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우웅~~~'

마치 비행기가 날아가는 소리 같다. 무슨 소리일까? 고개 돌려 비행 물체를 확인하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친다. 두리번거리며 우거진 나무와 풀 섶 주변 둘러보는 순간 눈앞에서 장수말벌이 휙 날아오른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온갖 생각이 다 든다. 들고 있는 막대기로 내리 쳐야 하나? 아니면 잽싸게 달아나야 하나? 다행스럽게도 장수말벌은 먹이 활동 중이라 사람에게 큰 관심 보이지 않는다.

추석 앞둔 가을 들머리쯤 조상 묘 찾아 벌초하러 간 사람들이라면 한두 번 정도 겪어보았을 장면이다. 특히 여름이 무덥고 비가 많이 내리는 시기가 지난 후에는 벌의 개체 수가 더 많아진다. 매년 이맘때는 벌을 특별히 조심해야 하는 시기다.

123.jpg
▲ 과일즙과 물을 찾아나선 장수말벌.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벌은 전 세계에 약 15만 종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는 약 2000여 종이 보고되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눈으로 직접 보고 알고 있는 벌 종류는 그렇게 많지 않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종은 꽃에 날아오는 꿀벌이다. 양봉 꿀벌도 있고, 재래 꿀벌도 있다. '난 이제 지쳤어요 땡벌 / 기다리다 지쳤어요 땡벌 / 당신은 못 말리는 땡벌 / 당신은 날 울리는 땡벌.' 이제는 유행가 가사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땡벌'(땅벌)도 있다. 어린 시절 동네 어귀에서 만난 땅벌은 두려움의 대상이면서 짓궂은 아이들에겐 놀이의 대상이기도 했다. 땅벌 집 건드려 지나가는 사람들이 쏘이는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기도 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벌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독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침을 가진 벌은 전 세계에 약 15000종쯤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든 벌이 독침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또 침을 가지고 있더라도 벌들 대부분은 일부러 건드리지 않는 한 함부로 사람을 공격하진 않는다. 오히려 생태계의 균형과 안정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들이다. 우리가 즐겨 먹는 수많은 과일뿐만 아니라 온갖 식물의 수분을 책임져주는 아주 고마운 곤충이 바로 벌이다.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무수한 벌들 중 가장 덩치가 큰 벌이 장수말벌이다. 장수말벌은 두꺼운 갑옷 입고 전쟁터 나가는 장수같이 크고 으뜸가는 벌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또 다른 말벌 종류로는 말벌, 꼬마장수말벌, 털보말벌, 좀말벌, 검정말벌, 등검은말벌 등이 있다. 자칫 잘못 건드렸다가 큰 봉변을 당하게 되는 경우가 있어 특히 주의가 필요한 벌이 말벌 종류인데 곤충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이면서 식물의 수분을 도와주는 역할 뿐만 아니라 농작물에 피해 주는 해충을 제거해 주는 역할도 담당한다.

앞에서 언급한 여러 말벌 종류를 통틀어 그냥 말벌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종류마다 생김새와 생태 특성이 각기 다름을 알 수 있다. 어떤 종은 땅속에, 어떤 종은 나뭇가지에 또 어떤 종은 나무 등걸이나 구멍 속에 집을 짓기도 한다. 여왕벌은 월동을 하는 반면에 일벌과 수벌은 그해 겨울에 모두 1년생의 생활 주기로 삶을 마감한다. 초가을 이후에 출현한 새 여왕벌만 월동에 들어가는데 주로 나뭇잎 아래, 나무껍질과 줄기 사이 틈바구니나 인가의 벽 틈 같은 곳에 들어가 겨울 추위를 피하며 봄이 되기를 기다린다.

