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갛게 노을이 물드는 바닷가. 어디선가 '뚜루뚜루~'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소리 나는 쪽을 유심히 관찰해 봐도 물체는 보이지 않는다. 서쪽 하늘 방향이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서서히 윤곽을 드러낸다. 흑두루미 무리다. 대충 헤아려보니 500마리가 넘는다. 사천 광포만을 찾아온 흑두루미들은 우선 갯벌 위에 내려앉아 휴식을 취한다. 2, 3일 동안 지낸 후 다시 어디론가 떠났다. 어디서 날아온 걸까? 왜 날아온 걸까? 또 어디로 간 걸까?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두루미 종류는 두루미, 흑두루미, 재두루미 등이다. 전 세계에는 15종류가 있다. 늦은 가을에 한반도로 날아와 겨울을 나고 이른 봄에 번식지로 돌아간다. 두루미는 경기도 철원과 파주, 연천, 강화도에서만 볼 수 있다. 간혹 무리에서 이탈한 개체가 다른 곳에서 발견되기도 하지만 주된 월동지는 비무장지대 부근이다.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골짜기 주변 논과 밭, 갯벌에서 먹이를 먹고 여울이 있는 강 근처에서 잠을 잔다. 두루미는 수천 년 동안 사람들에게 장수와 풍요의 상징으로 여겨져 귀한 대접을 받아 왔다. 십장생의 하나로 병풍에 그려지기도 하고, 벽화에도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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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을 나는 재두루미.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두루미는 '뚜루뚜루~' 하는 울음소리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두루미의 라틴어 속명인 '그루스(Grus)'의 어원도 비슷하다. 일본에서는 두루미를 '쓰루'라고 부르는데 마찬가지로 소리에서 기원한 것이다. 동서양 모두 두루미 소리에 주목한 공통점이 있다.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두루미를 볼 수 있는 곳은 병풍이다. 십장생의 하나로 소나무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하지만 주로 습지에서 생활하는 두루미는 소나무 위에는 앉지 않는다. 소나무, 돌, 거북, 사슴과 함께 그려지는데 모두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새해 연하장이나 달력에 등장하는 두루미 그림은 장수와 행운을 상징한다. 우리 선조들은 두루미가 천 년을 살면 푸른 '청학(靑鶴)'으로 또 천 년을 살면 검은 '현학(玄學)'으로 변해 영원히 죽지 않는 새가 된다고 믿었다. '청학이 사는 골짜기'가 청학동이다. 청학이나 현학은 전설의 새인데, 이 새가 울면 천하가 태평하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약 90년까지 살았던 시베리아흰두루미도 있지만 평균 수명은 대략 60세 전후로 여겨진다. 야생으로 살아가는 두루미보다 동물원에 사는 두루미가 더 오래 산다.

두루미는 지구상에 사람이 나타나기 훨씬 이전부터 출현했다. 약 5,500만 년 전부터 지구에서 살아왔다고 한다. 고구려 벽화에서도 볼 수 있고 조선 시대에는 선비들의 사랑을 듬뿍 받기도 했다. 선비의 상징으로 여겨 문관의 흉배에 수를 놓아 표현하기도 했고 도자기, 그림, 나전칠기 등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이렇게 두루미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의 신화와 전설 속에 나타난다. 선사시대 동굴, 이집트 무덤, 아프리카, 호주, 인도, 그리스에서도 두루미 흔적을 볼 수 있다. 170~180cm에 달하는 키와 우렁찬 울음소리가 무척 인상적으로 들려 더욱 더 숭배의 대상이 된듯하다. 두루미가 내는 매우 큰 소리는 몇 킬로미터 밖에서도 들린다. 보이지도 않는데 큰 소리로 울어대며 한참 후에 나타나는 두루미를 본 옛날 사람들에게 두루미는 하늘의 전령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국제두루미재단에서 기르는 두루미 15종을 30년 동안 관찰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두루미의 소리와 몸짓 언어는 60가지 이상이다. 연구진은 "인간을 뺀 척추동물 중에서 가장 복잡한 행동을 지닌다"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이런 여러 가지 두루미 행동을 춤으로 표현한 것이 '학춤'이다. 피아니스트 임동창 선생은 흑두루미를 노래로 표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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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강을 찾아온 흑두루미.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파아란 하늘에 흑두루미 한 마리/날아 오른 길도 없고/나아-가야 할/길도 없네/파아란 하늘에 흑두루미 한 마리

두루미는 한자어로는 학(鶴)이라 불린다. 몸 색깔이 순백색인 두루미는 머리 꼭대기에 붉은 점이 있어 단정학이라고 하는데 재두루미는 회색빛이 나는 몸이라 회학, 흑두루미는 흑학이라 불린다. 단정학인 두루미가 겨울을 나는 지역은 극히 한정되어 있다. 철원의 민통선 부근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고 임진강이 있는 연천과 파주에서도 꽤 볼 수 있다. 강화도 갯벌에서 겨울을 보내는 두루미들도 있는데 날씨가 추워져 먹이 구하기가 힘들어지면 새만금 부근까지 내려올 때도 있다. 반면에 재두루미와 흑두루미는 더 아래쪽으로 내려와 월동한다. 재두루미는 창원 주남저수지와 사천 광포만에서 겨울을 나기도 한다. 흑두루미는 순천만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순천만은 처음 발견되었을 때와 비교하면 최근에 월동 개체 수가 크게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순천만이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고 사람들 보살핌이 더해져 나타난 결과다.

