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한 야구선수"

NC다이노스의 든든한 기둥 '호부지' 이호준이 올 시즌을 끝으로 정들었던 그라운드를 떠난다. 그가 현역 마지막을 아름답게 마무리할지 주목된다. 프로 24시즌째 맞는 올해 초 이호준은 "박수칠 때 떠나고 싶다"라면서 시즌을 앞두고 전격 은퇴를 선언했다. 올해 주로 대타로 출장한 그는 적은 기회에도 가치를 증명했다. 정규시즌 77경기에서 164타수 49안타 타율 0.299 7홈런 36타점을 기록하며 녹슬지 않은 타격감을 보여줬다. 특히 지난 9월 24일 마산 LG전에서는 1-3으로 뒤진 9회말 대타로 나선 단 한 타석에서 '역전 끝내기 3점 홈런'을 쏘아 올렸고, 5일 뒤인 29일 넥센전에서는 3회말 동점 2점 홈런을 터트리며 베테랑의 진가를 여실히 드러냈다. 현역 마지막 시즌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이호준을 만나 은퇴를 앞둔 심정과 NC에서의 삶을 되짚어봤다.

얼마 남지 않은 현역 기간

Q. 현역으로 나설 경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한 경기, 한 경기가 소중할 것 같은데, 어떤 마음으로 경기에 임하나요.

"먼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뭉클함을 느낍니다. 선수들과 함께 있을 시간이 얼마 없다는 생각에 더 애틋해요. 후배들과 팬들이 보고 있으니 마지막까지 선배로서 팀에 보탬이 되는 자세로 야구에 임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주위를 되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은퇴를 앞둬서 그런지 후배들에게 더 챙겨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더그아웃에서 말도 더 많이 걸고 파이팅도 더 많이 외칩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이 시간을 즐기고 싶어요. 팀이 어려운 순위 싸움을 하고 있지만 선수들이 편안하게 경기를 할 수 있도록 장난도 많이 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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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호준 NC다이노스 선수. / NC다이노스

Q. 현역 마지막 시즌임에도 웬만한 선수들보다 뛰어난 성적을 거뒀습니다. 은퇴 선언한 것이 아쉽지는 않나요?

"전혀요. 잘한 결정입니다. 제가 1년 더 고집하고, 기록에 집착하다 보면 마지막 모습이 좋지 않았을 겁니다. 올해 팀이 리빌딩하기로 했고 모창민, 권희동이 제 자리를 완벽하게 메우고 있어 제 선택이 옳다는 걸 더 확신합니다. 만약 이 선수들이 역할을 하지 못해 제가 경기에 계속 나가게 됐다면 아쉬웠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 친구들이 충분히 잘할 거라 예상했고, 제 생각보다 더 잘하고 있기 때문에 은퇴 결정을 잘했다는 생각입니다."

Q. 각 구단에서 이승엽 은퇴투어만큼은 아니지만 조촐하게 마지막 방문을 축하해줬습니다. 그런 점에서 복을 많이 받은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사실 대부분 선수가 팀으로부터 '함께하지 못하겠다'는 통보를 받고 프로 생활을 마무리합니다. 저 역시 그렇게 마무리할 줄 알았어요. 제가 먼저 은퇴를 선언했기 때문에 후배들에게 꽃다발도 받고 타 구장 팬들에게 박수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떠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마지막에 좋은 추억을 가지고 떠날 수 있게 돼 더 특별하고 멋있게 은퇴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Q. 현역 마지막 5시즌을 NC에서 지냈습니다. NC에서의 삶은 어땠나요.

"행복합니다. NC에서의 5년은 매우 행복했어요. 제가 해보고 싶었던 야구를 다 펼친 것 같습니다. 나이 들어 NC에서 불러줬을 때 너무 놀랐고 고마웠어요. 주위에서 한물갔다면서 의아하게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가장 먼저 연락을 줬던 팀입니다. 감독님이 전화하셔서 한 말이 아직도 기억나요. '난 아직도 너를 높게 평가한다. 우리 팀에 꼭 필요한 선수다. 와서 도와줄 수 있겠니'라고 하셨는데 그 말이 무척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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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팀원들과 하이파이브 중인 이호준 선수. / NC다이노스

4년 연속 가을야구 출전한 NC다이노스

Q. NC는 어떤 팀으로 성장한 것 같나요.

"처음에 올 때는 약간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프로 경험이 없는 친구들과 함께하면서 꼴찌 하면 어쩌나 불안했는데 캠프 첫날 느꼈습니다. 이 팀은 정말 빨리 성장할 거라고. 선수들이 감독님이 무엇을 원하는지 빨리 알아챕니다. 어린 친구들이 하는 걸 보고 놀랐어요. 주전 자리를 잡으려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를 돌아보는 시간도 됐습니다. 만약 제가 큰 형이라고 저 혼자만 생각했다면 아마 FA 3년 끝나고 그저 그런 선수로 은퇴했을 것 같습니다. 저도 열심히 하는 분위기에 들어갔으니 5년 동안 어느 정도 팀에 보탬이 되는 선수가 됐지 않았나 싶어요. 역시 당시 예상대로 NC는 4년 연속 가을야구를 하는 강팀으로 성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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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호준 NC다이노스 선수. / NC다이노스

