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경남청소년문학대상]고등부 으뜸

내게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단연 김치볶음밥이라 말한다. 제일 쉽고 간편한 음식, 하지만 내가 만들어 본 적은 한 번도 없는, 항상 누군가에게 대접받아 온 따뜻한 한 그릇. 나는 그 따뜻한 김치볶음밥이 좋았다.

일요일 아침, 조용한 집 안에 자글자글 소리가 들리며 따뜻한 김치볶음밥 냄새가 난다. 포근한 이불 속에서 눈을 뜨지도 못한 채 이불의 따뜻함을 느끼고 있으면 밥 먹으란 소리가 들려온다. 가만히 아무 대꾸를 하지 않는다. 조금 뒤에 아빠가 이불 밖으로 삐죽 나온 내 다리를 찰싹하고 때린다. 살짝 피하면 방심한 등짝이 화를 입는다. 미적거리다 한 소리를 더 듣고 나서야 어기적거리며 나와 식탁에 앉는다. 앞에는 까치집 하나 거하게 지은 동생이 더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서로 못생겼네 너보단 내가 낫네 하며 아침인사를 주고받다 옆에 앉은 엄마의 표정이 좋지 않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숟가락을 하나 집어든다.

일요일 늦은 아침은 김치볶음밥이다. 우리는 한 프라이팬에 담긴 김치볶음밥을 넷이서 먹기 시작한다.

일반계 고등학교에 다닐 때의 일이다. 여름이 다 되어 갈 즘에 한 친구와 나 둘이서 대안고등학교에 전입원서를 넣은 적이 있었다. 야속하게도 둘 중 하나만 붙게 되었고 남은 내게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반계에 계속 다녀야 한다는 절망, 함께 버틸 친구 없이 이제부터는 홀로 견뎌내야 한다는 막연함이 있었다.

그때 내게 내려진 소중한 선물 같은 존재가 있었다.

처음엔 그저 반 친구 정도였다. 그때의 나는 의자에 앉아 온종일 공부만 하는 분위기에 질려서 공부를 포기한 상태였기에 도무지 수업시간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키 높이 책상에서 가만히 수업을 구경하는 것이나 맨 뒷자리에서 조용히 잠이나 자는 것뿐이었다.

그날도 잠을 자려고 맨 뒷자리 친구와 자리를 바꿨는데 우연히도 옆자리엔 그 친구가 있었다. 그날 나는 잠자려던 것도 다 잊고서 무슨 얘기였는지 굉장히 신나게 하게 되었다.(아무래도 그 당시 서로 힘들었던 부분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 같다. 나는 학교의 융통성 없는 부분에 진저리났었고 친구는 별 소문 때문에 안 좋은 이미지를 얻어 힘들었던 일이 있었다. 사실은 굉장히 좋은 사람인데)

그날 이후로 우리는 수업시간엔 자고, 쉬는 시간엔 서로 찾아 자판지로 가거나 밖에 나와 떠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힘들었던 그 일들 덕에 서로에게 훅 가까워졌던 것 같다.

하루는 둘 다 지각을 겨우 면하곤 아침을 못 먹고 오게 되었는데 그 친구가 그럼 자신이 아침을 만들어 오겠다며 내일부터 같이 먹자고 했다.

그렇게 다음날 만들어 온 도시락엔 따끈따끈한 김치볶음밥이 있었다. 그날 먹은 김치볶음밥은 내가 먹어 봤던 김치볶음밥 중에 제일 맛있었다. 아마 세상 누구라도 그 맛을 안다면 나와 똑같이 말할 것이다.

사실 나는 그 친구가 특히 아침잠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새벽 일찍 일어나 김치볶음밥을 해 오는 날이면 그 아이가 수업시간에 더욱 깊은 잠에 빠지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럼에도 아침에 눈을 비비며 오는 나를 보곤 웃으며 밥 먹자며, 김치볶음밥을 입에 넣어주던 그 친구의 모습은 평생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단란했던 우리 가족의 모습이 기억나는 김치볶음밥. 암울했던 시기에 만난, 소중한 인연을 떠올리게 해 주는 김치볶음밥.

지쳐 주저앉아 있는 나를 항상 일으켜 세워 주던 것은 따뜻했던 기억이 스며든 따뜻한 밥 한 그릇이었다. 나에게 김치볶음밥이란 희망이자 따뜻한 위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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