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어렵고 힘들지만 재밌고 행복하다"

'청년 작가'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데요. 요즘은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더라도 실제로 예술가의 길을 가는 이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만큼 현실이 녹록지 않기 때문인데요. 고교시절부터 함께 미술을 배웠고 대학을 졸업한 후 나란히 작가의 길을 선택한 두 청년을 만났습니다. 변공규(26)·장건율(26) 작가입니다. 서로 작품을 만드는 모습을 지켜봐 주며, 서로 응원하는 두 명을 함께 만났습니다. 지난 1월 9일 창원시 진해구의 한 지하 작업실에서 두 작가를 만나, 청년 작가로 살아가는 모습을 들어봤습니다.

20대 청년 예술가

Q. 두 분은 언제부터 알고 지냈습니까?

변공규: 고등학교 때 창원 도계동에서 같은 미술학원에 다녔습니다.

장건율: 고등학교 때 미술학원에 가면 보통 여학생이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남학생이 많았어요. 그때 공규는 우리끼리 '미친놈'이라고 했습니다. '덕후(좋아하는 한 가지 분야에 몰두하는 사람)'라구요. 뭘 물어보면 다 아는 친구였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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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시 진해구 한 지하 작업장에서 만난 변공규(왼쪽) 작가와 장건율 작가. /박일호 기자

Q. 이 작업실에서 같이 그림을 그리나요?

장건율: 아닙니다. 저는 여기서 정치성, 장두영 형이랑 같이 그림을 그리다, 거리가 멀어서 다른 쪽으로 옮겼고요. 제가 빠지면서 공규가 들어왔습니다. 여기는 지인의 배려로 거의 공짜로 쓰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변공규: 건율이는 창원에서, 저는 진주에서 미술대학에 다녔어요. 작년에 졸업해서 창원 집 가까이서 작업실을 찾다가, 건율이가 얘기해줘서 이리로 왔습니다. 아침에 와서 밤늦게까지 작업하고 퇴근해요. (웃음)

Q. 지금까지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말해주시죠.

장건율: 저는 원래 꽃의 이미지와 꽃이라는 글자를 화면 위에 같이 병합하는 식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처음에는 꽃이라는 기호가 실제 가진 꽃의 이미지를 포획한다고 생각했어요. 지난해 12월 진해 스페이스 초아에서 '산 넘어 산' 전시를 하면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그림을 그릴 때 색을 쓰고, 형태를 만드는 게 좋아서 했는데요. 어느 순간 보니 의미를 만들고,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게 강해진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전 작업 내용을 접어두고, 하고 싶은 그림을 그렸어요. 굳이 글자를 가져오고 이야기를 만들기보다 화면 안에서 꽃을 표현하고 싶은 대로 표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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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공규 작가의 작품 '영경'.

변공규: 저는 자연물을 보면서 자연물 속에서 제 스스로 상상하고 사유하는 공간을 만드는 작업을 했습니다. 초기에는 썩은 나무를 채집, 정제해서 표현했는데요. 저는 이런 사유를 하는데, 관람객들은 어떻게 보는가 묻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표현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돌 작업을 시작했어요. 돌 표면을 순지로 배접해서 흰 바탕에 먹으로 자연에 대한 결을 표현했습니다. 산수화 이미지가 생겼습니다. 자연물을 무심코 지나가지 않고,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12월 건율이와 함께 참여했던 전시에서는 1년간 혼자 작업에 몰두하면서 소통이 없어졌다는 것을 깨닫고, 제 작업을 관람객이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어요. 제 작업물과 함께 평소에 작업실에서 모아두던 장난감, 캔 등을 함께 선보였습니다.

Q. 작업을 하면서, 본인이 잘하는 특기 같은 것이 있으실 텐데요. 각자 어떤 것인지 말씀해주세요.

장건율: 저는 망친 작업을 잘 고칩니다. (웃음) 작업을 할 때 뒤섞어놓고 새로운 정리를 잘합니다. 예전에는 모사하는 걸 잘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는데요. 최근에 새롭게 정리를 잘한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림을 그리는 게 항상 그렇더라고요. 어쩌면 이걸 잘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마다 새로운 게 나오더라고요. 삶 전반을 봤을 때도 그렇고요. 설거지도 미뤘다가 한꺼번에 하는 걸 잘합니다. (하하)

변공규: 저는 쓰레기를 유심히 봅니다. 사람들이 쓸모없다고 본 걸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서 많이 봅니다. 부러진 의자가 있으면, 새로운 걸 만들 수 있는 것을 상상하고요. 그런 걸 잘합니다. 아, 정말 잘하는 것은 모으는 건데요. 아주 어릴 적부터 버리지 않고 모으는 걸 잘합니다. 어머니가 엄청 싫어하시는데요. (웃음) 모은 물건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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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건율 작가의 작품 '꽃'.

