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 문학'의 모든 것 싣을 한국동심문학관을 꿈꾼다

본명은 김철수(57), 호는 동심(童心). 아동문학 관련 일을 할 때는 '동심철수'라 불린다. 그는 회사에 다니다 서른 즈음 국어 선생님이 되었다. 지금은 창원기계공업고등학교에서 일하고 있는 그에게서 일단 조금 만만치 않은 선생님인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철수 씨는 스스로 아이들이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자라도록 하는 편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늘 아이들 곁에 든든하게 버티고 있다. 철수 씨가 하고 있는 다양한 활동의 중심에는 늘 아이들이 있다. 올해 1월에는 그가 지은 동시에 음악을 입힌 동요로 채운 <어린이 나라>가 세상에 나왔다.

대기업 중공업 회사 다니다 국어 선생님 되다

철수 씨는 고성 섶밭마을에서 뛰놀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뭐든 품어줄 듯한 평화로운 마을이었지만 고향에서는 먹고 살길을 찾기 힘들었다. 그 시절 남학생은 공업고등학교, 여학생은 상업고등학교에 가서 하루라도 빨리 취직하는 것이 주변에서 바라는 길이었다. 철수 씨 역시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 마산(창원)으로 왔다.

"지금은 창원에 살지만 아직 주소지는 섶밭마을로 되어 있어요. 어머니가 계시니까 왔다 갔다 해요. 중학교까지 고성에서 나왔는데 다녔던 초·중학교는 지금 다 폐교됐어요. 마산으로 온 건 진짜 못 살아가지고 온 거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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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심철수 아동문학가. / 서정인 기자

철수 씨는 매일 고단하게 보냈던 새벽 시간을 떠올렸다.

"마산에 와서는 새벽마다 신문 배달을 했어요. 당시 '북마산역(창원시 마산회원구에 있었던 역)' 입구 신문 쌓인 차 앞에 모여서 하루를 시작했죠. 신문 돌리러 오는 사람들에게 신문 나눠주고 하는 부총무 역할도 했어요. 돈을 더 주니까요. 그다음에 한 구역을 맡아서 배달했죠. 마산 곳곳을 매일같이 지나다니면서 어렵게 공부했죠."

고향을 떠나 의지할 이 하나 없던 어린 학생에게 방세, 생활비 등 돈이 필요했을 테다. 철수 씨는 어떻게든 악착같이 하려고 하니 길이 열렸었다고 했다.

"'사환(잔심부름을 시키기 위해 고용한 사람)' 같은 건데, 학교 다니면서 파출소 숙직실에서 지냈어요. 경찰서에 가서 우리 파출소로 온 공문을 수거해서 가져오는 그런 일을 했어요, 파출소 숙직실에서 자면서 그걸 한 거예요. 끼니는 경찰관들이 점심 먹으려고 한 달 치 쌀을 사뒀는데 그걸 같이 먹고, 밥은 제가 짓기도 하고… 그렇게 지냈어요."

치열하게 학교를 다니다가 졸업 후에는 현대중공업에 취직했다. 79년부터 81년까지 회사에 다녔지만 점점 맞지 않다는 생각만 또렷해졌다.

"70년대에 '조국 근대화의 기수!' 이런 바람도 불고, 촌에서 먹고살기가 힘드니까 그 일을 선택한 거잖아요. 근데 할수록 적성에 안 맞더라고요. 대학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회사에 다니면서 81년도 마지막 예비고사를 치렀다. 철수 씨는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꿈을 떠올렸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회사를 미련 없이 그만두고 강남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등록금은 회사에서 번 돈에 더해 신문배달 두 번을 뛰어 충당했다. 철수 씨는 대학 시절 역시 그답게 빈 시간 없이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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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된 동심철수 씨의 작품들. / 서정인 기자

"처음에는 어린이문학보다는 국문학을 전공했으니까 대학로에서 문학 활동을 했어요. 동인 활동하면서 여러 글도 쓰고요. 제가 술, 담배를 안 하는데 대학 다닐 때 다른 유익한 경험들을 많이 하려고 동아리에 가입해서 활동을 많이 했어요. 연극동아리에서 연극도 네 작품 정도 하고, 영상동아리에서 영화도 많이 보고, 영상제에 출품할 영화 같은 걸 만든다고 ENG 카메라 이만한 거 들고 다니면서 찍고 그랬죠. 3학년 때는 학교 학보사 기자도 하고요. 그래서 대학 시절 내내 콩트, 산문, 기사… 다양한 장르의 글을 많이 썼죠."

다른 학업도 병행했다. 철수 씨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초등교육과에 입학했다. 선생님이 되는 길은 꽤 많은 단계가 있었다. 하지만 꾸준히 밟아나갔다. 희한하게 운과 타이밍도 따라주었다. 동국대 교육대학원에서 국어교사 자격을 받고 89년 8월 졸업을 했는데 10월에 임용고시가 생겼다.

