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옐로우 가드'가 되어주세요

조상현(31) 씨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밝고 활기찬 노란색에 가깝다. 상현 씨는 통영종합사회복지관에서 일하고 있는 사회복지사다. 인터뷰를 한 건 그가 잠시 무직 상태였을 때다. 서른한 살 상현 씨의 이력을 간략히 나열하자면 이렇다. '사회복지사-정육점 운영-무직(직장만 없었을 뿐 여러 활동을 함)-사회복지사'.

상현 씨는 지난 몇 년간 사회복지사로서 땀나도록 통영 땅을 뛰어다니며 지역민들을 만났다. 통영 강구안골목프리마켓을 한 달에 두 번 치르고, 거리에서 젬배를 두드리기도 했다. 잠깐 정육점을 운영해 주변인들을 놀라게 했다가 '옐로우가드프로젝트(이하 YGP)'라는 것을 친구들과 만들어 '학교 폭력은 환경의 문제'라는 메시지를 외치기도 한다. 그가 머릿속에 그리는 그림은 또래 청년들과 조금 다른 무언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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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상현 사회복지사. /서정인 기자

복지사가 천직이라 외치는 통영 청년

상현 씨는 통영에서 살고 있다. 그는 자신이 나고 자란 통영을 무척 좋아했다. 학창시절부터 늘 고향인 통영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기를 바랐다. 그에게 사회복지사라는 꿈이 생긴 건 어머니의 한마디 덕이 컸다.

"진짜 생뚱맞았어요. 15~16년 전 일이에요. 어머니와 차를 타고 가고 있는데 갑자기 어머니가 '니 사회복지 해볼래?' 그러셨어요. 그래서 '그게 뭔데?' 하니까 다른 사람을 돕는 거라고…. 나중에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그러셨어요."

어머니도 상현 씨에게 사회복지를 권한 나름의 계기가 있으셨다.

"어머니가 노인복지에 대한 꿈이 있으셨는데 저를 보니 저한테 잘 맞겠다고 생각하셨나 봐요. 제가 어렸을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어느 정도 우리 집에서 지내셨어요. 정신이 오락가락하시고 심하진 않았지만 치매기도 있으셨죠. 제가 할머니께 가서 거리낌 없이 놀고 얘기하는 걸 보면서 제가 사회복지를 해도 괜찮겠다고 느끼셨데요."

대학에 들어가 사회복지 공부를 하면서 더 확신이 생겼다. 또 상현 씨는 복지 일을 하면 관심 있던 분야 모두를 일에 녹여서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사회복지에 함께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운동, 사진, 영화, 드럼… 다 좋아하는데 특출나게 잘하는 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사회복지가 이것들도 써먹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느꼈어요.(웃음)"

상현 씨는 졸업 전에 취직했다.

"통영시 건강가정지원센터에 취업했어요. 통영시종합사회복지관, 건강가정지원센터,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어린이집, 가정폭력상담소 등 모두 같은 법인이에요. 그래서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1년 일을 하고, 통영시종합사회복지관으로 왔고, 지역조직사업, 지역사회 대외업무를 주로 많이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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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YGP 활동 모습. 사회복지시설을 찾아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YGP 제공

꿈으로 가는 지름길 찾아 복지관을 나왔다

상현 씨는 통영시종합사회복지관에서 3년 6개월을 일했다. 상현 씨 기억에 특히 많이 남은 사업은 2014년 5월에 시작해 지금은 통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문화행사로 자리 잡은 강구안골목프리마켓이다. 2014년 8월호 <피플파워> 강구안골목프리마켓 기사에도 상현 씨가 나왔었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 부지런히 골목을 누비던 상현 씨의 모습이 기억난다. 상현 씨에게 통영시종합사회복지관은 오랜 시간 꿈꿔온 직장이었다. 그런 곳에서 3년이 넘도록 북적북적 일을 잘하고 있던 중 그는 돌연 사직서를 냈다. 하루 만에 내린 결정이었으니 상현 씨를 아는 모든 이들에게 놀라운 일이었다. 그만두고 나서 정육점을 운영할 거라는 그의 말에 놀라움은 더 커졌다.

