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산사의 은행나무를 보았나요?

회사 앞 삼각지 공원의 은행나무 잎도 이제 거의 다 떨어져 간다. 공원 옆 도로를 따라 줄지어 서 있는 늦가을의 은행나무는 노랗다 못해 오렌지색으로 빛났다. 그러다 세찬 바람이라도 불면 그 많은 황금빛 나뭇잎이 바람을 타고 낙하했다. 마치 슬쩍, 그것도 빈틈없이 빼곡히 붙여놓은 것처럼 보이던 은행잎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는 장면은 설레이면서도 참으로 쓸쓸하다.

일하다가 창문 너머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나는 지리산 대원사 마당에 있는 은행나무를 떠올렸다. 그리고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에 있는 용문사의 은행나무도 함께 생각했다. 세상이 아무리 빨라졌다고는 하지만 용문사는 멀다.

틈이 나는 대로 대원사에라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을 실행한 것은 가을이 다 가고 겨울이 된 뒤였다. 그 사이 삼각지 공원 옆 은행나무도 회색빛 나목이 됐다. 줄지어 선 나목은 황량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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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 진양호 일주도로는 모터사이클이나 자전거로 달리기에도 좋고 자동차 드라이브 코스로도 좋다. / 조재영 기자

 

달리는 중에 찬바람이 스며들어오지 않도록 두꺼운 자켓과 팬츠로 완전무장을 하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겨울에 입는 자켓은 보통 두 겹이거나 세 겹이다. 보온과 방한뿐만 아니라 방수 기능까지 고려된 자켓은 두껍고 묵직하다. 모터사이클 커버를 벗겨 바로 옆에 있는 차 트렁크에 싣고 출발할 준비를 했다. 조금 움직였을 뿐인데 완전무장 덕분에 몸이 후끈 달아오른다.

키를 꽂고 시동을 거는데 한 템포 늦다. 배터리가 약해진 탓이다. 모터사이클도 차와 같다. 기온이 떨어지면 배터리 성능도 급격히 떨어진다. 아주 추운 야외에서 휴대전화를 쓰면 금세 배터리가 닳아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납 배터리든, 리튬이온 배터리든 낮은 기온에서 성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은 똑같다. 영하의 추위에 자동차를 야외에 며칠 동안 세워놓았다가 시동을 걸면 시동이 제대로 걸리지 않고 빌빌거리게 된다. 야외보다는 평균 기온이 높게 유지되는 지하주차장에 주차하면 배터리 기능 저하를 어느 정도 늦출 수 있다. 하지만 지하주차장이라 하더라도 운행하지 않는 기간이 길어지면 배터리 성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달 합천을 다녀온 이후로 한 번도 시동을 걸지 않고 세워두었다가 한 달 만에 시동을 걸었더니 나타나는 현상이다. 아무래도 조만간 배터리를 교체해야 할 모양이다.

진양호와 청동기문화박물관

창원시 내서읍을 지나는 5번 국도를 타고 마산 현동까지 가서 2번 국도를 타고 진주로 달린다. 날씨가 쌀쌀하지만 하늘은 맑다. 남쪽 하늘에는 한없이 가벼워 보이는 옅은 구름이 깔렸고 북쪽 하늘은 티끌 한 점 없이 깨끗하다.

진주 경상대 뒤를 돌아 사천 쪽으로 달리다가 진양호 쪽으로 꺽어들어 간다. 진양호 변 도로를 따라 여유롭게 달린다. 하얀 머리를 바람에 맡긴 갈대가 길을 따라 펼쳐져 있고 푸른 강물이 그 배경을 장식하고 있다. 천천히 달리며 깊게 숨을 들이마신다. 버프 너머에서 차고 맑은 공기가 빨려 들어온다.

진수대교를 건너 호수를 따라 달리다가 대평교를 건넌다. 대평교 왼쪽에 청동기문화박물관이 보인다.

청동기문화박물관이 자리를 잡고 있는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환호마을이 발굴된 곳이다.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옥방 유적지다. 대평리에서는 여러 차례 발굴로 400동이 넘는 움집터와 6곳의 환호, 4000㎡가 넘는 밭이 발견되었다. 환호는 마을을 동그랗게 둘러싼 도랑이다. 조선시대 성벽 둘레에 파놓은 해자와 같은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마을 둘레에 땅을 파고 물이 흐르게 함으로써 다른 부족의 침략이나 야생동물의 침입으로부터 마을을 지키고자 했던 것이다.

입장료 1000원을 내고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서 2층으로 올라가면 전시물을 관람할 수 있다. 주로 이곳 대평마을에서 살았던 선조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전시물과 영상자료 등을 볼 수 있다. 박물관 건물 밖으로 나오면 주차장 옆 강변에 청동기시대 대평마을 주민들이 어떤 집에 살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음식으로 해 먹었는지 등을 실물로 체험하게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성인 허리 깊이로 땅을 파고 그 위에 갈대로 지붕을 엮어 얹은 움집에 들어가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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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 청동기문화박물관 야외 공간에 지어놓은 고대 대평마을 주민들의 집. 안에 들어가 볼 수 있다. / 조재영 기자

 

진주 청동기문화박물관의 주인공인 대평마을 주민들은 비파형동검과 반달돌칼, 빗살무늬토기를 만들었다. 짐승을 잡아먹고 간단한 농사를 지었을 것이다. 죽으면 마을 사람들이 지어준 고인돌 아래에 뭍혔을 것이다.