따뜻한 봄이 찾아오면 겨울을 무사히 넘긴 여왕벌이 활동에 들어가는데 대략 3월부터 5월 정도쯤이다. 여왕벌은 집 지을만한 적당한 장소가 보이면 혼자서 집을 짓기 시작한다. 일벌이 나오기 전까지는 단독으로 산란과 새끼 기르기를 도맡게 된다. 일벌이 나온 후부터는 다수의 일벌과 함께 집을 짓고 새끼까지 돌보는 시기를 거치게 된다. 일벌 수가 많아지면서부터는 여왕벌과 일벌의 역할이 완전히 분리된다. 여왕벌은 알 낳는 일에만 집중하게 되는데 늦가을이 되면 수벌과 짝짓기를 하고 동면에 들어가게 된다. 옛날에 나온 영화 제목이나 다방 이름, 미용실 이름 등에 여왕벌이 들어가는 것도 여왕벌의 이런 중요한 역할과 이미지가 작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123.jpg
▲ 꿀벌.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말벌은 밀랍으로 집 짓는 꿀벌과 달리 썩어가는 나무를 갉아 만든 펄프로 집을 짓는다. 말벌 집에 갖가지 무늬가 들어있는 이유다. 턱으로 갉아 침과 섞는 나무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집 색깔이 다양해지는 것이다. 장수말벌과 꼬마장수말벌 그리고 말벌은 땅속이나 큰 나무에 나 있는 구멍 속에 집을 짓는 반면에 다른 종류의 말벌들은 집 처마 밑이나 나뭇가지, 풀과 나무가 섞여 있는 덤불 같은 개방된 장소에 집을 짓는다. 먹이는 고체로 된 먹이와 액체로 된 먹이로 나눌 수 있다. 작은 벌이나 곤충을 사냥한 후 경단처럼 돌돌 말아 물어온 고체 먹이는 유충이 먹는다. 성충 먹이는 주로 참나무 같은 나무의 수액, 꿀, 과일에서 나오는 즙, 청량음료 같은 것들이다. 포도, 무화과, 배, 복숭아, 홍시같이 사람들이 좋아하는 과일에 말벌이 많이 찾아오기도 하는데 근처 공원으로 소풍 나갈 때 들고 간과일에 벌이 많이 찾아오는 바람에 곤란을 겪기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러 말벌 종류와 장수말벌 모두 생활사는 비슷한데 가장 큰 차이점은 몸 크기다. 장수말벌 중에서 일벌은 30~45mm 정도, 여왕벌은 50mm에 달할 정도다. 유충은 부화 후 다섯 번 탈피를 거쳐 번데기가 된다. 자세히 살펴보면 하얗고 다리가 짧은데 몸은 뚱뚱하고 날카로운 턱이 있다. 턱은 성충들이 구해온 곤충 경단을 씹어 먹을 때 사용된다. 유충들은 배가 고프면 턱으로 벌집 벽을 긁어 먹이를 보챈다. 유충이 커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장수말벌은 쉼 없이 먹이를 찾아다니며 사냥해 유충을 키운다. 일벌은 암벌들인데 우화 후 약 30일 정도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정란에서 태어나는 수벌은 암컷과 달리 독침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자꾸만 몸집을 불려 나가며 채근하는 유충의 먹이를 구하러 다니는 어른 장수말벌은 그야말로 무자비한 사냥꾼으로 돌변한다. 곤충 세계 최강의 전투 군단이 바로 장수말벌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많이 죽임을 당하는 대상은 꿀벌들이다. 꿀벌 집을 발견한 정찰병 장수말벌은 집 입구에 페로몬을 발라 다른 일벌들을 불러들인다. 이때부터는 목숨 건 전투가 벌어진다. 유럽에서 들여온 양봉 꿀벌의 경우는 거의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보게 된다. 반면에 재래 꿀벌은 오랜 기간 같은 공간에서 살아오면서 나름의 방어 전략을 보여 장수말벌에 대항한다고 한다. 꿀벌들이 장수말벌에 대항해 싸우는 방법은 수많은 일벌이 일시에 장수말벌을 둘러싸 몸에서 나는 열로 죽이는 방법밖에 없다. 이때 양봉 꿀벌은 대부분의 전투원들이 끝까지 싸워 전멸에 이르는 반면 재래 꿀벌은 장수말벌 정찰벌이 발라놓은 페로몬을 턱으로 긁어내는 기민함을 보인다고 한다. 다른 장수말벌 증원 병력이 날아오는 것을 막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는 것이다. 또 전멸에 이르는 상황을 막기 위해 여왕벌과 일벌 일부는 벌통과 새끼들을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도망가는 전략을 취하며 새로운 집으로 이동해 다른 터전을 마련한다. 열 마리 이상의 장수말벌이 10000~30000마리 정도 되는 꿀벌을 공격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30분에서 3시간 정도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봄부터 늦여름까지 애써 키운 양봉을 지켜야 하는 주인 입장에서는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자칫 방심하다가는 벌통 앞이 꿀벌 사체로 뒤덮이는 참혹한 현장을 그냥 눈으로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풀이되기도 한다. 장수말벌이 꿀벌을 공격하는 상황은 오전에 시작해 오후까지 지속하는데 벌통 출입구 앞에서 꿀벌의 전투병들을 무차별적으로 물어 죽이며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전투를 이어간다.

