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조의 '개여울'  

최근 전성기를 뒤로한 채 한동안 두문불출하던 가요계의 여러 유명스타들이 복귀하며, 활동을 재기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방송이나 매체를 통해 가끔씩 전해지고 있다. 이에 왕년의 팬들은 기억 속 저편에 간직해 두었던 아련한 추억을 되새기며 옛 가수를 기꺼이 맞이해 준다. 그중 아주 짧은 기간 동안 불꽃처럼 노래하며 최고의 인기를 누릴 때 홀연히 떠났다가 37년 만에 새 앨범을 발표하며 돌아온 가수가 있다. 가수 정미조다.

1949년 5월 2일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난 정미조는 어릴 때부터 무용, 그림, 노래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초등학교 시절엔 춤을 잘 추어 어른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였다. 그림에도 소질이 많았던 그녀는 미술대회에서 입상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잘 그렸는데, 화가였던 외삼촌의 영향을 받아 중학교 시절부터 화가의 꿈을 키워 나갔다. 또한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던 정미조는 배화여고 시절엔 교내 음악콩쿠르에서 입상하며 막연하게 가수로의 꿈도 품었다. 1968년 이화여대 서양화과에 입학한 그녀는 신입생 장기자랑 무대에서 시원한 창법으로 팝송을 불러 교내에서 노래를 잘하는 실력자로 소문이 났다. 덕분에 20명으로 조직된 파월장병 위문공연단에 선발되어 베트남에서 공연했다.

학교 대학 축제에 공연하러 왔던 패티김이 그녀를 불러 칭찬하면서, 자신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에 나와 노래를 해주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이화여대의 규정 때문에 출연은 무산됐다. 그러나 입소문은 계속 퍼져 졸업 전부터 이미 음반사와 방송사로부터 음반제작과 방송 출연 제의가 쇄도했다. 이를 계기로 정미조는 정식 가수로 데뷔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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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미조 데뷔 앨범.

정미조는 소월의 시로 만든 '개여울'을 데뷔곡으로 데뷔했다. '개여울'은 신인 정미조를 단박에 인기 절정의 최고 스타로 만들어 주었다.

방송 활동과 동시에 데뷔앨범 녹음도 병행하면서, 그해 7월 아세아레코드에서 전속기념으로 정미조의 데뷔음반을 발매했다. 음반 앞면에는 타이틀곡인 '그리운 생각' 등의 5곡을, 뒷면에는 평소 즐겨 부르던 팝송 번안곡 5곡을, 총 10곡을 수록했다. 이때 그 앨범에서 '개여울'과 '그리운 생각'이 큰 인기를 누렸다.

데뷔 첫해인 1972년 '개여울'과 '그리운 생각'이 동시에 히트하면서, 순식간에 스타덤에 오른 그녀는 KBS TV 신인 무대에서 8주간 연속우승을 하고 MBC, TBC 신인 가수상을 휩쓸며 3대 방송을 모두 석권했다. 그렇게 대중의 집중적인 이목을 끌게 되면서, 그녀의 행보는 더욱더 바빠졌다. 한 달에 28회의 기록적인 TV 출연을 하였으며, 이장희가 작곡한 '휘파람을 부세요'와 송창식의 자작곡 '불꽃'이 후속곡으로 연달아 히트하면서, 1976년 처음으로 MBC 10대 가수에 선정되며 최정상 가수가 됐다.

하지만 정미조가 활동하던 시기는 대중문화인들에게 호락호락한 시절이 아니었다. 1975년에 불어 닥친 가요정화운동으로 당국의 심기를 거슬리거나, 티끌이 될 수 있는 조건이면 방송금지처분을 강행했다. 정미조 또한 피해 갈 수 없었다. MBC TV '금주의 인기가요'에서 차트 정상을 차지했던 '휘파람을 부세요'와 젊은 층의 인기를 얻기 시작한 '불꽃'까지 방송 금지를 당했다. 노래의 마지막 소절 '나는 타오르는 불꽃 한 송이' 부분이 당국의 잣대로 재면 사상적으로 위험수위를 넘어 매우 불온하게 보였으며, 정염에 불타는 여인을 연상케 하는 소위 풍기문란에 저촉되므로 방송금지처분을 내렸다는 거다.

1972년 데뷔 첫해부터 7년 동안 성공적인 길을 걸어오던 정미조는 1979년 10월 29살의 나이에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그녀는 언론인터뷰에서 "처음엔 제대로 된 무대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실컷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이 그냥 좋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붓을 쥐고 있어야 할 손에 마이크가 잡혀있는 게 낯설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오래 다른 길을 가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미련 없이 은퇴를 결심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길로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난 정미조는 1983년 프랑스 국립장식미술학교에서 석사학위를, 1992년 파리7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1993년부터 2015년까지 수원대 조형학부 서양화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오직 미술 활동에만 전념하였다.

정년퇴임한 정미조는 은퇴에서 복귀까지의 기간을 제목으로 한 앨범 '37년'을 2016년에 발표하며 대중 앞에 다시 섰다. 이 앨범에는 '귀로'와 '개여울' 등 히트곡을 함께 담았다. 노래에 대한 그리움이 커 팬들 앞에 나설 수 있었다는 그녀의 간절한 소망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 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나오고

잔물이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가도 아주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런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런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 소월 작시·이희목 작곡 '개여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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