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유망 공무원이 스님 될 뻔한 사연

지난 1월 경남도청 서울본부장에 임명된 김상원(39) 씨는 초고속 승진에, 앳돼 보이는 외모와 달리 나름 '파란만장한' 인생의 이력자다. 학교생활에 적응 못 해 자퇴한 적이 있는가 하면 방황 끝에 출가를 고민하기도 했다. 김 본부장은 "종교인의 삶도 값지지만 세상을 더 좋게 만들고 싶은 열망이 강했고, 그 이상을 실현하고자 공무원의 길을 택했다"고 말했다.

학창시절 '삶의 의미' 찾아 방황… 출가 고민도

Q. 진주 출신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1980년 9월 8일 진주시 망경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원래 아버지 고향, 제 본적은 마산시 회원동인데, 당시 아버지께서 진주 선명여상 선생님을 하고 계셨습니다. 외가는 진주구요. 진주에서 태어난 후 잠시 울산과 마산에서도 살았다고 들었으나 워낙 어렸을 때라 기억에는 없네요. 학교는 진주교대 부속초등학교와 대아중을 거쳐 경남과학고를 다녔습니다. 그러다 고2에서 고3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특목고의 비교내신제, 즉 수능 성적에 비례해 내신등급을 주는 제도가 폐지되면서 자퇴를 했는데 사실 입학 초기부터 학교에 적응 못 해 심적으로 많이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대신 검정고시를 치렀고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에 들어갔습니다."

Q. 공부를 잘했던 거 같은데 왜 방황했나요.

"외려 공부를 못해서입니다. 특목고 수준이 높기도 했고 또 여러 가지로 준비 없이 들어간 측면이 있었습니다. 성숙하고 강한 성격이면 극복할 수 있었겠으나 심신이 미약하기도 했구요. 방황은 20대 중후반까지 꽤 길게 이어졌습니다. 스무 살 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것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심지어 스님이 되고 싶어서 출가를 깊이 고민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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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원 신임 경남도청 서울본부장. / 고동우 기자

Q. 출가까지….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십시오.

"자라면서 꿈도 생각도 계속 바뀌었습니다. 아버지처럼 선생님이 되고 싶은 적도 있었고, 한의사가 되고 싶은 적도 있었습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이런 고민의 중심에는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습니다. 특히 어릴 때 읽었던 '더불어 사는 세상'이라는 책이 제 가슴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고, '다 같이 행복한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늘 고민하게 됐습니다. 그 답이 교육에 있다고 생각해서 교육자가 되고 싶었던 거고, 한의사가 되어 아픈 분들을 치유하면서 제 소명의식을 다하자 했던 거죠. 그러다 머리가 커지며 제 고민이 극에 달했을 때는 '우선 세상의 이치를 알아야 제가 올바르게 쓰일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까지 하게 됐죠. 진리를 깨닫고자 많은 철학·종교 서적을 탐독했고 결국 출가까지도 고심을 했던 것입니다."

공직에 대한 동경, '더불어 사는 세상' 꿈꿔

Q. 방황 끝에 최종 선택은 공무원이었군요. 왜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택했는지, 공무원 꿈은 언제부터 갖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에 들어갈 때부터 뚜렷하진 않지만 생각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교사셨으니 공직에 대한 동경 같은 게 있었고 또 앞서 말했듯 공적인 삶, 공공에 기여하는 삶에 대한 지향이 있었습니다. 서울시립대는 많은 선배들이 서울시청 등에 진출해 있는 학교이거든요. 진리를 탐구하면서 세상의 어두운 곳을 치유하는 종교인의 삶도 너무나 값진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당장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은 열망도 강했습니다. 특히 율곡 이이, 다산 정약용 등 세상 속에서 호흡하면서, 나라와 백성만을 생각하며 평생을 헌신한 그 선비정신을 접할 때면 부족하나마 저도 그런 삶을 좇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공직자로서 '더불어 사는 세상'의 이상을 실현해보자고 결심했고, 공무원의 길로 들어선 것입니다."

Q. 공무원 생활은 언제 시작했고 또 주로 어떤 일을 해왔는지요.

"2007년 제51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해 2008년 3월 중앙공무원교육원 신임관리자과정에 들어가면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어 2009년 3월 정식 사무관이 되면서 경남도청으로 전입했고, 첫 근무지는 산림녹지과 유엔사막화방지협약총회유치TF팀장이었습니다. 그 후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에 1년 간 파견 근무를 갔다가 도청으로 복귀해 3대체전준비TF팀장, 뉴미디어담당사무관, 중국담당사무관, 기업유치담당사무관, 정책개발평가담당사무관, 기획조정담당사무관 등을 맡아 일했습니다. 2013년에는 장기국외훈련에 선발돼 약 2년간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정책학 공부를 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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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8월 세계 3대 항공정비 기업인 AAR사를 방문해 투자유치 활동을 하고 있는 김상원(왼쪽에서 둘째) 본부장. / 김상원 씨 제공

Q. 처음 행시를 치를 때부터 경남도청 근무를 지원했던 건가요? 이유가 있나요?

"네, 행시에 지역 모집이 따로 있습니다. 정부 부처에서 일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지방행정은 기본적으로 종합행정이거든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예컨대 산업통상자원부에 들어가면 그곳 일만 해야 하지만 지방행정은 그렇지 않잖아요. 여건, 기회가 되면 지방에서 일하다 중앙 부처로 갈 수도 있구요. 시대 흐름 자체가 분권화, 민주화였고 또 지방분권이 강조돼 지원한 측면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블루오션이었고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많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왕이면 고향인 경남이 좋겠다는 생각도 당연히 했구요."

