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가 골목 속, 청년 작가들이 만든 대안공간 '로그캠프'

창원시 의창구 사림로99번길 44-11. 지난 9월 8일 조용한 주택가 한 점포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대부분 20~30대로 보인다. 청년 화가들이 만든 대안공간 '로그캠프'의 개관식 '그림맞이 대잔치'에 모인 사람들이다. 이날은 로그캠프가 개관하는 날이자 이성륙 작가의 '정병산 드루이드展'이 시작하는 날이기도 했다. 로그캠프 벽면은 이성륙 작가의 민화(民畵)로 가득했다.

로그캠프를 만든 20대 청년 셋

7시 10분이 넘어가자 로그캠프 안은 북적이기 시작했다. 로그캠프를 찾은 사람들은 자유롭게 공간과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오랜만에 지인들과 이곳에서 만났는지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고 전시된 그림을 진지하게 바라보기도 한다. 슈퍼마켓이었던 로그캠프 공간은 하얀 네모 박스 같은 전시관과는 다른 느낌이다. 매끈하고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다. 이 공간은 세 명의 청년 작가가 만들었다. 공간을 찾는 것부터 페인트칠, 바닥 작업까지 스스로 했다. 세 사람은 모두 친구다.

박준우(26): 이 친구(장건율)가 많이 돌아다녀서 찾아낸 공간이에요.

방상환(26): 저희가 대학교 1학년 때 여기가 슈퍼마켓이었어요. 그다음에는 어떤 사무실로 쓰다가 내놨는데 마침 친구가 공간을 발견한 거죠. 같이 하지 않겠냐고 해서 시작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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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병산 드루이드, 이사람 그림 전시회 /서정인 기자

 

'로그캠프'라는 이름은 게임에서 얻었다고 했다.

장건율(25): 로그캠프는 '디아블로2'라는 게임에 나오는 마을 이름이에요. 저희 셋 모두 그 게임을 하거든요. 그 게임에서 캐릭터를 만들자마자 생성되는 곳이 로그캠프라는 곳이에요. 로그캠프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우리 사회랑 비슷하게 몬스터 잡고 경험치도 올려야 해요. 로그캠프는 캐릭터가 밖으로 나갈 채비도 하고 마을 사람들 만나서 캐스트 받고 정비를 하는 공간인데 대안공간 로그캠프도 예술가들한테 그런 공간이었으면 해요. 정비를 하고 다른 예술가들, 관객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하는 의미에서 이름 붙였어요.

세 작가 모두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다양하게 벌이는 다른 활동도 예술을 교집합으로 한다. 박준우 작가는 대학원을 다니고 있고 장건율, 방상환 작가는 학교를 졸업했다.

장건율 작가는 <경남도민일보> 기사에서 본 적이 있다. 지금을 졸업을 했지만 당시 대학생이면서 다양한 활동을 벌이는 그는 지역에서도 눈에 띄는 작가 중 하나였다. 장건율 작가의 멘트 중 인상 깊은 부분이 있었다. 다양한 삶의 방식을 고민하고 있고, 스스로를 1인 창조기업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가 친구들과 로그캠프를 만든 이유과 연결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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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건율 작가가 사람들에게 로그캠프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서정인 기자

 

장건율: 저희 셋 다 개인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어요. 작가는 작품을 만드는 생산자이기도 하지만 직접 마케팅을 해야 하고 여러 가지 디자인도 해야 해요. 어떻게 보면 예술이나 창작품을 만드는 창조기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작품 활동만 하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일을 해봐야 하지 않나 싶어서 한 말이에요.

로그캠프 전시 일정은 연말까지 다 차 있다.

장건율: 이 공간을 만들면서 생각한 게 저희 그림은 걸지 않고 최소한의 큐레이팅을 하기로 했어요. 매달 셋이 돌아가면서 작가들을 섭외하는데 이번 개관전에는 제가 작가 '이사람'을 섭외해서 전시를 하고 있고 다음 달에는 친구가 준비하고 있어요.

비영리 목적으로 만든 대안공간이기 때문에 입장료나 대관료는 없다. 전시 중인 작품이 판매됐을 때 중간에서 받는 커미션도 받지 않는다. 다만 최소한의 수입 구조를 위해 포스터 판매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창원에서 잘 보지 못하고 논의되지 않는 작업들을 선보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로그캠프 개관식 '그림맞이 대잔치'

인터뷰를 마치고 로그캠프 안으로 들어갔다. 서로가 힘을 주고받는 듯했다. 로그캠프 사람들은 이렇게 많이 모인 사람들이 신기하고 사람들은 로그캠프가 신기한 듯했다.

