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산] (11) 산청…모산재와 황매산, 웅장한 바윗덩어리 모산재

'경남의 산' 취재는 산행과 촬영, 이후 기사 작성 등 쉽지 않은 작업의 연속이다. 하나 황매산(黃梅山·1108m)은 달랐다. 언제 가도 좋은 산, 언제라도 다시 가보고 싶은 산이라 가슴이 설렜다. 그러나 이전과는 다른 고민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산은 대체로 지역을 나누는 경계선 역할을 한다. 이런 까닭에 '이 산을 어느 지역에 포함해야 하는가'라는 고민이 항상 뒤따른다. 황매산은 더 그랬다. 황매산은 산청군 차황면과 합천군 대병면, 가회면의 경계에 있다. 더욱이 황매산은 주요 등산로가 합천군에 있어 합천의 산으로 더 알려졌기 때문이다.

산청, 함양, 하동을 아우르는 지리산은 첫 회에서 따로 떼어 소개를 했고 앞으로 합천편에서는 가야산과 매화산 등을 소개할 계획이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300개 명산 중에 가보고 싶은 산 11위 황매산을 뺄 수도 없다. 부득이 산청편에서 싣게 됨을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길 당부드린다.

◇영남의 금강산

모산재(767m)는 황매산 정상에서 동남쪽으로 흘러내린 줄기 끝에 형성된 산이다. 따로 떼어 산이나 봉으로 봐도 무방할 만큼 산 전체가 웅장한 바윗덩어리로 형성돼 있지만 특이하게 '높은 산의 고개'라는 뜻의 '재'로 불리고 있다. 산아래 사람들은 잣골듬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신성스런 바위산'이란 뜻의 영암산으로 부르기도 한다.

모산재 정상에서 본 돛대바위 쪽 풍경.

대부분 산객은 모산재 아래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입구 울타리에는 수천 개 산행 리본이 매여 있어 얼마나 사랑을 받는 곳인지 깨닫게 된다.

소나무 숲길을 잠시 오르다 보면 곧장 화강암 바위들과 마주하게 된다. 이후 로프구간이 이어지고 다시 직각에 가까운 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아직 예열이 덜된 몸이 부담을 느끼며 거친 숨과 굵은 땀방울을 쏟아낸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힘겨움은 스릴로 변해 산행의 묘미를 전한다.

고단함은 잠시, 몸이 했던 고생은 이제 눈이 보상받게 된다. 계단 끝 돛대바위에서 마주하는 탁 트인 전망은 가슴 깊이 시원한 바람을 불어 넣는다. 수직으로 쭉쭉 뻗은 기암괴석은 수석 전시장을 방불케 하고 푸른 소나무까지 어우러지면 한 폭의 한국화가 따로 없다. 이에 모산재는 설악산이나 금강산의 기암괴석을 옮겨놓은 듯 험준하고 장쾌해 '영남의 금강산' 또는 '소금강'으로도 불린다.

모산재 정상부에 조금 못 미친 곳에는 우리나라 제일 명당으로 알려진 무지개 터가 있다. 안내판은 풍수지리상 용이 승천하는 지세로 묘를 쓰면 자손대대 부귀영화를 누리는 반면 온 나라가 가뭄으로 흉작이 든다 해 아무도 묘를 쓰지 못한다고 전한다.

모산재 입구 울타리에 걸린 산행리본.

◇모자람 없는 산

황매산은 정상에 올라서면 발아래 펼쳐진 평원과 산자락이 활짝 핀 매화꽃 잎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산 아래쪽 모산재는 암석지형이지만 700∼900m 지대에는 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다. 정상인 황매봉은 다시 그 위에 300m가량의 뭉툭한 산을 얹어 놓은 모습을 하고 있다.

