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 증가 속 TV 없이 휴대용 IT 기기로 방송 시청
확인·동의 절차 없이 수신료 부과…제도 개선 필요성

#이모(28·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 씨의 집에는 TV가 없다. 지난해 9월 이사를 한 뒤 몇 개월간 TV 수신료가 부과된 것을 알게 된 이 씨는 한국전력공사에 연락해 TV 말소 신청을 했다. 이후 TV 수신료가 부과되지 않았지만 5월분 전기요금 고지서에서 다시 TV 수신료 항목으로 돈이 빠져나가는 것을 발견했다. 한전에서는 담당 검침소 착오로 재등록됐다면서 부당 징수된 수신료를 되돌려줬다.

#어린 자녀를 둔 박모(33·김해시 내동) 씨는 TV가 자녀의 성장에 방해될 것 같아 3년 전 집에 TV를 없앴다. 관리비에서 TV 수신료가 빠져나가는 줄 몰랐던 박 씨는 최근에야 TV 말소 신청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박 씨는 "그동안 빠져나간 수신료가 10만 원은 될 것"이라며 억울해했다.

최근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TV 시청 행태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스마트폰, 태블릿PC, 노트북 등 휴대용 IT 기기가 발달하면서 유튜브, 넷플릭스, 통신사 TV앱 등 다양한 동영상 유통 채널이 생겨났다. 이에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TV 방송을 TV 수상기 대신 휴대용 IT 기기로 시청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가구별 TV 보급률은 2011년 1.32대에서 2016년 1.28대로 정체한 반면에 노트북·넷북은 0.23대에서 0.42대로 2배가량 증가했고, 스마트패드(태블릿PC)는 0.02대에서 0.15대로 크게 늘어났다.

창원지역 한 아파트의 5월분 관리비 고지서. TV 수신료 항목으로 2500원이 부과됐다. /강해중 기자

또한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계포털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독신가구 TV 보유율은 91%로, 1세대 가구(99%), 2세대 가구(97.4%), 3세대 가구(100%)보다 훨씬 낮았다. 인터넷으로 영상 프로그램(실시간, VOD, 인터넷방송 등)을 전혀 시청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독신가구도 41.2%로 1~3세대 가구보다 낮게 나타났다.

이처럼 TV 시청 행태가 변화함에 따라 한전이 KBS의 위탁을 받아 전기료와 함께 일괄징수하는 TV 수신료를 분리해서 징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TV 수신료는 국가기간 공영방송 운영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는 수단으로 방송법 제56조에 의해 보장된 일종의 '준조세'다. 한전은 모든 가구에 TV 수상기가 설치돼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전기료와 함께 월 2500원 수신료를 징수해간다. TV 수상기가 없는 가구는 KBS나 한전에 TV 말소 신청을 해야만 수신료를 내지 않는다.

이 씨는 "1인 가구가 폭증하는 지금 TV 없이 생활하는 사람이 아주 많을 것"이라며 "그런데도 '묻지 마 징수' 행태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씨는 "전기료와 TV 수신료를 구분해서 받는 게 맞다. 그게 어렵다면 수신료를 받기 전에 최소한 동의 혹은 확인 절차는 거쳐야 하는 게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도 TV 수신료 일괄징수에 대한 불만과 말소 방법을 묻는 게시글이 넘쳐난다.

지난해 4월 박주민(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KBS가 송출하는 방송을 시청하지 아니하는 시청자에게까지 수신료를 강제 납부하게 하는 불합리한 점이 있다"며 전기요금과 TV 수신료를 분리 징수해야 한다는 방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현재 이 법안은 소관위에 계류 중이다.

김유철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는 "TV 수신료 문제는 예전부터 논란이 돼 왔다. 정치적인 이유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1인 가구가 늘고, TV 없는 집이 많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전향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공영방송 존재 의미와 얽혀 있는 문제이지만 분리 징수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TV 수신료 분리 징수를 신중히 풀어나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상윤 경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TV 수신료는 단순히 TV가 있으면 내고 없으면 안 내는 차원이 아니라 공영방송 존재 당위성과 관련된 문제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과 공영방송의 정체성, 예산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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