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노루'가 일본 규슈 남부지방으로 지나갔다. 우리나라에 직간접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기사들은 모두 오보가 됐다. 그래도 이런 오보는 차라리 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민주화와 노동자 대투쟁이 전국을 휩쓸던 1987년 7월 15~16일 태풍 '셀마'가 한반도를 내습했다. 태풍 셀마는 중심기압 970헥토파스칼, 최대풍속 초속 40m, 200㎜가 넘는 비를 뿌리며 남부지방을 휩쓸고 지나갔다. 태풍 셀마로 345명이 사망하거나 실종했으며, 이는 역대 태풍 피해 가운데 3위에 해당된다.

하지만 태풍 셀마의 피해는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다. 셀마는 초강력 태풍도 아니었을 뿐더러 전남 고흥반도에 상륙해 남부지방을 관통했다. 그런데 당시 중앙기상대(현 기상청)는 대한해협, 특히 대마도 인근을 지날 것이라고 예보했다. 오보였다. 모든 언론이 오보를 그대로 보도했고 희생자 가운데 절반가량은 오보를 믿고 피신하지 않은 어민들이었다. 반면 일본 기상대와 미 해군 기상대는 셀마가 한반도 남부지방에 상륙할 것이라 예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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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7일 <동아일보>는 일본 기상대 자료를 바탕으로 오보를 지적했지만 기상청은 인정하지 않았다. 되레 '부산 앞바다를 스쳐 대한해협을 지나갔다'며 태풍 진로를 조작해서 발표하기에 이른다. <동아일보>는 끈질기게 이 문제를 추적했고, 다음해 1월 기상청이 오보를 했을 뿐 아니라 태풍 진로를 조작했다는 사실까지 드러나게 된다. 이 일로 기상청 간부 여럿이 쫓겨났다.

진상이 늦게나마 밝혀졌지만 '태풍 셀마 진로조작 사건'은 국가기관이 자신의 무능을 덮기 위해 얼마든지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명백한 사례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를 밝히는 것이 바로 언론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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