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비밀결사조직 독립운동
1944년 붙잡혀 모진 고문당해
해방 후 마산서 교사·화가로
기념사업회 "지역사 재발견"

고 괴암(魁巖) 김주석(1927∼1993) 선생이 15일 광복절에 독립유공자 훈장을 받는다. 지역사회에서 서양화 작가인 김 선생의 일제강점기 항일 운동 활동을 재조명해왔다. 이번에 선생이 독립유공자로 서훈되면서, 선생의 가족뿐만 아니라 지역민들이 크게 알려지지 않은 지역사를 재발견해 국가로부터 공인까지 받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괴암 선생은 누구 = 진해 출신인 김주석 선생은 화백, 미술교사 등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선생은 평생 항일 운동을 하고 얻은 고문후유증으로 고통받았다.

1941년 서울 경성전기학교 토목학부에 입학했던 그는 이듬해 민족차별과 조국해방을 위해 단식운동을 했고, 16세인 1943년 비밀결사조직인 학우동인회를 조직했다. 친필 수기에서 학우동인회는 '우리는 빼앗긴 조국강토와 자주 독립국가를 쟁취하기 위해 필사적 노력을 다할 것을 맹세한다'고 다짐했다.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탄압을 분쇄, 일본 침략주의자를 격멸, 일본의 피의 수출 강요를 반대, 조상의 문화전통을 사수한다'는 실천 사항도 적었다.

고 괴암 김주석 선생

학우동인회는 '조선총독부 총독 암살, 일본정치 고위 관리 암살, 일본(조선)총독부 행정 마비, 통신군사시설 파괴, 독립군에 정보 제공, 우리말 우리글 고수 투쟁, 동포들의 문맹 퇴치, 극한적인 사태 발생 시 해외로 탈출' 등을 계획하기도 했다.

그러다 1944년 4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붙잡혀 부산형무소에 수감됐다. 이곳에서 친일 헌병 신상묵 등에게 모진 고문을 당했고, 당시 경험을 글과 그림으로 자세히 남겼다. 친필 수기에 일제 헌병이 고문하는 장면 스케치와 고문하는 방법, 도구 등을 상세히 그려서 설명했다. 이 그림은 창원시립진해박물관에도 전시됐다.

선생은 고문을 당한 후 환청에 시달리며 잘 걷지 못하는 등 신체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선생은 출소 후 진해, 마산 지역에서 40여 년간 미술교사를 했다. 1955년 마산 최초의 미술단체인 흑마회 창립회원 등으로 활동하며, 마산에서 작가 활동도 펼쳤다.

◇"공적 인정받아 기쁘다" = 유족과 괴암김주석기념사업회는 이번 독립유공자 서훈 소식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선생의 1남 4녀 중 큰딸인 김언주(67·사천시 용현면) 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0여 년 만에 생전에 못 이룬 독립유공자로 인정받게 됐다"며 기뻐했다. 그는 "아버지는 고문 때문에 평생 약에 의지해 사셨다. 그 고통에도 지팡이를 짚고 마산 산복도로를 걸어 마산여중, 제일여중·고 등에서 40여 년간 미술을 가르치시고 작품 활동에 전념하시다 돌아가셨다"며 "고문 때문에 그렇게 고통을 받으시는 것을 철없는 자식들은 몰랐다. 약 한 첩 못해드리고, 정성껏 발 한 번 주물러 드리지 못했다"며 한스러워했다.

김주석 선생의 친필 수기 중 일제 헌병이 조선인을 고문하는 장면. /경남도민일보 DB

서훈되기까지 지난 2016년 12월 창립한 괴암김주석기념사업회의 활약도 컸다. 기념사업회는 선생이 기록한 친필 수기, 자서전 등을 바탕으로 선생의 유지를 받들고자 활동해왔다. 선생이 생활하면서 작품 활동을 한 곳(창원시 마산합포구)에 김주석기념관도 마련해 상설 전시를 열고 있다.

전보경 기념사업회장은 "제자를 중심으로 기념사업회를 꾸렸다. 작년에 국가보훈처가 마산에 와서 검증을 한 후 이번에 선생님이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게 됐다. 선생님 영전에 좋은 소식을 전하게 돼서 감사하다. 가슴이 찡하다. 15일부터 무학화가회 이름으로 마산에서 선생님 작품과 회원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점석 기념사업회 이사도 "선생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계기로 지역사회에서 김주석 선생과 같은 숨은 사례들을 더 찾아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김주석 선생의 진해헌병대 고문 문제를 파고들다 보니, 해방 후 친일파가 청산되지 못하고 권력자로 군림한 한국현대사 문제까지 맞닿아있었다. 지역 현대사 재발견이라는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김주석 선생의 독립유공자 서훈 수여식은 15일 오전 9시 30분 경남도청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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