'그림맞이 대잔치' 오픈 공연을 맡아줄 노순천 작가가 사람들 앞에 섰다. 그 역시 예술가이자 밴드 '엉클밥'의 리더, 그림책 전문 출판사 콩밭출판사의 대표다. 노순천 작가는 다 함께 잠시 명상을 하는 것으로 공연을 시작했다. 사람들은 소리에 맞춰 눈을 감았다. 몇십초의 고요한 시간은 공연을 즐기기에 앞서 마음을 정갈하게 하는 듯했다. 장건율 작가는 사람들을 모두 편하게 자리에 앉게 했다.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했다. 기타를 치고 하모니카를 불며, 노순천 작가는 '거짓말 안 했으면 좋겠어'를 부르기 시작한다. 사람들 집중도가 대단했다. 이어 휘파람을 더해 부르는 '거름'이라는 노래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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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준우(왼쪽), 방상환(오른쪽) 작가.

 

"다음 노래는 예전에 장건율 대표(웃음)가 만든 <월간>이라는 잡지가 있었는데 그 잡지 창간호 주제가 '인간'이어서 인간에 대해서 잡지에 글을 썼다가 그걸 노래로 만든 곡입니다. 오늘 왠지 젊으신 분들이 많이 올 것 같아서, 저도 젊지만(다 같이 웃음) 아이템을 써야겠다 싶어서 가져왔어요. 매뉴얼을 보면 3세 이상… 하하"

노순천 작가는 장난감 총소리에 맞춰 세 번째 곡을 마쳤고 앙코르 요청에 노순천 작가가 다시 기타를 잡는다. '아이와 군인'이라는 곡이다.

손가락으로 개미를 눌러 죽이며 방긋 웃던 아이의 마음은 깨끗할까. 깨끗할까.

전쟁터에서 칼로 사람을 죽이며 엉엉 울던 군인의 마음은 더러울까. 더러울까.

죄 없는 사람들의 삶을 무참히 탕탕 내려치는 판사의 망치는 옳은 걸까. 옳은 걸까.

굶주린 아이를 위해 쌀을 훔치며 몰래 숨기는 엄마의 손은 틀린 걸까. 틀린 걸까.

로그캠프에 만난 젊고 편안한 민화

장건율: 그림맞이 대잔치는 여기까지고. 준비된 음식 다 같이 먹고 얘기하고 즐기시면 됩니다.

정병산 드루이드 전에 걸린 이성륙 작가의 그림은 전래동화 속, 혹은 꿈속 풍경 같다. 다양한 종이 위에 수묵담채화로 표현한 그의 그림은 한국적이면서도, 다양하고 선명한 색감이 이국적인 느낌이 든다. 호랑이, 소나무, 새, 산 같은 소재가 그의 그림에는 자주 등장한다. 이번 전시에서 관객들을 만나는 그림은 따뜻하고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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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객들 앞에서 공연하고 있는 노순천 작가.

 

"대학 입학 전에도 입시미술 학원을 다녔고, 전공은 서양화였거든요. 대학교 4학년 때부터 제 마음으로 끌리는 건 민화나, 민속 미술 같은 거였어요. 그때부터 조금씩 그려오던 게 지금까지 계속된 것 같아요."

정병산 드루이드는 로그캠프의 의미와 이어진다.

"로그캠프의 뜻이 게임 디아블로2에서 캐릭터가 제일 처음 시작하는 곳이잖아요. 그 게임에서 드루이드라는 직업이 있어요. 원래는 드루이드가 신의 의사를 전하는 사제라는 의미인데 게임에서는 드루이드가 동물로 변신도 하고 자연을 이용해서 악마랑 싸우고 하거든요. 그게 정병산 호랑이 설화랑 연결이 되더라고요."