"3D 프린터 등 실험 거쳐나갈 것"

Q. 졸업하고 전업 작가로 시작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작년에 졸업 후 어떤 활동을 했고, 생계는 어떻게 유지하나요?

변공규: 졸업하기 전까지는 미술과 관련 없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공장에서 부품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졸업하고 나서 벽화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미술로 돈을 벌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성산아트홀에서 디스플레이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일하면서 전시에 대해서 많이 배웠습니다. 지금은 작년 말부터 미술품을 만들어서 팔고자 준비 중입니다.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제 작품을 인정받는 작품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이제 생활이 될 수 있는 미술도 함께 하고자 해요. 디자이너는 소비자가 원하는 걸 만들지만, 아티스트는 자기가 원하는 걸 만들어서 활로를 개척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하.) 3D 프린트로 출력해서 미술품을 만들 계획인데요. 작업실 곳곳에서 실험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기존에 하던 작품 작업은 당연히 따로 계속하는 것이고요. 독특하고 새롭고 화려한 게 아니라 쉴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에 작업하는 게 쉬는 것이기도 합니다.

장건율: 작년에 졸업하고, 운이 좋아서 전시, 기획 등을 할 기회가 많았어요. 졸업전시를 하자마자 갤러리고운에서 4인전을 했고, 2월부터 5월까지 창원아시아미술제 기획 일을 했습니다. 미술제가 끝나자마자 경남도립미술관에서 'N아티스트 2016-새로운 담지자' 전시에 참여했습니다. 석 달간 전시를 하자마자, 다시 독일에서 한 달간 작품 전시를 했어요. 돌아와서 잠시 한 달 쉬다가 스페이스 초아에서 전시를 하니, 1년이 끝났더군요. (하하) 선택은 제가 한 것이지만, 조금 지쳤습니다. 그림을 그리기 싫다가 아니라, 내가 뭐 하고 있나 생각했죠. 올해는 아무것도 안 하겠다 생각했습니다. (웃음) 저는 대학 가면서 계속 미술학원 강사를 했는데요. 디스플레이, 벽화, 간판 작업, 캐리커처 일도 했습니다. 제 인생의 경험이 미술 쪽에 국한돼 있다 보니, 사소한 경험에도 제가 많이 바뀌는 걸 느꼈습니다. 사회생활도 저를 바꾸게 하는 것 같아서 미술을 바탕으로 많은 경험을 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카페 아르바이트도 하게 됐는데요. 서빙도 하고, 라떼아트도 배우고 있습니다. 그림이 제일 어려운 줄 알았는데, 세상사는 게 쉽지 않아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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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공규(왼쪽) 작가와 장건율(오른쪽) 작가. /박일호 기자 i

Q. 같이 대학을 졸업한 친구들도 작가로 활동하고 있나요?

장건율: 보통 한 학번에 40명이 채 안 됩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1, 2명만 작가로서 작업을 합니다.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대학원에 가거나 외국 유학을 가기도 하고, 다른 지역으로 가기도 하는데요. 여기에 남은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변공규: 저는 미술교육과여서 더더욱 작업하는 친구가 없어요. 돈을 벌면서 작업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동시에 하려면 시간이 부족하구요. 저는 시간이 없어서 잠을 줄이고 있습니다.

"힘든데 재밌어요. 그래서 합니다"

Q. 어려운 여건임에도 미술 작업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변공규: 저는 힘든 여건 속에서도 제가 좋아하는 걸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분이 왜 미술을 하느냐고 물으시는데요. 저도 모르게 이걸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있어서 삶이 윤택해집니다.

장건율: 저도 정말 이렇게 힘든데 미술 작업을 하는 게 재미가 없진 않아요. 힘든데 재밌거든요. 그래서 합니다. 일하면서 욕하다가도, 사진 찍고 그림 그리면 싫진 않거든요.

Q. 올해 무슨 일을 계획하고 있습니까?

변공규: 올해는 경남산업직업전문학교 인테리어디자인 양성과정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포토샵, 일러스트, 인디자인, 상품 마케팅까지 배우는 건데요. 배워서 아트마켓 시장 조사도 하고자 합니다. 예술가는 1인 기업이어서 더 철저하게 준비하고자 합니다. 작업하면서 알릴 수 있는 다양한 플랫폼을 고민 중입니다.

장건율: 사진 전시도 하고 싶어요. 아르바이트 말고, 살 방법을 계속 찾아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진짜 1인 기업이 맞아요. 저희 마인드는 연예인이에요. 다양한 삶의 방식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4컷 만화 등도 그리고, 작품을 알릴 수 있는 다양한 홍보 방법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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