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회 경남청소년문학대상]중등부 대상

저는 아토피를 가지고 있습니다. 환경에 조심해야 하는 병이라서 부모님께선 혹시 피부가 더 안 좋아지실까 생각하셨고, 그렇게 하여 부산에 살던 저는 이곳 원동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원동에 살게 된 지 13년, 이곳에 정이 들었습니다. 알지 못했던 할머니, 할아버지 분들께도 인사하는 버릇이 생기고, 이제 와서 돌아보니 마을에 대한 정도 그동안 생긴 것 같습니다. 그 덕분에 눈에 보이는 마을을 담고 싶어 사진 찍는 것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습니다.

요즈음에는 등굣길 가로수에서 사진 찍는 것을 취미로 두고 있습니다. 항상 그 길로 다니면서 계절마다 바뀌는 풍경들을 보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그 풍경들을 바라보는 것이 질리지가 않고 예뻐 보이기에 더욱 즐겁게 찍는 중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계속 같은 풍경만 보면 질릴 거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풍경이 조금씩 바뀌기 때문에 그 바뀜이 마냥 신기하기만 합니다.

제가 보았던 바뀜의 예를 들자면, 작년에만 하여도 드문드문 피어있던 노란 코스모스 같은 '큰 금계국' 꽃들이 지금은 꽃길처럼 모여서 활짝 피어나 있는 모습이랄까요? 그리 많은 시간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그 사이에 저렇게 많은 꽃을 피운 모습을 보니 저도 '큰 금계국'처럼 저렇게 꽃을 활짝 피울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마을의 봄에는 매화와 벚꽃이 차례로 피어나고 지는데 그때마다 이 조용한 마을이 시끌벅적해지고 매화 축제가 시작됩니다. 제가 아는 봄 가로수 풍경 중 가장 예쁜 풍경이 나오는 계절이지만, 아침마다 가로수 옆 차로에 자동차가 많이 다니는 것을 보면 시끄럽기도 하고 풍경과도 잘 어울리지 않아 아쉽습니다.

그래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곳은 밤에 더 빛나기 때문에 아침에는 밤에 보게 될 그 풍경을 볼 생각을 하며 아쉬운 기분을 접어 둡니다. 차로가 있던 곳에 인도를 놓아두어 조금 더 인공적인 가로수가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벚나무가 어우러진 그 모습은 사진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화사한 풍경이라고 봄마다 그렇게 느낍니다.

또 밤에 차로를 둘러싼 벚나무 터널이나 가로등 빛이 반사되어 은은하게 보이는 벚나무는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렇게 글을 적어놓는다면 '제가 봄을 가장 좋아하리라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봄도 좋지만 저는 신선한 가을을 더 좋아합니다. 매년 좋아하는 계절이 바뀌는 변덕스런 마음이지만, 그래도 항상 1등은 '가을'이었습니다. 아마도 이곳에서 보았던 풍경과 인정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가을 풍경 중 가장 좋아하는 풍경은 낙엽이 있는 가로수 거리입니다. 가을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는 거리는 노래를 들으며 걸을 때마다 분위기를 잡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 수도 적고 버스도 잘 다니지 않는 조용한 마을이라서 10분 거리를 걸어서 등교하기 때문에 보는 눈도 없고 머리 식히기에도 좋은 곳입니다. 가끔이지만 어떤 시상이 머릿속에 스치는 일도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즈음에는 시 쓰기에 재미가 들려 노트 한 권을 다 채울 만큼 시를 즐기기도 하였습니다. 지금은 어째선지 시가 잘 써지지 않지만, 그래도 역시 누군가 시상을 얻기 좋은 곳으로 가고 싶다 하신다면 우리 마을을 추천하고 싶어집니다. 분명히 제가 아끼고 좋아했던 그 풍경 속에서 제가 생각하지 못했었던 멋진 시상들을 얻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을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이웃 분들이 주시는 과일 때문입니다. 우리 가족은 이곳에 온 지 13년이란 시간 동안 다른 이웃들을 만나 뵙고 친하게 지낸 만큼 과일을 받곤 했습니다. 가을은 제가 좋아하는 과일들을 많이 받는 계절입니다. 그렇기에 저에겐 봄보다도 상큼한 기간입니다. 이런 과일 선물이 많이 오가는 걸 보며, (물론 아버지께서도 무언가를 이웃 분들께 드리면서 선물이 오가는 것이겠지만) 저는 그것들을 볼 때마다 이웃 분들께서 주시는 그 선물을 꼭 기억하고 '나도 선물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이웃에게 무언가 선물해 주고 싶은 그런 인정이 생겼나 봅니다.

봄꽃이 지고 후덥지근한 여름이 오고 있습니다. 전 항상 이맘때쯤 아토피 가려움에 시달려서 괴로워했습니다. 가려움 때문에 피부를 긁고 상처가 생기고, 피부 때문에 수영도 꺼렸습니다. 저 자신이 보기에도 우툴두툴한 상처가 징그러웠고, 간지러움을 참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여도 참기 어려워 항상 그 상처를 달고 살았습니다. 그때마다 여름 바람이 시원하게 제 곁을 지나가면서 잠시 편안함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상처가 잘 아물지 못해서 어릴 적 잘 입던 원피스나 치마는 이젠 거의 입지 않게 되었습니다. 꽤 맘에 들어 했었던 옷이 작아지고 더는 입지 못하게 되어서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초등학생 때에는 저 자신이 못 입을 것을 알면서도 그 작은 옷을 다른 아이에게 주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나중에 고쳐서 입을 거야!'라고 말하였는데 그렇게 좋아하던 옷들이 지금은 무언가를 만들고 싶을 때 사용하는 자투리 천이 되어버렸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내가 이곳에 오지 않고 도시에 있었더라면?'이란 생각을 말입니다. 지금도 힘든데 그대로 도시에 있었더라면 제 아토피 때문에 부모님도 힘드셨을 것이고, 저도 간지러움에 몸부림을 쳤을 것 같습니다. 아토피가 너무 심해서 옷을 못 입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다시 한 번 이 마을에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아토피가 낫도록 도와주고, 우리 가족이 덜 힘들게 살게 해주어서, 그리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어서 고맙다고, 이 마을에 전해주고 싶습니다.

'나에게 행복하고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어서 고마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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