어른이 된 지금도 고인돌을 볼 때마다 고개를 갸우뚱한다. 도구라고 해봐야 나무막대기 정도에 나무껍질로 만든 끈 정도가 전부였을 텐데 도대체 어떻게 해서 저 큰 돌을 끌어오고, 괴고, 들어 올렸을까 하는 것이다. 아무리 상상을 해도 도무지 답을 알 수 없다.

박물관을 나와 북쪽으로 달리면 지리산 가는 길로 연결된다.

대원사

대관교를 지나 직진하면 산청군 단성면 남사예담촌이 있는 남사삼거리를 만난다. 여기서 남사예담촌을 지나 지리산 쪽으로 달리면 덕천강을 만나고 덕천강을 따라 거슬러 오르면 시천면이 나온다. 시천면에서 직진하면 중산리로 향하고, 오른쪽으로 꺾어 밤머리재를 향하면 대원사 가는 길이다.

대원사 가는 길 59번 국도 대하사거리에서 왼쪽으로 접어들면 내원골로 들어가는 길이다. 내원골로 들어가면 내원야영장이 있고 더 들어가면 내원사가 있다. 내원골로 접어들어 내원야영장까지 갔다가 되돌아 나와 대원사로 향했다.

대원사는 지리산 계곡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은 교통수단이 발달하고 도로가 정비되어 있어서 절에 도착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불과 60~70년 전만 하더라도 이곳은 산골짜기 인적 드문 곳이었다. 그럼에도 대원사는 흥망성쇠의 우여곡절을 겪었다. 대원사의 흥망은 우리 민족사와도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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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잎이 모두 떨어진 채 햇볕을 쬐고 있는 대원사 은행나무. / 조재영 기자

 

신라시대인 548년(진흥왕 9년)에 연기조사가 창건했으며 처음 이름은 평원사였다. 평원사가 어느 시기에 문을 닫았는지는 모른다. 1000여 년 뒤인 1685년(조선 숙종 11년)에 운권선사가 흔적만 남아있는 평원사 터에 절을 세운다. 그것이 대원암이다. 1890년(고종 27년)에 혜흔선사가 무너진 암자를 크게 중건하고 방장실과 강당을 지어 대원사로 이름을 바꿨다. 대원사는 선수행 도량으로 이름이 나 전국에서 수행승들이 모여들었다. 1914년 1월 절에 불이 나 잿더미가 되었다가 1917년 대웅전을 비롯해 12동 건물이 완공된다. 그 뒤 한국전쟁을 전후해 폐허로 버려졌다가 전쟁이 끝난 뒤인 1955년부터 재건이 시작됐다. 재건은 1986년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대원사 계곡은 여름철 피서지로도 유명하다. 계곡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은행나무

대원사에는 보물 제1112호 다층석탑이 있다. 하지만 석탑이 약간 높은 곳에 있고 그곳으로 향하는 길이 가로막혀 있어 먼발치에서 상단부만 봤다. 아마도 관람객들이 참선정진하는 승려들의 공부를 방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으로 여겨졌다. 대원사에 온 이유가 다층석탑을 보기 위함이 아니라 은행나무를 보기 위함이었기 때문에 서운할 것이 없었다.

대원사 은행나무는 대문 역할을 하는 봉상루 옆에 서 있다. 햇볕 좋은 가을날 대원사에 오면 황금빛으로 물든 은행나무를 볼 수 있다. 풍채 좋고 키가 큰 나무여서 절 주변 어디에서나 이 은행나무가 보인다. 강렬한 인상 탓인지 모르지만 내가 기억하는 이 은행나무는 마치 주변까지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듯하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그래서 해마다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드는 시기에는 대원사 은행나무가 생각나고, 문득 가서 직접 보고 싶음이 간절해진다.

은행나무 하면 생각나는 나무가 한 그루 더 있다. 경기도 양평군 용문사에 있는 은행나무다. 이 나무는 우리나라에 살아있는 은행나무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나무로 추정되는 나무다. 무려 1200년이나 산 것으로 추정된다. 1200년이나 살았으니 그 규모도 어마어마하다. 2009년 스쿠터를 타고 전국 일주를 할 때 용문사에 가서 이 은행나무를 봤다. 9월이었고 부슬부슬 가랑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1200년이나 됐지만 은행나무는 청년처럼 보였다. 우람하고 높았다. 카메라에 그 모습을 담으려고 했는데 나는 자꾸 뒤로 물러나야 했다. 키가 너무 커서 한 프레임 안에 온전하게 담으려면 뒤로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한 발 두 발 뒤로 물러나다가 안 되겠다 싶어 아예 멀리 떨어진 곳까지 가서 사진을 찍었다. 나무에도 기억이 있다면 그 은행나무는 1200년 동안의 기억을 담고 있을 것이다. 먼 훗날 과학이 아주 발달하면 나무의 기억을 들여다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아마도 역사의 많은 부분을 다시 써야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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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청군 삼장면 지리산 내원골 내원사 가는 길. 모터사이클은 혼다 ST1300이다. / 조재영 기자

 

대원사 은행나무도 회사 앞 삼각지 공원 은행나무처럼 황금빛 옷을 벗고 회색빛 촘촘한 줄기를 드러낸 채 햇볕을 향해 서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삶의 무게에 치어 이리저리 떠밀리며 살고 있는 소시민을 보는 듯했다. 한 줌이라도 더 햇볕을 받고 싶어 햇볕을 향해 머리를 쳐들고 있는 내 모습을 보는 듯했다. 살짝 바람이 불었다. 잔가지가 흔들렸다. 은행나무에 황금빛 옷을 입혀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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