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의자 만드는 게 영원한 숙제이자 목표"

우리나라 노동시간은 OECD 국가 가운데 두 번째로 높다고 한다. 이처럼 현대인들은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을 의자와 함께 보낸다. 수업, 사무, 게임, 식사 등 대부분의 행위가 의자와 함께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의자업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딱딱하고 불편했던 의자에서 편안하고 개인을 위한 맞춤형 의자까지 나오고 있다. 경남에도 30년간 의자를 제작해 온 '디자인오또'란 업체가 있다. '좋은 의자'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한다는 이상민(50) 디자인오또 대표를 만나봤다.

만들기를 좋아했던 아이

마산 창동에 있는 디자인오또 전시장에서 이상민 대표를 만났다. 다양한 종류의 의자들이 나열돼 있었다. 디자인도 독특했다. 폐타이어를 활용해 만든 의자, 머리 전체를 감싸는 의자, 아동용 의자까지. 모두 이 대표의 작품이다. 당연히 공학을 전공했을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1966년생입니다. 고향은 마산이고요. 어렸을 때부터 만들기를 좋아했습니다. 탱크나 자그마한 배를 자주 만들었죠. 대학에선 경제학을 전공했습니다. 졸업 후 직장생활을 위해 서울로 갔죠. 봉제인형을 만들던 회사에 취직했어요. 6개월 정도 근무하다가 그만뒀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창업을 하고 싶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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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민 디자인오또(DesignOTTO) 대표. / 박성훈 기자

경제학과 봉제인형. 지금 모습과는 선뜻 연결되지 않았다. 이 대표는 어떤 계기로 의자업계에 뛰어들었을까?

"회사를 그만두고 '어떤 사업을 해야 할 것인가'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다 '사람이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이상 의자는 필요하다. 내가 직접 좋은 의자를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사실 아버지께서 '의자 유통'에 관련된 일을 먼저 하셨습니다. '아버지 사업을 이어받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건 절대 아닙니다. 계속해서 의자를 접하고 만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고 고민 끝에 스스로 내린 결정이죠."

호기롭게 뛰어들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시장조사를 해보니 지역에서는 부속품 한 개 구하기도 어려웠습니다. 당시 한 지인에게 인천이 인프라가 잘 돼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됐습니다. 주저 없이 인천행을 계획했죠. 하지만 아버지가 지역에서 닦아놓은 기반을 외면할 순 없었어요. 고민을 거듭하다가 마산에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이 대표는 곧바로 '기술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의자를 많이 본 것과 만들어 본 것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더군다나 공학이 아닌 경제학과를 전공했기에 쇠 한 번 구부려 본 적이 없었다.

"기술적인 면에서 상당히 힘들었어요. 자그마한 모형을 만드는 것과 상품을 만드는 것은 차원이 달랐죠. 의자는 나무, 쇠, 플라스틱 등을 이용해 기초를 잡아야 합니다. 즉 목수, 용접, 플라스틱 사출 등 다양한 기술을 배워야 하죠.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어요. '좋은 의자'를 만들겠다는 신념 하나로 독학을 했습니다. 당시 한 외국 기업의 홈페이지에 의자 제작 기술이 들어있는 원서가 있었습니다. 그 원서를 구매해서 의자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 기술, 디자인까지 모든 것을 습득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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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민 대표가 제작한 의자. / 박성훈 기자

100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의자

이 대표가 운영하는 회사는 '디자인오또(DesignOTTO)'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뜻이 쉽게 유추되지 않았다.

"'오또(OTTO)'는 이태리어로 숫자 '8'을 의미합니다. 즉 동그라미 두 개가 합쳐진 모습으로 '원에서 시작해서 원으로 끝난다'는 의미를 담았죠. 또 '동양적인 것과 서양적인 디자인을 섞어서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시킨다'는 뜻도 있습니다."

이어 디자인오또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Timeless'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이란 뜻인데요. 이 단어야말로 저희가 추구하는 정체성이죠. 예를 들어 영국 신사들이 입는 명품 정장은 시대가 변해도 그 품격이 그대로 유지되죠. 디자인오또 의자도 100년이 지나도 변치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제작에 임하고 있습니다."

현재 디자인오또는 다양한 종류의 의자를 제작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게임용 의자'가 가장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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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민 대표가 제작한 의자. / 박성훈 기자

"처음으로 제작한 의자는 '캐릭터 의자'입니다. 한 마디로 아동용 의자죠. 단순히 캐릭터가 프린트 된 의자를 만지는 게 아닙니다. 동물의 입과 눈을 돌출되게 만들었어요. 이런 촉각적 경험은 아이들의 발달에도 큰 도움을 주죠. 그리고 제일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 건 '게임용 의자'입니다. 비행기 전투, 자동차, 격투기 등 다양한 게임이 있잖아요. 게임에서 나오는 신호나 진동이 의자 전체로 흐르게 제작했습니다. 즉 손이 아닌 몸 전체가 진동을 느낄 수 있죠. 이뿐만 아닙니다. 게임 소리도 바로 귀 옆에서 들을 수 있게 설계했어요. 이렇게 되면 몰입도를 극한까지 높일 수 있죠. 의자는 완성했는데 단가 때문에 생산을 못 하고 있습니다. 고도의 기술력이 집약돼 있기 때문에 생산단가를 낮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상용화시키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조만간 전 세계에 선보이는 날이 오겠죠?"

대기업과 협업을 통해 '새로운 프로젝트'도 준비하고 있다.