123.jpg
▲ 과일즙과 물을 찾아나선 장수말벌./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벌통 앞에서 가만히 관찰해보면 꿀벌과 장수말벌의 전투 장면은 마치 홀로코스트 같은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전투에 참가한 20~30마리 정도의 장수말벌 중 2~3마리만 희생되고 전투는 끝이 나게 된다. 전쟁을 끝낸 장수말벌은 꿀벌 새끼를 고깃덩이로 만들어 자기들 새끼 먹이로 물어 나른다. 꿀벌이 저장해 둔 꿀은 어른 장수말벌 먹이로 운반하는데 길게는 1~2개월간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장수말벌은 꿀벌뿐만 아니라 다른 종류의 말벌집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여 대항군에 맞서 전투를 벌이기도 한다. 이때 상대를 공격하는 무기는 강력한 힘을 가진 턱이다.

말벌 종류는 모두 독침의 독성이 강한데 장수말벌은 덩치에 걸맞게 많은 양의 독을 주입할 수 있다. 그래서 장수말벌에 쏘이면 더욱더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사람이 장수말벌 집 근처에 다가가게 되면 정찰병들은 경계태세에 들어간다. 사람에게 다가와 빤히 주시하며 주변을 맴돌기도 하는데 절대 함부로 움직이거나 쫓으려 해서는 안 된다. 움직이지 말고 장수말벌을 주시하면서 가만히 서 있으면 경계를 풀고 그 자리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날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때 섣부른 판단으로 갑자기 뛰어가거나 손에 쥐고 있는 물건을 휘두르게 되면 장수말벌은 오히려 공격 태세로 전환하거나 다른 전투병들을 불러 모을 수 있으므로 각별히 주의해서 대처해야 한다. 만약에 공격 태세에 들어가 움직임이 사나워지는 상황이 되었다면 낮은 자세를 취한 후 무조건 빠른 속도로 뛰어서 도망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머뭇거리다 지체하게 되면 20~30마리의 지원군이 도착해 집단 공격을 할 수도 있으므로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 장수말벌에 쏘이면 송곳으로 몸 곳곳을 찌르는 것 같은 아픔을 겪게 되는데 지체 없이 병원으로 이동하는 것이 목숨을 건질 수 있는 방법임도 명심해야 한다. 되도록이면 최대한 머리 부분을 보호하는 것이 위험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임도 알아두어야 한다. 만약에 벌이 있을 것 같은 곳에서 부득이하게 일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풀이 우거진 곳에 먼저 돌을 던져보는 것이 좋다.

벌을 연구하는 학자들 말에 따르면 장수말벌은 검정색 털을 가진 동물에 공격적으로 반응한다고 한다. 오소리나 곰 같은 동물들이 천적이기 때문이다. 검은 온 입은 사람에게 보이는 강한 공경 성향은 이런 검은 털 동물들에 대항하기 위한 본능에서 나온 것으로 추측되어진다.

인간 입장에서 보면 장수말벌은 양봉 산업에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는 해충인 반면에 소나무 재선충의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 성충을 사냥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곤충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무조건 퇴치하거나 제거해야 하는 무시무시한 곤충으로 여길 필요까지는 없는 것이다. 해충을 제거해주는 고마운 곤충이기도 하고, 사람을 위협하는 무서운 곤충이기도 한 장수말벌. 모든 자연이 그러하듯 지구 생태계를 유지해 나가는 측면에서 보면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는 말이 진리인 듯하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