두루미는 170~180cm의 키에 240cm에 이르는 날개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두루미가 신선을 태우고 날아다녔다고 여겼다. 부리는 머리 길이의 1.5배 정도 되는데 갈색을 띤다. 정수리에는 붉은 반점이 있는데 피부 돌기가 모여 만들어진 것이다.

두루미는 주로 중국 북동부와 러시아 지역에서 번식한다. 중국 자롱 습지에 두루미를 만나러 간 적이 있는데 너무나 광활한 습지라 처음엔 상당히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경계가 되는 흑룡강 주변에서 두루미와 재두루미, 황새를 관찰했었다. 황새 둥지 하나를 관찰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2시간을 달려가기도 했다. 워낙 넓은 면적에 한 쌍식 번식하고 있어 실제로 두루미나 황새를 관찰하기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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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식지에서 만난 두루미 새끼.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중국 흑룡강성 치치하얼 시는 중국 북동부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다. 중국 최초의 자연보호구역 가운데 하나인 자롱자연보호구는 치치하얼 시에서 23km쯤 떨어져 있다. 1992년에 람사르습지로 등록되었고 국제두루미재단의 도움을 받아 두루미센터도 개관되었다. 자롱자연보호구는 세계에서 두루미 종류가 제일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이기도 하다. 러시아와 중국 북동부 지역에서 번식하고 우리나라를 찾아와 겨울을 나는 두루미는 900마리에서 1,000마리 정도 된다. 일본 홋카이도에 있는 구시로 습지에는 텃새로 살아가는 두루미들도 있다.

재두루미는 이름 그대로 잿빛 색깔이 나는 두루미다. 키는 120cm에서 140cm에 이르고 날개 길이는 220cm쯤 된다. 두루미보다는 약간 작다. 날개와 몸 깃은 은은한 잿빛을 띠고 꼬리 쪽으로 흰색 날개깃이 길게 늘어져 고고한 자태가 돋보이는 새다. 재두루미는 암수가 똑같이 생겨 구별하기 어렵지만 암수가 같이 붙어 있으면 구분할 수 있다. 수컷이 암컷보다 키가 크고 부리가 긴 편이다. 재두루미는 중국 북동부와 러시아 동남부의 아무르 강 유역에서 몽골 동북부에 이르는 곳에서 번식한다. 번식지에 가보면 강의 범람원, 숲과 늪이 섞여 있는 평야 지대, 저지대 습지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두루미가 갈대같이 키가 큰 풀이 자라는 물가를 좋아하는 반면에 재두루미는 풀의 키가 작고 물이 잔잔하게 젖은 넓은 초지에서 번식한다. 번식지에서 새끼를 키운 재두루미는 겨울이 시작되는 시기에 한반도로 날아온다. 월동지에서 보이는 재두루미는 두루미보다 비교적 넓게 트인 논이나 강 하구를 좋아하며 사람에 대한 경계심도 적은 편이다.

한국과 일본을 찾는 재두루미는 4,500마리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전 세계 생존 개체 수는 6,500마리에서 7,500마리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천연기념물 제203호와 멸종위기 2급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흑두루미는 100cm 정도 되는 키에 몸무게도 3~5kg 정도 된다. 몸은 전반적으로 흑회색이다. 흑두루미는 두루미나 재두루미보다 좀 더 북쪽에서 번식한다. 아무르강 북부 타이가 지대가 주된 번식지다. 흑두루미는 10월까지 번식지에 머무르다 중간 기착지인 우리나라에는 10월 말쯤에 찾아온다. 1990년대까지는 대구 달성 습지에서 월동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공업 단지로 개발되거나 농지가 비닐하우스로 덮여버려 더 이상 월동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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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두루미.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전 세계 흑두루미 개체 수는 1만 2,000마리로 추정되는데 이들의 80%는 일본 남부 규슈에 있는 이즈미 시에서 월동한다. 2016년 2월 이즈미시를 방문했을 때 약 1만 마리 정도 되는 흑두루미와 재두루미를 볼 수 있었다. 한반도에는 순천만, 천수만에서 겨울을 나는 흑두루미를 직접 볼 수 있다. 이즈미로 날아가는 중간에 기착하는 흑두루미는 서산 천수만과 순천만, 사천 광포만 등에서 수천 마리가 관찰되기도 한다.

간혹 우리 동네에도 두루미가 보인다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확인해 본 결과 모두 백로 종류와 왜가리를 두루미나 재두루미인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옛날 사람들은 백로와 왜가리처럼 덩치가 꽤 큰 새를 통칭해서 두루미 또는 학이라 부르기도 했던 모양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두루미들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두루미는 위기 단계, 재두루미와 흑두루미는 취약 단계에 놓여 있다. 대규모 개발로 인한 습지 감소가 가장 큰 원인이다. 과거에는 농약과 사냥이 큰 위협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요즘에는 논에 있는 '공룡알'이 낙곡까지 꽁꽁 싸매는 바람에 먹이 구하기가 무척 힘들어졌다. 야생 조류 먹이 주기를 통해 새를 보호하기도 하지만 조류 인플루엔자 만연으로 그것마저도 어려워지고 말았다. 반면에 순천만 사례에서 증명된 것처럼 생태계를 잘 보전하고 가꾸면 다시 찾아오기도 한다. 새와 사람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해 나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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