"모 대기업과 함께 제작 중인 의자가 있습니다. 큰 프로젝트라 보안 문제로 자세히 말씀드리기는 곤란한데요(웃음). 분명 재미있는 의자가 탄생할 거라 자신합니다. 기대해주세요."

최근 다양한 분야에서 '1인 가구'에 초점을 맞추고 관련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디자인오또도 여기에 발맞춰 생산 중인 제품이 있는지 물었다. 이 대표는 4가지 역할을 할 수 있는 의자를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1인 가구를 겨냥한 의자는 진작부터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혼자서 살기 때문에 공간이 협소할 것입니다. 사람 욕심이란 게 집이 아무리 좁아도 소파, 안마기, 침대 등 다양한 가구를 넣고 싶잖아요. 거기서 착안했죠. 의자지만 TV를 볼 때는 소파로, 몸이 아플 때는 안마기로, 잘 때는 침대로 변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가격도 합리적으로 책정했죠. 올 6월이면 시장에 선보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17년 가장 기대되는 의자입니다."

용도에 맞는 의자

현재 많은 의자업계가 각각의 용도에 맞는 의자를 꾸준히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의자 용도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이 대표는 '의자만큼은 꼭 용도에 맞는 제품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업무용 의자를 만들 때 '업무 중 몇 번 정도 팔걸이에 팔을 걸칠까', '목은 얼마나 뒤로 젖힐까' 등 다양한 경우의 수를 계산하죠. 앞서 말한 게임용 의자도 게임에만 집중할 수 있게 설계하고요. 때문에 소비자도 '내가 어느 용도로 의자를 사용할 것인가'를 가장 최우선으로 두고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30년이 넘는 시간을 의자와 함께했다. 그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기쁨과 슬픔이 있었을까? 가장 힘들었던 순간과 행복했던 순간을 물어봤다. 이 대표는 긴 생각 끝에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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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민 디자인오또(DesignOTTO) 대표. / 박성훈 기자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앞서도 말했지만 기술적인 문제였죠. 독학으로 밑바닥부터 배웠으니까요. 처음에는 어떤 책으로 공부해야 하는지도 몰랐어요. 그래도 '젊음' 하나로 부딪혔습니다. 행복했던 순간이자 벅찼던 순간도 있었죠. 한 여성이 어렸을 때 제가 처음으로 제작한 '캐릭터 의자'를 사용했었다고 해요. 시간이 흘러 본인 자식에게도 똑같은 의자를 선물하고 싶었는데 판매가 중단된 의자였죠. 수소문 끝에 제 번호를 알아내서 '당시 사용했던 의자를 다시 구매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때의 감동은 말로 설명이 안 되죠. 죽을 때까지 못 잊을 것 같아요."

국내만 해도 수많은 업체들이 의자 제작을 하고 있다. 다른 업체와 비교했을 때 디자인오또 만의 차별성이 있는지 궁금했다.

"대량 생산을 하는 업체가 아닙니다. 모든 제품이 핸드메이드죠. 기계가 찍어내면 몇 초에 한 개씩 의자를 만들 수 있지만 저희는 아무리 짧게 잡아도 4일 정도가 소요됩니다. 개념 자체가 틀리죠. 즉 많이 만들지는 못하지만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는 의자, 시간이 흘러도 촌스럽지 않은 디자인이 대량 생산업체와 차별화되는 점이죠."

제대로 된 의자·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회사

국내 의자업계 기술력은 세계와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 수준일까? 질문에 이 대표는 한숨을 쉬고 이내 답변을 이어갔다. 안타까움이 곳곳에서 묻어났다.

"예를 들어 사무용 의자에도 고급, 중급, 하급시장이 나뉩니다. 대한민국은 중급과 하급 사이에 있다고 볼 수 있죠. 사실 중급 시장으로만 가도 경쟁력이 떨어집니다. 국내 많은 회사들이 기존의 디자인을 변형해 사용하려고만 하죠. 전 세계적으로 사무용 의자 시장은 '11조 달러'입니다. 어마어마한 돈이죠. 근데 우리나라는 '100억 달러'에도 손을 못 대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춤하고 있을 때 중국 의자업계는 지금도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점점 국내 의자가 설 자리를 잃게 되죠. 젊은 디자이너들이 발 벗고 나서 줘야 하는데 국내 여건상 쉽지가 않아요. 정말 안타깝습니다."

이 대표의 최종 목표가 궁금했다. 질문을 준비하면서도 당연히 '회사의 대규모 확장'이나 '매출 증대'를 꿈꾸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두 가지 목표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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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민 대표가 제작한 의자. / 박성훈 기자

"물론 회사가 커지고 매출이 올라간다면 좋겠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제대로 된 의자를 만들자'입니다. 대량 생산을 하면 규모나 매출은 분명히 올라가겠죠. 하지만 한 개를 만들더라도 고객이 만족할 수 있는 의자를 만들어야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회사'입니다. 규모는 중요하지 않아요. 직원 스스로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어요."

인터뷰는 끝이 났다. 이 대표는 거래처 미팅을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없는지 물었다. 자리를 뜨는 순간에도 의자업계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소비자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현재 고급의자 시장은 외국 제품이 점령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죠. 하지만 저를 포함해 젊은 디자이너들이 좋은 의자를 만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물론 제품을 선택함에 있어 '가격'을 배제할 순 없죠. 그 부분은 제가 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격에 의한 평가보다는 의자의 성능 및 디자인적인 호평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젊은 친구들이 세계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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