"어떤 학생이 왜 사립학교 나온 사람은 임용고시 볼 자격도 안 주느냐고 헌법소원을 청구했어요. 제가 졸업하고 딱 두 달 후에 임용고시를 볼 수 있게 된 거죠. 초등 임용이 먼저 생겼는데 그중 경남이 제일 먼저 시험을 쳤어요. 경남 초등 임용고시를 쳤고 90년 3월 1일 자에 발령이 났어요."

아이들과 자연으로부터 나온 글

89년은 철수 씨에게 남다른 해였을 듯하다. 임용고시에 합격했고, 반려자와 결혼을 했다. 그리고 고향인 경남으로 돌아왔다. 그의 첫 근무지는 마산 진동초등학교(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였다.

"마산 진동초등학교로 첫 발령이 났어요. 2년 근무하고, 고성에 갔다가 4년 6개월 근무하고 8월에 중등으로 전직하는 시험이 있어서 그걸 봤죠. 그때도 두 명인가 뽑았는데 합격해서 김해로 발령 났어요."

철수 씨는 초등학교에 있을 때부터 아이들과 체험활동을 유독 열심히 했었다고 한다.

"그때 한창 아이들하고 산으로 들로 체험활동 다니고 '보이스카우트' 활동했던 때였어요. 진동초에 있을 때는 없었던 여자배구팀을 꾸려서 소년체전 가서 메달도 따고 했어요.(웃음) 그땐 보상 같은 것도 없었는데 그냥 좋아서 한 거죠. 아이들하고 재밌게 노는 게 좋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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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심철수 씨의 집 현관 입구에 붙여진 한국동심문학관 현판. / 서정인 기자

지금 생각해봐도 '동심'에 흠뻑 빠졌던 때였다. 아동문학가로서 시작점이라 볼 수 있는 작품도 이즈음 나왔다. 선생님이 되고 아이들과 지내면서 그의 작품들은 더욱 여물기 시작한 듯하다. 철수 씨는 94년 경남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다. <섶밭마을 아이들과 정자나무>라는 동화였다. 제목 속 '섶밭마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철수 씨가 유년시절에 뛰어놀았던 고향 마을을 떠올리며 지은 동화다.

"제가 고향에서 뛰어놀던 70년대에 한창 지붕개량사업이나 마을 길 넓히기 사업 같은 걸 했는데, 그런 시기를 맞아 변하는 고향을 배경으로 지은 동화예요. 동화 속 마을에 큰 정자나무와 사당이 있어요. 동네 아이들에게는 그게 정말 소중한 놀이터예요. 근데 도로를 내고 마을을 정비하면서 나무를 베고 사당을 없앤다는 소식이 들리는 거예요. 아이들이 그걸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나무와 사당을 지방문화재로 등재하기로 해요. 군청에 가서 사당에는 이런 유래가 있고, 이 나무에는 이런 역사가 있기 때문에 보호해야 한다, 길을 둘러서 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군청에 얘기해서 결국 나무와 사당을 아이들이 지킨다는 내용이에요."

신춘문예 당선 이후 본격적으로 문단 활동을 시작한다. 95년에는 <아동문예> 동화 당선, 2005년에는 월간 <문학공간> 평론 신인상을 받았다. 초창기 작품에서 드러나듯 그가 특히 관심을 두는 주제는 '환경'이다. 훼손되지 않은 자연은 철수 씨가 사랑하는 아이들의 '동심'과 닮았다.

"초창기에는 거의 환경 동화였죠. <초록 날개 아이들>, <환경 지킴이 대장을 꿈꾸며> 작품 같은, 주로 아이들하고 자연에서 체험활동하면서 느낀 내용으로 글을 썼어요."

'아이들의 다섯 계절'을 시로, 노래로

동요집 <어린이 나라>가 지난 1월에 나왔다. 철수 씨의 동시를 노랫말로 삼고, 김화석 작곡가가 멜로디를 붙여 동요를 만들었다. 그의 시는 늘 아이들과 자연을 담고 있다.


해가 잠든 아파트숲 겨울밤

눈 오는 밤

아이들은 기뻐하며 은하를 달린다.


붉게 물든 갈밭 길 얘기 모두 잠재우고

하이얀 달빛 별빛 모두 함께 추억을 엮는다.

 

해가 잠든 아파트숲 겨울밤

눈 오는 밤

아이들은 기뻐하며 은하를 달린다.

 

찬바람이 매서운 겨울밤

눈 오는 밤

아이들은 따스한 햇살 그리며 은하에 빠진다.

 

텔레비전 속 얼음판 경기 환호성 뒤로하고

가로등 불빛 쫓아 반딧불 추억을 떠 올린다.

 

찬바람이 매서운 겨울밤

눈 오는 밤

아이들은 따스한 햇살 그리며 은하에 빠진다.

