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재 감독 다큐멘터리
단호한 정치인 면모 더불어
일상 속 친밀한 모습 담아
쓸쓸한 마지막 장면 여운

노무현. 그 이름만으로도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지난겨울 비정상이 돼버린 현실에 분노하며 그를 떠올렸고, 9년 만의 정권교체를 지켜보며 다시 그를 떠올렸다.

몇 년 사이 고 노무현 대통령을 소재로 한 영화가 몇 편 있었다.

부림사건 변호를 맡으면서 부조리한 세상에 눈뜨게 된 변호사 노무현을 그린 <변호인>(2013), 2000년 총선에서 '바보 노무현'이라 불리면서도 끝내 부산 출마를 고집했던 16대 국회의원 선거운동 당시의 영상과 힘있는 연설이 담긴 <무현, 두 도시 이야기>(2016)가 그것이다.

지난달 25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노무현입니다>(감독 이창재)는 109분 러닝타임 동안 16대 대선을 앞두고 치러진 경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거둔 역전의 드라마를 따라간다.

다큐멘터리 <노무현입니다> 스틸컷.

"제게 맡겨주십시오. 전국을 설득해 내겠습니다. 영남을 설득해 내겠습니다."

2002년, 지지율 2% 꼴찌 후보였던 노무현이 대선 후보 1위 '국민 대통령'이 됐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고, 예상할 수 없었던 그 시절의 드라마 속에 '대통령 노무현'이 아닌 '인간 노무현'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긴다.

그 여정에 변호사 노무현을 정찰했던 국가안전기획부 요원 이화춘 씨, 변호사 시절부터 운전을 맡았던 노수현 씨, 배우 명계남·문성근을 포함한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 안희정 충남지사, 유시민 작가, 조기숙 전 참여정부 홍보수석비서관, 김수경 작가, 부림사건 피해자 고호석 씨, 참여정부 참모 등이 인터뷰이로 출연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노무현과의 일화를 소개하고 그를 회상한다.

다큐멘터리 <노무현입니다> 스틸컷.

단호하고 분명한 목소리로 사람들을 설득해가는 정치인 노무현과 그를 추억하는 사람들의 일상에 함께했던 인간 노무현이 속도감 있는 편집과 관객과 마주한 듯 털어놓는 인터뷰이의 모습 속에 지루할 틈 없이 진행된다.

유시민 작가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노무현의 시대가 올까요?' 저한테 물어보셨다. 그래서 제가 '오죠. 안 올 수 없죠. 반드시 옵니다' 그랬더니 '근데 노무현의 시대가 오면 나는 거기에 없을 거 같아요' 그러시더라. '후보님은 지금 새로운 변화의 첫 파도를 올라타고 계신 거다. 그런데 첫 파도를 타고 계시기 때문에 거기까지 못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오긴 온다. 저는 그렇게 믿는다'고 말했더니 '그렇죠. 그런 세상이 오기만 하면야'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추모의 시간을 넘어 새 시대의 희망으로 이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다시 슬픔이다.

다큐멘터리 <노무현입니다> 포스터.

러닝타임이 끝날 무렵 문재인 대통령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유서를 찬찬히 읽으며 목이 멘다.

"제가 이분의 글 쓰는 스타일을 안다. 처음에는 많은 생각을 담았다가 차츰 간략하게 다듬으시는 편이다. 머릿속에 늘 유서를 생각하고 계시는데 우리는 그를 외롭게 두었다. 이게 유서를 볼 때마다 느끼는 아픔이다."

마지막 장면이 자꾸 눈에 밟힌다. 지하철 공사가 한창인 어느 겨울의 도심 거리에서 노무현은 잿빛 외투를 입고 들릴 듯 말듯 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다가 시민들을 만나면 고개 숙여 인사를 하기도 하고 악수를 청한다.

"안녕하세요. 제가 노무현입니다."

마주친 시민들은 악수에 응하기도 하고 피하기도 한다.

뚜벅뚜벅 걸음을 내딛는 그의 뒷모습이 무척 쓸쓸하다.

불의에 맞섰고, 정의를 외치고 실천했던 그의 모습이 그립다가도 울컥 슬픔이 차오른다.

다큐멘터리 <노무현입니다>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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