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섬, 경계의 섬

도장포와 신선대를 구경하고 바람의 언덕을 넘어 해금강을 들렀다 나와 함목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기암괴석의 절벽을 끼고 달린다. 수평선 아련한 곳까지 물비늘이 반짝거리는 바다는 그대로 하늘빛이다.

거제의 남쪽 해안은 일본과의 경계를 바라보며 태평양의 거침없는 파도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곳이다. 억겁의 세월을 바다와 싸워온 해안은 그 상흔으로 천해의 비경을 펼쳐 놓았다. 멀리 대마도가 보이면 아득한 변방의 소원함을 느낄지도 모르겠으나 거제는 경계에 나앉은 유형의 땅만은 아니었다. 일본과 중국 동서의 해상 무역 중간 기착지로 인적 물적 교류가 활발했다고 한다.

123.jpg
▲ 신선대서 보는 천장산과 형제섬. / 박보근 노동자

거제 제일봉 가라산 남쪽을 따라 해안도로가 아름다운 다대항을 지나 다포 삼거리에서 다시 왼쪽으로 길을 잡는다. 해안 절벽이 키 재기를 하고 작은 만과 곶이 들고 나면서 도로는 휘돌았다 굽이치고 까꼬막이 코를 치다가 내리막에 궁둥이 불이 난다. 거제 지맥이 남쪽으로 달리다 용트림을 하고 멈춘 망산 중허리를 반쯤 돌아들면 왕의 용상처럼 생긴 바위가 바닷속으로 발을 담근 채 좌우로 길게 펼쳐진 몽돌밭을 거느리고 앉았다. 여차몽돌해변이다.

여차는 이곳에서 여자 명창이 났다고 하여 여창포에서 유래됐다고 하나 그 여자 명창이 실존 인물인지 아닌지는 근거를 찾지 못했다. 이웃 한산도 여차 마을은 옛날 임진왜란 때 배의 노를 만들던 곳으로 노를 젓는 소리 "어기여차"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여차의 몽돌은 학동이나 농소보다 돌들의 크기가 대체로 균일하다. 그래서인지 내 귀에는 파도에 구르는 소리가 가장 듣기 좋았다.

여차.jpg
▲ 여차를 두른 망산. / 박보근 노동자

바위의 오른쪽 몽돌 해변은 20년 전 개봉한 '은행나무 침대' 촬영지로 미단 공주가 가야금을 띄워 보내는 장면과 궁중 악사 종문이 황 장군의 칼에 목숨을 잃는 장면이 촬영된 곳이다. 봄철에서 초여름까지는 이 몽돌밭이 까맣게 변하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견내량 돌미역과 쌍벽을 이루는 여차 돌미역을 말리느라 해변은 온통 검게 뒤덮이고 짭조름한 해초 내음이 물씬 풍긴다. 여차의 돌미역은 일반 양식산 미역과 달리 여차 돌미역 포자를 이용해 복원한 미역이라 돌미역과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햇빛이 물속 깊이까지 비추는 청정해역이라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받고 거센 파도와 조류를 견디면서 튼튼하게 자라 질기지 않으면서도 무르거나 잘 퍼지지 않는다. 좋은 돌미역은 색깔이 새까맣고 이파리가 주름이 많으면서 깨끗하다. 색이 짙을수록 햇볕을 많이 받아 영양분이 풍부하고 주름이 많은 것은 거센 물살을 견디고 자라 탄력이 좋고 맑은 물에서 자라 깨끗한 것이다. 한여름 휴가철에 사람과 차에 치여 짜증스런 추억을 만드는 것보다 붐비지 않는 철에 들러 보면 이런 자연산 돌미역도 값싸게 구입할 수 있다.

▲ 여차 몽돌 해변과 천장산. / 박보근 노동자

여차를 지나 홍포로 가는 길은 낭떠러지와 절벽 사이로 포장도로와 비포장 자갈길이 번갈아 이어진다. 거제의 최남단을 돌아나가는 여차홍포해안도로다. 이곳도 영화에서 소개된 바 있다. 십여 년 전쯤 개봉한 영화 '파랑주의보'에서 차태현과 송혜교가 푸른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올망졸망한 섬들을 배경으로 자전거를 달리던 곳이다.

