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 5·6호기 주변 주민 불안감 고려
에너지 전환정책 사회적 합의 거쳐야

둥근 뚜껑을 얹은 콘크리트 구조물 한 쌍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6월 19일 영구정지된 핵발전소 고리1호기, 2호기다. 핵발전소가 바라다보이는 바닷가 고깃집 주차장은 빼곡했다. 인근엔 예쁘장한 카라반을 설치한 캠핑장도 있었다.

버스 기사는 "참 신기하지예"라고 했다. 핵발전소가 마주 보이는 곳에 성업하고 있다니. 시한폭탄을 머리에 이고 산다는 위기감은커녕 평온했다. 고장이 나도 공개되지 않았고, 인근 주민들 갑상선암 발병률이 높다는 건 딴 나라 이야기처럼.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과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은 붙어 있다. 해안을 따라 핵발전소가 40년 동안 계속 지어졌다. 고리1호기부터 잠시 공사가 중단된 신고리 6호기까지 10기나 된다. 부산·울산·경남 30㎞ 반경에 380만 명이 사는 세계 최대 원전밀집지역.

'하야하라', '자폭하라', '사수하자'. 기장군에서 울주군으로 들어가면서 본 길거리 현수막 글귀들이다. 탈원전을 선언한 문재인 정부가 핵발전소 신고리 5·6호기 존폐를 결정할 석 달 동안 공론화를 시작했다. 지난 24일 서생면을 찾아가 핵발전소를 계속 지어야 한다는 주민들 이야기를 들었다. 서생면사무소에서 바라본 신고리 5·6호기 공사장 크레인은 멈춰 있었다.

공사중단 반대 범군민대책위원장은 "40년 동안 8기를 안고 살아왔다. 계속 반대했지만 정부가 귀를 열지 않고 국책사업이라고 밀어붙였다. 이럴 바에야 자율유치해서 지역 발전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들은 나중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공사기간 동안 지역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었다. 주민들에게 직접 지원될 1500억 원대 인센티브 사업비에 건 기대가 클 수도 있겠다. 공사장과 바로 붙은 마을 주민들은 3·4호기 때문에 피해를 보고 살았는데 5·6호기가 백지화되면 이주·보상이 삐거덕거리지 않을까 걱정했다.

애초 40년 후 '원전 제로'에서 2079년 탈핵으로 에너지 정책이 후퇴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핵발전소는 사라질 것이다. 핵발전소가 안전하지 않고, 값싸지 않다는 건 이미 확인됐다. 우리나라에 핵발전소 24기가 가동 중이며, 5기가 건설 중이다. 영구정지된 고리 1호기를 포함해 12기는 2029년까지 설계수명이 만료된다.

5·6호기를 계속 지어야 한다는 주민들도 탈원전과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동의한다. 다만, 당장 눈에 보이는 피해에 대한 불안감이 문제다. 울주군 서생면 주민들은 피해자들이다. 이들에 대한 피해대책은 탈원전과 별개로 마련돼야 한다.

표세호.jpg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에서 '나라를 위해 따라야 한다'는 폭압적인 발전소와 송전선로 건설방식에 대한 성찰과 대안도 다뤄져야 한다. 모두에게 필요한 전기지만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다면 '피눈물나게 하는 전기'일 뿐이다.

에너지정책 전환은 사회적 합의과정을 거쳐 이뤄내야 한다. 내가 쓰는 전기와 그에 따른 책임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 그 핵심이 에너지 민주화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