- 동심철수 '겨울 밤' -

"작곡가와의 인연은 2015년 마산가고파 국화축제-어른이 부르는 창작동요발표회를 함께 하면서부터예요. 예전에 그분께 책을 하나 선물했는데 책에 담긴 동시에 곡을 붙여서 동요발표회를 하면 어떻겠냐고 하시는 거예요. 그게 인연이 돼서 우리 문학회 시들에 곡을 붙여 주셨어요. 그러다 제 시를 가지고 동요집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탁을 드렸더니 고맙게도 선뜻 해주시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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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심철수 아동문학가. / 서정인 기자

<어린이 나라>에서 말하는 다섯계절은 사계절에 어린이들의 동심의 계절이 더해진 것을 뜻한다. 간단하게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소재로 한 작품 외에는 동심의 계절이라는 주제로 묶었다.

"동심의 계절이자 그리움의 계절이죠. 아이들의 계절은 다 그리움의 계절이에요."

스스로 생각하기에 가장 '동심적인' 동요인 '어린이 나라'는 제목으로, 또 책 뒤표지에 담았다.


어린이 나라에 대통령은

어린이지요.

국회의원도 어린이

장관도 어린이

도지사 교육감 선생님도 어린이

어린이 나라가 있으면

정말 좋겠네.

어린이 나라에 국민은

어린이지요.

농촌에도 어린이

도시에도 어린이

농부도 어부도 회사원도 어린이

어린이 나라가 있으면

정말 좋겠네.

- 동심철수 '어린이 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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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심철수 아동문학가. / 서정인 기자

"어린이가 주체인 '어린이 나라'를 상상하는 게 가장 동심다운 생각이라고 생각해요."

철수 씨는 아이들이 마음껏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이 완전한 어린이 나라라고 생각한다. 그의 교육 방법에서도 그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제가 아동문학을 하는 사람이지만 자녀 키울 때는 사실 도움이 안 됐어요.(웃음) 다른 아빠들은 모르겠지만 저는 풀어주는 스타일이에요. 자기가 판단하도록 하죠. 제가 자랄 때도 저는 스스로 판단하고 깨우쳤고 간섭이나 지시를 싫어했거든요. 어떻게 보면 관심이 없는 걸로도 보이는데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고 존중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아이들과 체험 활동하러 갈 때도 조만 짜놓고 그다음부터는 아이들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간섭을 거의 안 해요. 다른 사람들은 방치라고 얘기할 수 있지만 체험활동에 가서 스스로 능동적으로 하는 자세를 터득하는 것도 중요하거든요. 하나하나 시키고 간섭하면 배우는 게 적으니까요. 우리 딸, 아들한테도 그랬어요."

살고 있는 집, '한국동심문학관'으로

철수 씨는 학교가 방학인 지금도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한국아동문학회 경남지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아동문학가라 불리지만 동시, 동화 작품만 짓지 않는다. 바른 목소리를 내는 데에도 거침이 없다. '이원수의 친일문학에 대한 연구'와 같은 아동문학 관련 역사 연구 활동에도 꾸준히 몰입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한 촛불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듯 시위 때 들었다가 가져온 피켓이 집안 곳곳에 놓여 있다. 거기에다 정기적으로 해오고 있는 복지관 수업 봉사활동까지. 어린이와 문학을 중심으로 한 그의 생활은 늘 바쁘다.

단독 주택인 철수 씨의 집으로 들어서다 보면 현관문 위에 눈에 띄는 것이 있다. '한국동심문학관'이라고 새겨진 현판이다.

"이 집을 포털사이트 지도에서 검색하면 한국동심문학관이라고 나와요. 이곳 당호죠. 이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 시간이 앞으로 6년 정도 남았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결혼하고 나면 여기는 문화공간으로 만들 거예요. 거처는 고향 마을로 옮기고 이곳은 탈바꿈하려고요. 딸 하나 아들 하나 있는데 이름이 '훈민'과 '정음'이에요. 아이들은 대학 다 졸업했고 이 집을 언젠간 떠날 테니 미리 준비하는 거죠."

철수 씨와 마주 앉은 방 책꽂이에는 아동문학 관련 자료가 빼곡하게 꽂혀있다. 아동문학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하는 문학관을 만들기 위해 자료를 오랫동안 수집해오고 있다 했다.

"나중에 리모델링을 해서 작은 전시 공간, 세미나 할 수 있는 공간도 만들고, 2층이 있으니 사람들이 모였다가 1박을 하려면 할 수 있게 2층을 정리할 거예요. 그러면서 문학인들끼리 차 한 잔 나누고 갈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구상하고 있어요."

아이들과 와글와글 뛰어다니던 젊은 선생님은 흰 머리카락이 자연스러운 나이가 됐다. 하지만 동심을 그대로 글로 내보일 수 있는 마음은 여전히 그 시절과 같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한국동심문학관은 열리는 그날, 다시 이곳을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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