황매산은 기대하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으며 무엇 하나 버릴 것이 없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특이한 지형 덕에 장쾌한 기암괴석과 바위산을 오르는 짜릿한 재미, 시원한 초원의 풍경을 한꺼번에 만끽할 수 있다. 당연히 조망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정상에 서면 멀리 지리산과 웅석봉, 왕산, 필봉이 손에 잡힐 듯 펼쳐진다. 정상 북동쪽으로 연결된 삼봉이나 중봉 쪽에서는 합천호의 풍광도 감상할 수 있다.

황매산은 또 계절에 따라 다양한 메뉴를 내놓는다.

봄 산은 아무래도 꽃이다. 특히 황매산은 철쭉으로 유명하다. 5월 초에는 합천 쪽 아래 능선이 붉게 물들고 일주일쯤 뒤에는 그 위에 자리 잡은 산청 쪽 능선으로 불길은 옮겨간다. 그 면적이 만만찮을 뿐 아니라 황매산 능선의 아름다운 곡선미 덕에 더 장관이다.

인파를 피해 평일을 골라 올랐지만 헛수고였다. 붉은 철쭉이 반사된 때문인지 경치에 감탄해 흥분을 감추지 못한 때문인지 산객들 얼굴 대부분은 홍조를 띠었다. 탄성 또한 여기저기서 이어졌다. 철쭉제는 오는 14일까지 열린다.

철쭉 덕에 황매산은 봄이 더 유명하지만 사실 사계절 언제라도 좋다.

여름이면 푸른 숲과 녹색 융단을 깐 평원에 서면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가을이면 이곳은 억새 명소로 탈바꿈하고 겨울이면 흰 눈이 수북한 겨울 왕국으로 변한다. 누군가 황매산 설경을 하얀 드레스에 면사포를 쓴 청순한 신부 모습이라 표현했다.

황매산은 접근성 또한 뛰어나 자동차로도 750m 고지까지 쉽게 오를 수 있다. 평원은 예전에는 목장으로 사용됐지만 주차장으로 바뀌면서 길은 더 좋아졌다. 등산이 아니어도 또는 특별한 계획 없이 들러도 무방하다. 아니 그냥 기대 없이 찾았다면 더 큰 횡재를 하는 셈이다.

뛰어난 경치와 접근성 덕에 산은 오래전부터 영화·드라마 촬영지로도 각광받았으며 최근에는 캠핑족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곰을 닮은 산? 곰이 죽은 산?

웅석봉(熊石峰·1099m)은 산청군 단성면 청계리와 산청읍 내리, 삼장면 홍계리에 걸쳐 있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흘러내린 줄기가 중봉∼하봉∼새재∼깃대봉∼밤머리재를 지나 다시 우뚝 솟아 형성된 산이다. 지리산 줄기이면서도 지리산을 잘 조망할 수 있는 산으로 알려졌다. 산세와 조망이 뛰어나 등산객 발길이 이어지면서 1983년 산청군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듬직하게 솟은 웅석봉이 유유히 흐르는 경호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웅석봉은 산꼭대기가 곰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산청읍 쪽에서 보면 서쪽에 병풍처럼 웅장한 산세가 펼쳐져 있다. 반대로 산 정상에서 북쪽은 깎아지른 낭떠러지로 돼 있다. 산세가 험해 곰이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계곡 또한 깊어 가뭄이 든 해에는 이 산에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옛 이름은 유산(楡山)으로 <조선지도>, <1872년 지방지도>, <광여도> 등에 표기돼 있다. <조선지지자료>에는 우리말로 곰석산으로 표기돼 있으며 주민도 곰석산, 곰바위산으로 불렀다.

산 정상에서는 천왕봉은 물론 왕산, 황매산, 가야산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발아래로는 산청읍 시가지가 펼쳐지고 경호강이 유유히 휘돌아 흐르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특히 가을이면 빨간 단풍이 온산을 물들이면서 사람을 불러 모은다.

북사면 지곡 아래에는 통일신라시대 응진이 창건한 지곡사가 있다. 선종 5대 산문 중 하나였으며 산청 대표 사찰로 <신동국여지승람>에 기록돼 있다. 등산로는 지곡사에서 오르는 것과 밤머리재에서 오르는 코스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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