Q. 경남도청에서 근무하면서 가장 보람 있던 순간을 꼽는다면요.

"미국에서 공부하고 2015년 돌아와 투자유치단 기업유치담당사무관으로 발령받았는데 그때 세계 3대 항공정비(MRO) 기업인 AAR(Allen Aircraft Radio)사와 최종 MOU 체결을 이끈 것입니다. 2015년 당시 경남의 MRO 사업자 선정을 위해서는 세계적인 민수 MRO 기술이 필수 조건이었거든요. AAR사 유치로, 지금의 최종 선정에 일조했다고 생각하면 늘 가슴이 뿌듯합니다."

Q. 여러 도지사와 함께 일했는데 누가 가장 인상적이었나요?

"아무래도 가까이서 모셨던 임채호 권한대행과 지금의 한경호 대행이 기억에 많습니다. 특히 한 대행은 제가 생각하는 공직자로서 삶, 정부와 도청이 가야 할 방향 등과 관련해 저와 생각이 거의 비슷합니다. 도지사는 아니지만 가장 존경하는 분은 최만림 현 도청 기획조정실장입니다. 정책개발, 기획조정 일을 하며 상관으로 모셨고 지금도 직속상관인데 일하는 능력도 탁월하지만 윗사람·아랫사람을 대하는 태도랄까, 성품이 너무나 훌륭합니다. 앞으로 공직 생활을 하면서 일, 사람 관계 등 모든 면에서 본받고 싶은 분입니다."

경남도정의 첨병, 경남도청 서울본부

Q. 본론인(?) 서울본부 이야기를 이제 하게 되네요. 이전 본부장들보다 많이 젊은 편인데 어떤 배경에서 본부장에 임명됐을까요. 한경호 대행이 특별히 주문한 게 있습니까?

"지난 1월 5일 발령장을 주시면서 '서울본부는 경남도정의 첨병 역할을 해야 한다. 국회, 중앙부처와 수시로 교감하면서 도정 현안을 지원하기 위한 역할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안을 많이 아는 사람이 본부장으로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제 나름대로 대행의 말씀을 해석하자면, 기존 업무는 기본으로 하되 서울본부 차원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만들어 역으로 경남도정에 접목시키는 등 보다 적극적인 행정을 해달라는 주문 같습니다. 최근까지 도청 정책기획관실에서 일한 만큼, 도정 현안을 비교적 많이 알고 또 새로운 접촉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하나 예를 들면 얼마 전 특허 관련 기관 인사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를 계기로 특허 관련 사업을 경남에 접목할 수 있는 방안을 해당 부서에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아직 초기 단계라 자세히 말씀드릴 수 없지만 향후 경남도에 큰 도움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Q. 이전 홍준표 지사 때와 비교해 서울본부의 규모, 역할이 좀 변했다고 들었습니다.

"홍 지사 때는 정무직들이 포진해 있었습니다. 당시 서울본부장도 홍 지사 보좌관 출신이었구요. 홍 지사 사퇴 이후 대행 체제로 바뀌면서 정무직 인사들이 함께 나갔고 지금은 실무를 보던 분만 남아 있습니다. 그 외에는 큰 변화가 없습니다. 정당에 소속된 도지사 체제가 아닌 이상 정무 기능은 필요가 없는 거고 그만큼 인원도 줄어든 셈이죠."

Q. 올해 지방선거가 있어서 좀 애매할 거 같은데 서울본부가 주력 중이거나 주력할 현안을 말씀해주십시오.

"6월 지방선거 이후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서울본부로서는 누가 도지사로 오든 도청 운영에 불편함이 없도록, 특히 서울 관련 업무에 연착륙할 수 있도록 실무적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겠죠. 현안은 역시 국비 확보입니다. 연말에 정부 예산이 확정되지만 이미 국회의원과 정부 부처 공무원을 만나며 기반을 닦고 있습니다. 남부내륙철도 조기 착공, 조선업 지원, 지방분권 개헌, 선거구 획정 등도 꾸준히 챙기는 현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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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3월 경상남도 대선공약을 발표하는 자리. 사진 오른쪽이 김상원 본부장. / 김상원 씨 제공

Q.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시는지? 객지 생활 중인데 경남에는 자주 오가는지?

"아내와 27개월 된 딸아이가 하나 있습니다. 한동안 서울과 경남을 오가며 지내야겠죠. 아직 딸이 어려 아내가 자주 서울에 올 거 같구요, 저는 도청에 일이 있을 때 주로 경남에 갈 것 같습니다."

Q. 일 외에 특별한 취미가 있습니까.

"제가 게을러서 특별한 취미는 없구요,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고 영화 보고, 책 읽고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특이한 게 있다면 매일 아침 300배를 합니다. 앞서 말한 대로 20대 때 불교에 심취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어떤 스님이 300배를 권하더군요. 운동도 되고 정신수양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Q. 앞으로 삶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올해 제 나이가 서른아홉이고, 공직생활은 딱 10년이 되었습니다. 공무원으로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을 것 같은데요. 지금까지는 기본기를 다지고 공직자로서 자세를 정립하는 시기였다면, 앞으로는 경남도정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인재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구체적인 변화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서울본부장 역시 예전부터 설계했던 자리는 아니니까요. 확실한 것은 경남도청 공무원, 대한민국 공직자로 계속 일하고 싶은 것이고, 어떤 자리에 가더라도 그 직분에 충실하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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