Q. 2013년 NC 1군 첫해 주장을 맡아서 경험이 부족한 선수단의 중심을 확실히 잡아줬습니다. 자신이 은퇴한 뒤 팀을 이끌 리더가 될 만한 선수가 있습니까?

"저는 선배로서 할 수 있는 기본만 했습니다. 반대로 후배들이 잘 따라주고 진실하게 다가와 줬기 때문에 저에게 공이 매우 많이 돌아왔어요. 덕분에 '호부지'라는 별명도 생겼고, 비아냥이 섞여 있던 '로또준, 인생은 이호준처럼'이라는 별명도 좋은 의미로 바뀌었습니다. 후배들에게 무척 고마워요. 리더 역할을 할 선수들은 많습니다. (손)시헌이와 (이)종욱이도 있고. 특히 박석민, 임창민, 모창민, 김진성, 조평호 등 85년생 동기들이 팀의 중심을 꽉 잡아줄 거라 믿습니다. 이 친구들이 최고선임은 아니지만 팀을 이끌어야 해요. 각자 길을 가버리면 팀은 금방 분해됩니다. 이들이 중심을 잡아주면 NC는 더 무서운 팀, 더 강한 팀이 될 겁니다."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 신의 한 수

Q. 지난달 24일 LG전 대타 역전 끝내기 3점 홈런은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NC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무엇인가요?

"술 한 잔씩 먹으면 사람들한테 자꾸 이야기할 것 같습니다.(웃음) NC 1군 첫승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7연패하고 첫승을 했는데 당시 정말 잠을 못 잤어요. '이러다가 한 번도 못 이기는 거 아니냐, 프로야구 역사상 전패하는 거 아니냐'하는 불안감이 들 정도였습니다. 제가 뭔가 해줘야 하는데 저도 못 치고 있고요. 잠실 LG전(2013년 4월 11일)에서 선수들이 경기에서 이기고 그라운드로 나가는 모습이 잊히지 않습니다. 한국시리즈 우승한 줄 알았어요. 연패 기간 일그러졌던 표정이 웃음으로 바뀌는 표정이 아직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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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올해 초 2가지 목표를 밝힌 바 있습니다. 우타자 최다 홈런(한화 장종훈 340개) 기록과 한국시리즈 우승인데요.

"하나(우타자 최다 홈런)는 틀렸고, 하나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최다 홈런 기록은 정말 개인적인 욕심이었고, 한국시리즈 우승은 전 선수단 바람입니다. 아직 기회가 남아있어요. 꼭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험난한 일정인데)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SK에서도 준플레이오프부터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간 경험이 있습니다. 어디서 시작하든 우승하지 말라는 법은 없어요. 포스트시즌에 가지 못한 팀들도 있는데 우리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포스트시즌에서 엄청난 컨디션으로 활약하는 선수가 나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Q. 프로에 투수로 입단했는데요.

"제 야구 인생에서 '신의 한 수'가 타자로 전향한 겁니다. 만약 투수를 계속했다면 5년 안에 은퇴했을 거예요. 손톱이 약해서 한 경기 던지면 다 깨져서 다음 날 공을 못 던질 정도였습니다. 손도 작고 팔도 짧아요. 단지 키가 크다는 이유로 투수를 해야 한다는 게 싫었습니다. 당시 해태 김응용 감독님과 2군 감독이셨던 김성근 감독님이 타자 전향을 아쉬워하셨지만, 저 스스로는 아니었습니다. 또 나는 장갑 끼고 보호대 착용하는 게 아주 좋았어요. 그런데 투수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웃음)"

Q. 이호준의 야구 인생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행복한 선수. 야구선수로 사는 동안 지도자 운이 매우 좋았습니다. 실력은 뛰어난 데 지도자 성향과 맞지 않아 실패하는 선수들도 많아요. 나성범이 김경문 감독을 안 만났으면 지금의 나성범이 있었을까요? 그런 점에서 저는 지도자를 잘 만났습니다. 후배들도 잘 따라주고 은퇴하는 데도 생각지도 않게 엄청난 대우를 받으면서 마무리하고, 이보다 행복할 수 있을까요."

지도자 연수 통해 제2 야구 인생 꿈꿔

Q. 은퇴 이후에는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까?

"1년은 무조건 지도자 연수를 갈 예정입니다. 99.9% 결정했어요. 구단과 감독님과 상의해서 어디로 갈 것인지 최종적으로 결정할 생각입니다."

Q. 지금까지 내조해준 아내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나요?

"제 착각일지 모르지만 아내는 아직도 저를 많이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웃음) 고맙죠. 특히 지난 5년간 혼자 아이 3명을 키우고 제가 야구에 집중할 수 있게 뒷바라지해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징크스가 많은데도 불평불만 없이 존중해줍니다. 귀찮은 일인데도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잘 챙겨줘서 무척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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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호준 NC다이노스 선수. / NC다이노스

Q. NC 팬과 야구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제가 여기까지 오는 데 있어서 팬들의 당근과 채찍에 많은 힘을 얻었습니다. 잘했을 때 응원해주시고, 잘못했을 때 질책해주셨습니다. 최근에 대타로 경기에 나설 때 팬들의 함성에 깜짝 놀랍니다. 큰 힘이 됐어요. 그 덕분에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팬들이 주는 큰 사랑을 가슴속에 간직해서 제2 야구 인생에서도 팬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이호준이 되고 싶어요."

10월 15일 현재 NC다이노스는 2017 타이어뱅크 KBO 준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롯데자이언츠를 제압하고, 3승 2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NC는 17일부터 두산베어스와 한국시리즈행 티켓을 두고 맞붙는다. 이호준은 앞으로 포스트시즌에서 최소 3경기, 최대 12경기에 나설 수 있다. 그가 NC와 함께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화려하게 은퇴하기를 야구팬들은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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