옛날 창원 땅 자여마을에 젊은이 구 씨가 살았다. 효자로 소문이 자자한 그에게는 노모가 갈수록 쇠약해지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었다. 아내와 함께 고민을 해보아도 별다른 수가 없었다. 청년은 정병산 바위굴에서 매일 어머니를 건강하게 해 달라고 빌었다. 기도에 응답한 산신령이 그에게 책을 한 권 건넸다. 목욕재계 후에 책을 보며 주문을 외우면 호랑이로 변하는데 호랑이가 되어 고라니 열 마리를 잡아 어머니께 고아드리라 했다. 다시 책을 보며 주문을 외우면 사람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하지만 남편이 호랑이로 변하는 걸 본 아내는 남편이 포수에게 잡힐 것이 겁이 나 책을 불살라 버리고 만다. 구 씨는 사람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정병산 호랑이 바위로 남았다.

"호랑이로 변하는 점도 그렇고 드루이드와 연관이 되고 하니까 전시 이름을 그렇게 하면 재밌을 것 같았어요. 또 실제 드루이드들이 종교적으로 탄압을 받아서 학살당하고… 구전으로만 이어지다 보니 정확한 자료가 안 남아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부분도 제가 관심 있는 민담이나 마산의 이야기랑 연결되는 것 같아서… 정병산 드루이드라고 정했어요."

예전에 보았던 그림보다 가볍고 따뜻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밀양 송전탑을 주제로 그린 그림이나 2012년에 그린 호랑이, 소나무, 새는 지금에 비해 훨씬 짙고 무거운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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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병산 드루이드展에서 선보인 작품. / 서정인 기자

 

"예전에는 제가 생각하고 전하고 싶은 생각이나 문제, 책에서 읽은 철학 같은 것을 어떻게 하면 그림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생각했거든요. 특히 대학 졸업하고 나서 근래에는 송전탑이나 사회·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했더니 직접적이고 시사적인 내용을 담은 그림이 나오더라고요. 근데 그렇게 해보니까 전달하고 싶었던 게 효율적으로 전달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내용이나 메시지를 주는 것보다는 그림 그 자체로 제가 생각하는 문제를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예전에는 너무 직접적이었기 때문에 무거웠고 지금은 어떻게 그림에 녹여서 소화시켜서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해요. 그래서 좀 다른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그림은 테이프로 붙여져 있다. 일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다양한 종이 위에 그렸다.

"원래는 캔버스에 그렸어요. 근데 캔버스 틀이 나무고 부피가 크다 보니까 공간에 결국 쌓여서 짐이 되더라고요. 넓은 공간을 쓸 수가 없으니까 제일 쉽게, 가까이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변했던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캔버스 옆에 있는 A4용지, 이면지… 또 A4용지는 너무 좁으니까 넓은 종이도 찾게 되고요. 저런 긴 종이는 한국화에서 연습지로 쓰는 가장 저렴한 종이거든요. 자연스럽게 여러 종이를 사용하고 있어요."

이성륙 작가는 오픈 공연을 한 노순천 작가와 그림책 전문 출판사 콩밭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김윤덕 작가의 그림책 <숨은 괴물 찾기>를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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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륙 작가. / 서정인 기자

 

"그림책을 많이 만들려고 해요. 사실 '콩밭'에서 경제적인 이익이 오는 건 아니에요. 좋아서 하는 거죠. 그림책이라는 구조가 전달하는 것과 회화가 전달하는 방법이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저도 그래서 활동할 때 차별을 두고 활동하려고 해요. 그림책을 만들려면 그림뿐 아니라 텍스트와 그림의 조화를 전달하는 거고, 그림은 그림 자체에서 느껴지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활동하려고요."

이성륙 작가는 '이사람'이라는 가명을 쓴다.

"처음에 <별아가씨>라는 그림책을 낼 때 필명을 썼거든요. 본명보다도 '이사람'이라는 평범한, 드러나지 않는 이름이 어울릴 것 같아서요. 불리려고 만든 이름은 아니고 책에 쓰려고 만든 이름이에요. 회화 활동은 제 본명으로 하려고 했는데 그림책을 하다 보니까 기획하거나 찾아주시는 분들이 섞어서 쓰시더라고요.(웃음)"

경남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청년 작가인 그에게도 로그캠프 개관은 의미가 크다,

"이 전시는 개인전이기도 하지만 로그캠프 개관전의 의미가 크거든요. 전시를 재미있게 준비할 수 있었던 건 로그캠프 세 분 덕이었고, 공간이 일반 갤러리와 다르게 사람이 생활하던 공간이다 보니 재미있는 부분이 많아요. 여기서 실험적이고 참신한 전시들을 많이 하게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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