"이 얘기를 하려면 꿈 얘기부터 해야 하는데(웃음)…. 어머니가 던진 '사회복지'라는 걸 냉큼 받았지만, 공부하는 동안, 일하는 동안 저도 모르게 복지가 '내 일이구나'라고 점점 더 느꼈던 것 같아요. 제가 종교가 있으니까 '이게 내 사명이구나'라고도 받아들였고요. 대학생일 때 경기도 가평 쁘띠프랑스 마을에 놀러 간 적이 있어요. 너무 잘돼있더라고요. 사람도 많고 관광 물품도 팔고요. 그때 우리 어르신들이 이런 마을에서 살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버타운을 관광지로 만들면 안 되나?' 하는 발상이었다. 단순했던 발상에 통영을 빗대 생각해보니 상상은 구체적인 상현 씨의 꿈이 되었다.

"요양원이나 양로원 계신 어르신들의 일상은 '시간 죽이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잖아요. 노동력이 있으신 분들에게는 텃밭 가꾸기 같은 소일거리를 드리고 예를 들면 텃밭에서 가꾼 식재료로 만든 반찬으로 '할매밥상' 같은 식당을 운영해서 관광객을 끌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요. 마을기업으로 운영해서 자생력 있고 생동감 있는 '실버마을'을 만들면 어떨까 싶어요. 이런 생각들을 계속 끊임없이 해요."

문득 그걸 이루려면 다 제쳐두고 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땅이라고 하니 머릿속에 떠오르는 통영의 살기 좋은 동네들도 떠올랐다. 그리고 땅을 사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진짜 단순했죠.(웃음) 또 그게 다가 아니라 복지관에서 배웠던 거죠. 땅을 내가 다 가진다고 마을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을 연결해서 공동체를 만드는 게 마을 만들기라고요. 그걸 깨닫게 됐고요. 어쨌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늘 해왔던 거죠."

'실버마을' 만들기라는 꿈을 품고 지내던 중, 출근하려는 상현 씨에게 어머니는 또 예상치 못한 말을 툭 하신다. 이번에는 '니 정육점 해볼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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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YGP 활동 모습. 사회복지시설을 찾아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YGP 제공

"점포에서 정육점을 하시는 세입자분이 건강이 안 좋아서 쉬려고 하신데요. 그분께서 아들인 제가 정육점을 하겠다면 기술을 가르쳐주시겠다고 했어요. 어머니께서 하루 동안 생각할 시간을 줄 테니 저녁에 얘기하자고 하셨어요."

출근은 했지만 일이 손에 잡힐 리 없었다. 너무나 신나게 다니던 복지관이었지만 머릿속에서는 이미 자기합리화가 시작됐다.

"어쨌든 제 최종 꿈은 실버마을을 하는 거니까 복지관을 꾸준히 다니다가 노인복지 분야를 하는 게 정석 코스라고 생각했죠. 근데 그러면 제 힘보다는 집에 손을 벌려야 하는 상황이라는 고민을 해왔죠. 정육점을 하는 게 제 꿈을 위해 금전적인 것을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편해지더라고요."

복지관과 주변 사람들 반응은 '멘붕'이었다.

"제가 하나를 해도 열 개를 한 것처럼, 하나를 실수해도 열 개 실수하는 것처럼 보이는 캐릭터인가 봐요.(웃음) 또 뼛속까지 사회복지사 이런 이미지였고, 그렇게 말하고 다니기도 했어요. 지금도 너무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복지관이지만 그때는 그런 선택을 했어요."

한 달 남짓 정육점 운영에 필요한 것을 배웠다. 그리고 곧장 가게를 맡았다.

