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 시인의 <금강> 제5편

새야 새야 파랑새야 / 녹두밭에 앉지 마라 / 녹두꽃 떨어지면 / 청포장수 울고 간다. // 잘은 몰랐지만 그 무렵 / 그 노랜 침쟁이에게 잡혀가는 / 노래라 했다. // 지금, 이름은 달라졌지만 / 정오가 되면 그 하늘 아래도 오포가 울리었다. //

일 많이 한 사람 밥 많이 먹고 / 일하지 않은 사람 밥 먹지 마라. / 오우우…… 하고. // <중략>

내가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 그 가슴 두근거리는 큰 역사를 / 몸으로 겪은 사람들이 그땐 / 그 오포 부는 하늘 아래 더러 살고 있었단다.

- <금강> 1부 중

이제 <금강>의 또 다른 주인공인 전봉준을 만날 차례다.

작으나 다부진 체구가 꼭 녹두를 닮았다 하여 녹두장군이라 불린 전봉준의 얘기는, 슬픈 노래로 우리의 귓전에 맴도는 파랑새 노래로부터 시작된다.

시인은 어렸을 적부터 정오를 알리는 오포(午砲)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그 오포 소리를 전승 민요인 파랑새 노래의 다른 이름이라 여긴 시인은 시적 영감에서인지 몰라도 파랑새 노래와 오포 소리에서 '일하지 않는 자는 밥 먹지 말라'는 하늘의 계시를 느낀 모양이다.

'일하지 않는 자는 밥 먹지 마라'는 <금강>의 외침은 '무노동 무임금을 자본가에게'라는 우리나라 노동가요에서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말라. 자본가여 먹지도 말라"는 가사로 나타나는데, 그 전에 레닌이 <국가와 혁명>에서 "일하지 않는 자는 먹을 수 없다"는 사회주의 원칙이 러시아 혁명으로 이미 실현되었다고 하면서부터 널리 사용되었다. 이보다 먼저 기독교에서는 성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있을 적에 항상 "일하기 싫으면 먹게도 하지 마십시오"라는 말을 자주 하였다고 전하고, 중국 선종(禪宗)의 큰 스님인 백장 회해(百丈 懷海) 선사 또한 스스로 실천하며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마라(一日不作 一日不食)'고 한 말씀 하셨다.

그러하기에 동학혁명은 일하지 않는 자들이 먹고 마실 때 일하는 백성은 굶주리고 짓밟힌 그릇된 역사에서 비롯된바, 주객이 뒤바뀐 그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집단적 행위라 할 수 있으며, 따라서 '그 가슴 두근거리는 역사'는 살아있는 자 모두에게 혹은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도 식은땀을 흘리게 만드는 까닭이 있는 것이다.

동학혁명의 참담을 경험한 사람들이 시인의 어린 시절에는 '오포 부는 하늘' 그 아래 아직도 더러 살아 있었다. 점심때를 알리는 오포 소리는 누구 하나 거르지 않고 제때 끼니를 먹자는 소리다.

녹두가 열매를 맺지 못하면 녹두묵을 쑤려던 청포(淸泡)장수가 울고 가듯이, 일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세상을 위해 일어났던 녹두장군으로 '상징'된 그 꽃은 떨어져 울음으로 기억되고 있다.

1862년 / 전봉준이 여덟 살 되던 해 / 경상도 진주(晉州)에서 / 큰 농민반란이 일어났다. // 세금, / 이불채 부엌세간 초가집 / 다 팔아도 감당할 수 없는 / 세미(稅米), 군포(軍布), / 마을 사람들은 지리산 속 들어가 / 화전민 됐지 // 관리들은 버릇처럼 / 도망간 사람들 몫까지 / 이징(里徵), 족징(族徵)했다. / 총칼 앞세운 진주병사(兵使) / 백낙신(白樂莘). // …

황해도, / 평안도, / 이곳저곳에서 / 농민반란은 터졌다. / 마치 연주창처럼 / 걷잡을 수 없이, 팔도강산 이곳저곳에서 …

<금강> 2부 제1장 중

우리들에게도 / 생활의 시대는 있었다. // 백제의 달밤이 지나갔다. / 고구려의 치맛자락이 지나갔다. // 왕은, / 백성들의 가슴에 단 / 꽃. // 군대는 백성의 고용한 / 문지기. // 앞마을 뒷마을은 / 한식구, / 두레로 노동을 교환하고 / 쌀과 떡, 무명과 꽃밭 / 아침저녁 나누었다. // 가을이면 영고(迎鼓), 무천(舞天), / 겨울이면 씨름, 윷놀이, / 오, 지금도 살아있는 그 흥겨운 / 농악이여. // …

- <금강> 2부 제6장 중

전봉준은 난세에 나고 죽었다. 못나고 못된 벼슬아치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 달아난 사람의 몫으로, 남은 이민(里民)과 일가붙이에게 세금을 뒤집어씌웠다. 외적을 막으라고 준 총칼을 되돌려 들이댄 진주의 병마절도사. 목 주위에 염주처럼 줄지어 멍울진 부스럼이 돋듯 일어난 팔도의 농민반란은 갑오농민전쟁의 서막이었다.