거제 최남단인 남부면에는 남해안 전체를 조망할 수 있었기에 일본 강점기 유적들이 많다. 천장산 레이더 기지나 쌍근 마을의 '대박 구덕(대포 구덩이)'라 불리는 포진지와 근포 마을 땅굴 등이 있다. 대부분 거제도 포로수용소가 고현 일원에 설치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거제 여러 곳에 만들어졌다. 이곳에도 저구, 명사, 다포 마을에 주민을 소개하고 포로수용소를 지어 운용했다. 까막 고개를 넘어서면 널찍한 2층 전망대가 나타난다. 거제 팔경의 하나인 여차홍포전망대에 오르면 대·소병대도와 가왕도가 망산이 들려주는 옛이야기라도 들으려 무릎 앞에 둘러앉은 아이들 마냥 옹기종기 모여 앉았고 뒤편에는 통영시 한산면에 적을 둔 매물도와 소매물도가 거제 식구들과 더불어 자리했다.

123.jpg
▲ 대병대도 뒤로 매물도가 보인다. / 박보근 노동자

바다 위에 해무가 구름처럼 내려앉고 섬들이 점점으로 머리만 내민 사이 안개를 헤치고 가는 배는 지상의 풍경이 아니다. 하늘로 두리둥실 흘러가는 듯 배에서 신선의 피리 소리라도 들릴 것 같은 선경이다.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르고 앉았다가 기운 해에 문득 깨어 다시 길을 되잡는다.

근포 마을 앞을 지나는데 '근포 마을 땅굴'이라 적힌 작은 안내판 하나가 용캐 눈길에 잡혔다. 휴전선도 아닌데 무슨 땅굴? 호기심이 생겨 근포 마을로 들어섰다. 이웃 대포 마을과 저구만을 감싸듯 자리 잡은 작은 어촌 마을이다. 바다가 너무 잔잔하다 싶어 난바다 쪽으로 눈을 돌려보니 길쭉한 섬이 만을 막아서서 바깥 바다의 파도를 막고 있다. 긴 뱀처럼 생겼다 하여 장사도다. 이 섬 역시 거제 품 안의 통영 섬이다.

점심을 해결하러 들른 식당에서 이 마을에 무슨 폐쇄된 광산이 있느냐 물었더니 그런 광산은 없는데 왜 그러냐고 되묻는다. 마을 입구 땅굴 안내판 이야기를 했더니 그게 무슨 볼거리라고 웃으면서도 자세히 일러 주신다. 일제 강점기에 포진지용으로 다섯 개의 바위 동굴을 만들었다. 1941년 근포 마을 뒤편 바닷가 낭떠러지에 일본군이 외지인을 동원해 발파작업을 하면서 굴착하다 해방이 되면서 공사가 중단된 채 남아 있는데 다섯 개의 땅굴 중 두 개는 가운데를 관통 연결하여 쌍굴이라 부른다. 나머지 일부는 인근 수산 회사의 창고로 쓰이고 일부는 도로 개설로 입구가 펴쇄된 것도 있는 등 대체로 방치되고 있었다. 그 하나하나 크기가 길이는 30~50m에 높이와 폭이 5m로 꽤 큰 규모의 바위 동굴이다. 보국대란 이름으로 끌고 와 4년여 동안 우리 백성들을 노예 부리듯 했을 것이다. 아린 역사가 방치되고 잊혀져가는 것이 못내 안타깝다. 동굴 안이 여름에는 시원하여 파리 모기조차 별로 없다는데 동굴 앞에 작은 모래 해변도 있으니 내년 휴가는 사람과 차에 치이지 않고 이곳에서 보내 볼까나.