"부위별로 해체된 진공상태의 고기를 먹기 좋게 썰어서 파는 일을 했어요. 그전 사장님이 개인적인 노하우까지 성심성의껏 가르쳐 주셨어요. 저도 열심히 배웠죠. 내가 원하는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나중에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택한 거라고 마음을 다잡았죠. 어머니와 둘이서 일을 했는데 어머니께 의지할 나이도 아니었고요. 일을 하다 보니 몸이 너무 아파서 침도 맞아가며 일했죠."

상현 씨는 정육점 일을 1년 만에 그만뒀다. 수입은 예전에 비하지 못할 정도로 좋았다고 했다.

"장사 시작한 지 9개월쯤에 가게 바로 옆에 정육점이 들어왔어요. 상도덕이라고는 전혀 없었죠. 싸우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지만 해 볼 만했는데 정육점이 하나 더 들어온다는 거예요. 거기는 유통과정도 없고 정육계의 큰 업체라서…. 기분이 좋지 않았죠.(웃음) 2~3년은 더 할 각오를 했었는데 어머니가 많이 힘들어하셔서 계획을 바꿨어요. 새로 들어온다는 정육점 주인을 만나서 우리 가게로 들어오라고 했어요. 여기가 목이 더 좋지 않으냐고요. 저희 가게에 들어오겠다고 해서 일사천리로 넘겨드렸어요."

정육점을 접고 나서는 휴식이 간절했다. 그 와중에 상현 씨는 계획적으로 쉬고 싶었다고 했다. 곧 그는 프랑스로 떠났다.

"프랑스 남부 쪽 그르노블이라는 동네에 국제워크캠프기구라는 단체를 끼고 워크캠프를 다녀왔어요. 3주 정도 알코올 중독자, 노숙자, 정신질환 환자들에게 식사를 챙겨주고 샤워시설 운영을 돕고 봉사 일정 앞뒤로는 여행을 하고 돌아왔죠."

그리고 다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지 않은 두드림이었겠지만 상현 씨는 인터뷰 다음 날 그만뒀던 통영종합사회복지관에 다시 면접을 보러 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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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상현 사회복지사. /서정인 기자

즐기며 하는 캠페인 '옐로우가드프로젝트'

2012년부터 상현 씨가 복지사 일을 하면서, 정육점 일을 하면서도 꼭 해온 활동이 있다. 바로 'YGP(옐로우가드프로젝트)'다.

'청년들이 모여 만든, 학교폭력근절운동본부 YGP입니다. #자전거대장정, 밴드거리공연, 캠페인, 친구, 통영'

YGP 페이스북 페이지의 소개 글이다. 상현 씨와 '옐로우가드'들은 1년에 한 번 공식 활동을 펼친다. 첫 활동은 3일 동안 자전거로 206km를 이동하며 진행했다. 통영, 창원, 진주 세 지역에서 버스킹을 하며 준비한 기념품을 나눠주고 학교폭력 근절 서약서에 서명을 받았다. 이후 매년 다른 활동으로 프로젝트를 이어나가고 있다. 즐기면서 지치지 않게 활동한 것이 6년 동안 회비도, 회칙도 없는 모임을 지속한 비법이다. YGP의 시작은 아주 단순했다.

"배우 하정우, 공효진이 국토대장정 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 '577프로젝트'를 너무 재밌게 봤어요. 그걸 보고 친구들에게 자전거 타고 놀러 가자고 그랬죠.(웃음) 추석 때 가면 되겠다고 했더니 친구들이 가족들이 다 모여 있는데 어떻게 나가냐고 그러더라고요. 그때 한 친구가 '잘 구상해봐라' 그러는 거예요. 그 말에 꽂힌 거죠. 뭘 구상하지? 그럼 놀러 가는 김에 의미 있는 활동을 해볼까?"