시인은 한편 다가올 이상세계, 곧 지상천국이나 유토피아를 그리워하며, 이를 대신하여 먼 옛날 '삶이 있던 시대'를 떠올린다. 그리하여 '살아도 죽어지내는 시대'가 아닌 '생활(生活)'의 시대가 우리에게도 있었다고 한다. 왕과 군대는 본시 백성이 고용한 문지기였다. 그 시절엔 두레로 노동을 서로 바꾸고 쌀과 무명을 나눠 가졌다. 들녘의 무르익은 곡식을 거두고는 북치고 춤추며 하늘의 은혜를 맘 깊이 감사하던 제천의식을 행하였다. 이것이 녹두장군 전봉준이 꿈꾼 사회가 아니었을까? 아니다! 생활의 시대가 분명 과거에 있었다면, 그건 꿈이 아니라 빼앗기거나 잃어버린 것이니 되찾아 마땅한 것이리라.

달밤, 그것도 보름달이 뿌옇게 비친 부여의 백제, 집안(集安) 장군총(將軍塚) 벽화에만 남은 고구려의 치맛자락을 떠올린 사람은 <금강>의 시인 신동엽이다.

내 것 / 네 것 / 없는 하늘 소리가 / 무한(無限)에서 와서 / 무한으로 흘러간다. // 어디로 가는 바람인지, 수수잎을 / 흔들면서 한 무더기가 / 지나간다. // 오, 아름다운 노을 / 저 노을을 볼 때 / 우리는 이 세상, / 어떻게 미워할 수 있단 말인가, / 오, 아름다운 하늘 / 저 노을을 볼 때 어떻게 이 세상, 서러워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 …

- <금강> 2부 제9장 중

그리고 녹두장군의 마음 깊은 곳에는 사랑과 서러움이 짙게 배어있었다. 진정한 사랑은 서러움을 동반한다. 세상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어찌 세상이 서러울 것인가. 다만 세상이 사랑할 만큼 아름답지 못하기에 서러워할 수밖에 없는 일. 이것은 시인의 마음이 이입(移入)된 전봉준의 마음이다.

거사가 실패로 돌아간 뒤 법무아문에서 진행된 일본영사와 조선관원의 신문(訊問) 공초(供草)에 기록된 전봉준의 첫마디를 들어보면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내 나이 마흔하나, 선비로 살아가고 있다. 이 일은 마땅히 가르침에 따라 했을 뿐, 애초부터 본심에서 나온 일이니 다른 사람과 어떤 관계도 없다."

전봉준은 농민군의 장수답게 갑오년 거사의 모든 책임을 자신이 안았다. 그리고 동학혁명은 '가르침과 본심에서 한 일'이라고 못 박은 이 커다란 마음을 시인은 '내 것 네 것 없는 하늘의 소리'라고 해석하며 글을 풀어나간다.

하늘의 소리는 천명(天命)이라 한다. 천명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니 경전(經典)에서는 천명을 곧잘 바람에 비유한다.

다석의 말씀이다.

"노자(老子)는 하늘과 땅의 생김새가 마치 풍구(풀무)와 같다고 했다. 겉으로는 바람이 이는데 뜯어보면 텅 빈 빈탕이다. 종이와 뼈대만 있는 가운데 바람이 나서 딱딱한 쇠를 녹이는 작용을 하니, 그것을 뜯어보면 아무것도 없으니, 곧 인생이 그러하다고 한다. …

하나(太極)는 너무나 커서 헤아릴 수 없는 불측(不測)인데, 이것을 원일(元一)이라 한다. 하나는 밑동, 그래서 주체로서 모든 객체에게 영(令)을 내린다. 우리에게 직접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느님의 뜻으로 우리가 부지중에 움찔하는 것이 있다. …

'바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은 다 이와 같다.' 참 바람은 공간을 말한다. 예수는 이 바람을 영원한 생명의 운동에 비유한다. … 무왕불복(無往不復), 가서 돌아오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게 신앙의 요소이다."

하늘의 소리가 무한의 허공에서 와서 무한의 공간으로 흘러간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가면 다시 돌아오는(無往不復) 그 바람이 수수잎을 흔들며 지나가고, 천명을 받은 그이는 애욕과 증오를 모르며 다만 자비심이 바람처럼 일어난다.

전봉준은 동학이 가르친 한울님의 말씀에 따라 본심인 그 마음의 밑동을 알아, 농민군을 이끌었을 뿐 어떤 세속적인 것과 맺은 관계는 없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만약 농민군을 이용하여 한 자리 차지하려고 한 거사였다면 심문의 첫 마디이자 마지막인 이런 말씀을 단두대(斷頭臺) 앞에서 내뱉지 못했을 것이다. 가르침에 대한 깨달음과 큰 신앙이 있어 일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또 다석의 말씀이다.

"동학의 스승 최제우는 한참 국운이 쇠할 때 동학을 일으키며,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의 본주(本呪)와 지기금지 원위대강(至氣今至 願爲大降)의 강령주(降靈呪)라는 주문을 내걸었다. … 총알에 안 맞는다고 말하는 것은 불교나 노자나 동학이나 다 마찬가지다. 마음이 곧으면 독을 먹어도 죽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은, 불교사상에서 무서울 것이 없다는 말과 같다."

죽창을 들고 농민전쟁에 나선 흰옷 입은 사람들이 총알을 피해 갈 수 있다고 믿은 것처럼, 녹두장군은 '내 비록 지금 가지만 나의 마음을 가진 사람과 세상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무왕불복(無往不復)의 신앙으로 갑오농민전쟁의 선두에 나섰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석림의 <금강>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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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동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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