다. 여유롭게 마무리를 준비하는 카페에 중년의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가 들어오는 순간 막 카펜터스의 노래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한 곡을 다 감상한 후에야 자리 잡은 남자는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어떻게 알고 틀어주었냐"고 말했다. 잘 알지 못하는 자신을 환대해주어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짧지만 강렬한 인연은 시작됐다."(274쪽)

마치 소설처럼 믿기 어려운, 해거름이라는 공간과 노래에 얽힌 사연은 어느 책에서도 만날 수 없는 특별한 이야기다. 도입부만 추려 소개한 카펜터스 노래에 얽힌 중년 남성의 사연이 궁금하다면 책을 읽어보자.

도서출판 피플파워 펴냄, 280쪽, 1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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