2012년은 특히나 학교폭력이 이슈였다. 2011년 12월에서 2013년 1월에 걸친 시기에 세 명의 학생이 학교폭력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그 이유였다. 학교폭력 근절 캠페인에 활동 초점을 맞추고 약자를 보호하자는 뜻의 '옐로우가드 프로젝트'로 이름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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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상현 사회복지사. /서정인 기자

"처음에는 현수막 하나 만들어서 다녀오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자려고 누웠는데 생각을 하다 보니 잠이 안 와서 새벽 4시에 잤어요. 일단 악기를 다루는 친구, 노래를 잘하는 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거리 공연을 하기로 했어요. '학교 폭력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의 문제'라는 메시지도 전달하고요. 이후로 대단한 활동은 아니지만 꾸준히 해오고 있어요. 정육점 할 때는 너무 바빠서 못 할 뻔했는데 친구가 술을 먹고 전화를 하더라고요.(웃음) '올해는 안 할 거가?' 그러는데 너무 힘이 되더라고요. 일정이 빠듯했지만 프로그램 준비를 해서 복지시설에 찾아가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죠."

아직 YGP의 정체성이 약하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상현 씨는 그 부분을 고민하는 듯 보였지만 그게 장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YGP 활동에 뜻을 함께하는 이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활동을 돕기도 한다.

"친구들이 다 직장이 있어서 자주 모이지는 못하지만 통영의 젊은 청년들이 '으샤 으샤'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그냥 재밌고 좋아서 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좋게 보고 도와주시는 분들이 있어요. 정육 유통을 하는 윤요섭이라는 친구가 기부를 해주고 고기도 줘서 육아원에서 크리스마스 파티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됐고요. 꽃꽂이 업체 '오브(Aube)'에서는 크리스마스트리를 기꺼이 기증해주시기도 했어요. 포토그래퍼이신 분은 사진 찍어주시고 직접 만든 디저트를 주시기도 하고요. 너무 감사하죠. 아직 고민 중인데 내년에는 학교랑 연계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학교폭력 근절 활동을 해보고 싶어요."

상현 씨는 "복지관에 재입사를 하게 된다면…"으로 마지막 말문을 열었다.

"이것도 생각해보고 있는 일이에요. 통영에서 재개발되지 않은 유일한 주공아파트가 봉평동에 있어요. 재개발을 놓고 한참 동안 말이 많다가 무산됐거든요. 몇 년 전에 거기서 어르신 한 분이 돌아가신 지 한 달 만에 발견됐어요. 거기가 정말 복지 사각지대라는 생각이 들어요. 1인 세대도 많고요. 그곳을 제대로 챙기려면 일단 제가 거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웃음) 그럴 각오도 돼 있어요. 찾아보니까 월세 한 10만 원 정도면 되더라고요. 복지사로서 방문해서 뭘 해주는 게 아니라 그곳 주민으로서 다가가서 주민들이 원하는 걸 듣고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최근에 또 생각하는 게 다른 분야와 협업을 하는 거예요. 커피는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가지고 좋아하잖아요. 통영 카페 사장님들이 열려있는 사고를 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커피박람회를 방자한 복지박람회를 하는 거죠.(웃음) 주는 커피박람회지만 거기에 자연스럽게 복지 캠페인을 더하거나 누군가를 돕는 활동을 함께 하는 거죠. 복지박람회는 거의 그들만의 리그예요. 복지 일하는 사람 아니면 그 관계자들이 오죠. 편안한 장에서 사람들은 커피 한 잔 먹으면서 구경하고 현장에서는 캠페인도 해서 복지에 관심 없던 사람들도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런 장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이걸 만약 한다면 통영에 있는 카페는 다 돌아다니겠다는 각오는 돼있어요."

인터뷰를 한 다음날 상현 씨에게서 면접에 합격했다는 기분 좋은 연락을 받았다. 사회복지사로서 첫 출근을 하던 때만큼 설레고 있을 것이다. 통영의 '옐로우가드', 상현 씨가 펼칠 건강한 활동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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