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 속의 태풍 (2) 1991년 '글래디스'
고기압 등에 진로 가로막혀 남부지방에 이틀간 물폭탄
동네 하천, 거대한 강으로 폭 2배로 늘어 100m 육박 소실된 도로·다리 재건설
부산·울산 당일 400㎜ 내려역대 1일 최다 강수량 기록

1991년 기자는 11살이었다. 아직 학원이 별로 없던 시절이었다. 방학 때가 되면 친척들이 돌아가며 며칠씩 사촌들을 맡았다. 그해 여름, 나는 사촌들과 울산 고모네, 울산 숙모네를 거쳐 큰집인 우리 집을 돌며 사촌들과 지냈다. 그렇게 여름방학이 끝나가고 있었다.

여름방학 막바지에 태풍이 온다는 방송이 들렸다. 도시민들에게 태풍은 그저 지나가면 그만인 자연재해일 수도 있다. 도시에는 볼 것도 많고, 사건도 많고, 듣는 것도 많아서 태풍이 그렇게 중요한 뭔가로 기억되기 어렵다. 반면 농촌에 태풍은 '중요한 사건'이다. 그해 농가소득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이므로 태풍에 대한 긴장감이 높다. 따라서 태풍에 대한 기억도 도시민보다는 농민들이 훨씬 깊다.

아무튼 태풍이 온다는 소식이 들렸지만 어린 나는 심드렁했다. 태풍이 약했기 때문이다. 이미 이때 태풍의 중심기압 숫자가 낮으면 강한 태풍이고, 높으면 약한 태풍이라는 것을 알았다. 방송에서 965, 970mb(hPa)라고 할 때, 약간 실망했다. 앞서 간 태풍(1991년 9호 태풍 케이틀린)이 950mb였는데도 거의 피해가 없었다. 따라서 970mb 태풍은 보잘것없어 보였다. 논밭에서 땀 흘리는 어른들 속도 모르고 나는 '좀 센 게 와야지 화끈한데'라는 철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어쨌든 1991년 8월 22일 태풍 글래디스가 우리나라로 왔다. 이때 나는 11살이었다. 집 밖에 나가 태풍을 느끼며 호기를 부려볼 철없는 나이다. 하지만 감히 그러지 못했다. 비가, 비가 너무 많이 왔다. 물론 비가 많이 올 수도 있다. 장맛비도 그렇고 국지성 집중호우나 소나기가 올 수도 있다.

하지만 태풍은 못해도 초속 10~20m 강풍을 동반한다. 강풍에 쏟아지는 비는 평범한 빗방울이 아니라 강력한 운동에너지를 가진 총알처럼 내리꽂는 빗방울이다. 어린 나였지만 감히 밖으로 나갈 생각은 하지 못했다. '밖에 나가면 자칫 죽을 수도 있겠다'는 긴장감이 들었다. '좀 더 센 태풍이 오지' 하던 호기는 '인제 그만 좀 쏟아졌으면' 하는 기도로 변했다.

그날 밤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우리 집에서 불과 100m도 안 떨어진 곳에 있던 마을 보건지소장이 우리 집으로 피난온 것이다. 우리 집은 지대가 높은 곳에 있었고, 문중 종가라 방이 많았다. 반면 보건지소는 건물은 튼튼했지만 지대가 다소 꺼진 곳에 있었다. 그래서 보건지소장이 4살배기 아이를 데리고 온 것이다.

태풍 글래디스로 물바다가 된 경주시 안강읍 일대./KTV대한뉴스

비가 워낙 쏟아지다 보니까 하늘이 종일 컴컴했다. 낮이 되어도 밤처럼 느껴졌다. 도대체 얼마나 쏟아부은 걸까? 날짜 감각조차 무뎌질 무렵, 비가 약해졌다. 나는 집에서 나왔다. 생각보다 마을이 온전했다. 그래서 '괜찮네'라는 생각이 든 순간 거대한 강이 눈에 보였다. 정확히 말하면 그건 마을 앞에 흐르던 하천이었다. 그런데 그 하천 폭이 거의 2배로 늘어나 있었다. 흙탕물이 무섭게 쏟아져 내려가고 있었다. 누구는 떠내려가는 송아지를 봤다고 하고, 누구는 뱀이나 생활용품이 떠내려갔다고 했다.

아무튼 폭 30~40m에 불과했던 하천이 근 100m 가까이 넓어졌으니 마을의 지도가 바뀔 수밖에 없었다. 도로나 다리도 새로 깔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도로를 새로 깔고자 임시도로도 내야 했다. 태풍 글래디스로 인해 새 도로와 다리가 완성되는 데는 수년이 걸렸다. 그렇게 태풍 글래디스는 우리 마을 지도를 바꿔 놓고 사라졌다.

그뿐만 아니었다. 태풍 글래디스로 울산에 500㎜가 넘는 비가 쏟아졌는데, 이를 견디지 못하고 아파트 옹벽이 무너진 곳이 있었다. 바로 고모네 아파트였다. 며칠 전까지 사촌들과 놀던 곳이 텔레비전에 나오자 '촌놈'의 입장에선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1999년 인터넷을 접하면서 나는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소형 태풍 글래디스에게 어디서 그런 힘이 있었을까?

태풍 글래디스는 1991년 8월 15일 발생했다. 일본 쪽으로 쭉 올라오다 규슈를 지나 대한해협으로 빠질 예정이었다.

그런데 동해안에 고기압이 하나 버티고 있었다. 고기압은 공기를 밖으로 밀어내는 성질을 갖고 있다. 그래서 고기압이 있으면 태풍이 좀처럼 그곳으로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소형 태풍' 글래디스 따위가 감히 그 고기압을 밀어낼 수는 없었다. 보통 이럴 때 태풍은 그냥 북한 쪽으로 곧장 직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마침 북쪽에도 고기압이 버티고 있었다.

북위 30도가 넘으면 편서풍이 강해진다. 구름이 서쪽 중국에서 동쪽 우리나라로 흐르는 이유가 바로 편서풍 때문이다. 편서풍은 글래디스더러 '동쪽 대한해협으로 빠져'라고 바람을 불어댔다. 하지만 글래디스는 갈 수가 없었다. 결국 글래디스는 주춤거리며 우리나라 남부지방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정확히 말하면 태풍의 중심은 천천히 남부내륙지방을 관통해 서해안으로 빠졌지만, 태풍이 남겨 놓은 비구름이 영남지역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러면서 태풍이 가지고 있던 비를 모조리 쏟아버렸다.

태풍이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더라도 보통 재빨리 한반도를 통과해 지나간다. 태풍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시간은 만 12시간에서 24시간 사이다. 매미나 사라 같은 큰 태풍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글래디스는 오도 가도 못하면서 근 이틀 동안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한반도 남부지방에 쏟아 버렸다.

지금도 기상청 '기후자료 극값' 메뉴에 가면 지역별 역대 일일 최다 강우량 기록이 나와 있다. 울산과 부산은 지금도 글래디스 때의 기록이 깨지지 않고 있다. 울산에는 1991년 8월 23일 단 하루에만 417㎜가 왔으며 이후 온 강수량까지 합치면 근 600㎜가 왔다. 부산 또한 이날 하루에만 439㎜가 왔으며, 이후 100㎜ 이상 더 퍼부었다. 창원에도 이날 264㎜가 쏟아졌는데 이는 마산·창원 합쳐서 역대 3위 기록이다. 거제에도 341㎜가 왔다.

작은 태풍이라도 상황에 따라서는 초대형 태풍 못지않은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어른들이 태풍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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