굴 내부.jpg
▲ 굴 내부가 연결되어 있는 쌍굴. / 박보근 노동자

거제에는 품안의 섬이지만 남의 집에 적을 두고 있는 섬들이 많다. 그 대표적인 섬이 이곳 매물도와 장사도 그리고 장목면의 저도다. 진해와 부산을 연결하고 대마도가 빤히 보여 군사적 요충지였던 저도는 1920년대 일본이 통신소 및 탄약고로 사용하기 위해 대대로 살아오던 주민들을 쫓아낸 이후 지금까지 백여 년 사람이 살지 못하는 섬이 되었다. 50년대는 미군의 탄약고로 쓰이다가 이승만 대통령이 휴양지로 이용하면서 박정희가 청해대로 공식 지정했다. 75년 대통령 경호 문제를 구실로 거제시에서 진해시로 옮겨 국방부 소유로 해군 통제부가 관리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되새기는 저도의 추억이 머물던 그 당시 인근 장목면 유호리 일대 주민들은 생활 불편뿐만 아니라 생계까지 위협 받아야 했다. 대통령이 저도에 내려오면 야간 통행금지와 등화관제까지 실시하여 불도 마음대로 켜지 못했다. 저도 주변에서 어업을 못하게 하여 풍족한 어장과 해초를 눈앞에 두고도 고기를 잡거나 해산물을 채취할 수 없었다. 어쩌다 고기를 쫓아 어업 금지 구역으로 들어갔다간 해군에 붙잡혀 죽도록 얻어맞고 풀려나기도 했다. 1993년 거제시 장목면 유호리로 주소는 환원되었으나 여전히 국방부 소유여서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다. 거제의 관심 있는 인사와 시민 단체들이 꾸준히 관리권 이양을 촉구하고 있다.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여 저들만의 추억에서 모두의 추억이 깃드는 저도를 만들면 그 아니 좋겠나.

저도는 정치, 군사적인 이유로 품안의 남 자식이 되었다만 여기 장사도와 매물도는 왜 통영에 적을 두게 되었을까. 관할 관청에서의 거리 때문이라고 매물도 주민이 말했다. 거리 때문이라면 거제가 훨씬 가깝지 않느냐 물었더니 그게 아니란다. 통영에서 배를 타면 두 시간 정도 걸리고 거제서는 30분 남짓인데 고개를 갸웃하니 젊은 사람이 생각이 짧다며 이야기하신다. 통영시청에서는 바로 뱃머리에 나와 두 시간 걸리지만 고현의 거제시청에서 배 타려면 남부면 저구항까지 요즘 찻길로 달려도 칠십 리 길이다. 옛날 우마를 끌고 타고 산길을 넘어 호구 조사 한 번 하고자 해도 삼박 사일이니 행정이 불편하여 조선시대까지 거제의 섬이었던 매물도 장사도를 행정 구역이 개편되면서 통영에 입양시킨 거란다. 수긍이 가는 말씀이다. 장사도는 긴 뱀 모양의 섬인데 외도 보타니아처럼 개인 소유로 가꾸어진 섬이다. 외도보다는 덜 인공적이고 지난날 주민이 거주했던 흔적들이 작은 교회당이나 장사도 분교 등 곳곳에 남아 있다.

공연장.jpg
▲ 바다를 무대로 한 야외 공연장. / 박보근 노동자

매물도는 옛날 메밀이 많이 생산되어 붙여진 이름이란다. 바닷길과 하늘길 산길이 어우러진 매물도 산책길에 만난 남매바위 전설이 애틋하다. 옛날 매물도에 금슬 좋은 부부가 쌍둥이 남매를 낳았는데 쌍둥이를 함께 키우면 단명한다는 속설에 어린 딸을 아무도 살지 않는 소매물도에 버린다. 다행히 딸은 죽지 않고 살아나 소매물도에서 혼자 자란다. 세월이 흘러 장성한 오라비가 소매물도에 들렀다가 우연히 누이를 만나 피를 나눈 사이임을 모른 채 서로 사랑하게 된다. 백년가약을 맺고 합방하려 하자 하늘이 천륜을 어기지 못하게 벼락을 내려 바위를 만들어 둘로 쪼개어 누이는 산비탈에 오라비는 바닷가에 떨어져 살게 했더란다.

섬이 섬을 품어 안고 사람을 우두며 씨줄 날줄로 이야기를 엮어낸다.

321.jpg
▲ 쿠크다스섬 소매물도 등대섬. / 박보근 노동자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