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개헌할 때 아니다, 선거제도 개선 필요한 시점"

유신으로 휴교령이 내렸을 때 이화여대를 다녔다. 학생운동에도 관여했고, 독서모임에도 참여했다. 하지만 스스로 운동보다는 교육에 소질이 있음을 느꼈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에서 논문 쓰려고 했더니 5·18로 다시 휴교령이 내렸고, 논문 쓰려고 어쩌다 학교에 가보면 교정에 꿩이 노닐고 있더라고 했다. 주요 3법인 헌법, 민법, 형법을 전공하는 여교수가 없던 시절, 지도교수는 그러지 않기를 바랐지만 스스로 헌법을 전공했다. 그렇게 1981년 경상대학교로 부임했다. 이후 민주화교수협의회에도 관여했지만, 아이들 잘 가르치는 게 가장 중요한 소임이라고 보고 강의에 최선을 다하는 교수로 알려지기도 했다. 정부와 경남도의 각종 위원회에 참여해 사회봉사도 열심히 했다. 곽상진(62) 경상대학교 법대 교수 이야기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벌어졌을 때 개헌에 대한 헌법학자의 견해를 듣고 싶다고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나는 개헌에 반대합니다"는 한마디로 거절했다. 그렇지만 지역에 있는 자산인 전문가의 견해를 독자에게 소개하는 것이 기자로서의 사명이라는 생각에 끈질기게 설득했고, 드디어 12월 12일 경상대 연구실에서 곽 교수를 만날 수 있었다. 넉넉잡고 1시간 반이면 끝나리라 예상했지만 3시간 동안 혼이 났다. "헌법에 대해 뭘 알지도 못하면서 광고 카피처럼 '제왕적 대통령', '의원내각제', '개헌' 이런 말을 입에 올리지 마라"는 것이었다.

아버지 박정희의 유신과 딸 박근혜의 국정농단. 왜 우리 국민이 2대에 걸쳐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느냐는 그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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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상진 경상대학교 법대 교수. /정성인 기자

국가 운영이 아니라 국민을 '통치'하려 한 박근혜 대통령

Q. 두 달 넘게 끌어온 국민 촛불의 힘이 결국 대통령 탄핵 가결을 이끌어냈습니다. 앞으로 남은 과제도 많겠지만, 우선 지난 과정을 정리해보자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큰 줄기로 하면 3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어요. 하나는 비선 실세라는 최순실의 국정개입이 이 정도였나 하는 것이고요, 다음으로는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잘못을 부인했다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국민주권 국가가 아니라 군주제 국가에 살고 있었다는 것이 확인됐다는 점입니다."

Q.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우선 최순실 국정개입은요.

"최순실에 대해서는 예전 정윤회 문건사건 때 잠시 이름이 언급되기도 했고, 최태민 목사 딸이라는 정도는 알려졌었잖아요. 하지만 그 뿌리가 이렇게 깊이 박혀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죠.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이라는 것도 이게 대통령 비서실 소속인지 최순실 수하인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잖습니까. 청와대 비서실 정원이 443명이에요. 다 채우지는 않았지만 440명 가까이 일하고 있습니다. 또 청와대에는 비서실, 경호실이 있습니다. 그밖에 국가안보실도 있죠. 이게 뭡니까. 안보 수석이 따로 있죠. 또 국가안전보장회의도 있습니다. 다들 뭐를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이중삼중으로 조직돼 대통령을 보좌하고 있는데, 이게 국가 운영이 아니라 국민을 '통치'하는데, 그것도 비선 실세가 국정을 농단하는 데 쓰였다는 것 아닙니까."

Q. 박근혜 대통령의 잘못은?

"박근혜는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자기 잘못은 주변 관리 잘못했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고 얘기하고 있고, 헌재를 상대로 싸우겠다는 것부터가 이해할 수 없는 태도입니다. 아버지 때부터 배운 게 뭐겠습니까. 흔히 '공주'라고 하는데 딱 그 정도 인식에 머물러 있는 거죠. 항간에 그런 얘기도 있었잖아요. '청와대는 내 집이고, 국민은 내 백성이고, 대통령은 물려받은 가업'이라고요. 도저히 민주공화국, 국민주권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인식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는 국민을 위해 뭔가를 했다는 착각을 하고 있는 거죠."

Q. 국민주권 말살?

"국정원 문건이 최순실에게까지 흘러들었다는 국회 청문회 증언도 있었고, 김영환 총무수석 비망록과 알려진 녹음파일을 보자면 이건 국민을 철저하게 다스려질 대상으로만 보고 있었다는 게 드러납니다. 이건 중요한데, 이 사람들은 군주 시대를 살았던 겁니다. 이명박 정권부터 해서 보수정권 10년 동안 그랬다고 봅니다. 세월호로 국민이 죽어가도 그만이고, 그저 말썽 일으키지 않게 관리해야 할 대상이 국민이었던 거죠. 프랑스 혁명이 왜 일어났겠어요? 루이 16세가 그 화려한 궁궐에서 관리하느라 바빠서는 시민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있다가 세금 거두려고 사람들을 모았더니 그 자리에서 국민 인권선언을 했다는 것 아닙니까. 이명박 정권 때부터 '불통'이라는 말이 있었잖습니까. 자기들이 다스리면 되는 건데 뭘 듣느냐는 의식이 표면으로 나타난 게 차벽이라고 봅니다. 이건 유신의 연장이에요. 유신헌법이 군주헌법이거든요."

유신 종말, 뒷마무리 단계

Q. 국회 탄핵가결 두고 이제 시작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의미를 부여한다면?

"유신이 이제 끝났나? 아니, 유신의 종말은 좀 더 있어야 하고 종말의 서곡이 울린 거라고 봅니다. 헌법재판소 재판 결과가 나와야 유신이 종말 된다고 봅니다. 그야말로 아버지 때 군주를 만들어서 했고 신군부 때도 역시 국민주권이 없었어요. 선거를 전부 불평등 간접선거로 했잖아요. 그래서 유신헌법 연장선이었고 군부 쿠데타로 권위주의 시대를 살았던 겁니다. 87년 6월 항쟁의 성과로 6공화국이 들어섰고 정권교체가 되면서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정도 빼고는 나머지는 거의 유신의 연장이었죠. 유신헌법 제정한 김기춘이 다시 들어와 안기부 활용해서 선거 개입했고, 최구식 디도스 때문에 팽 당해서 저리된 거잖아요. 그게 그렇게 끈질긴 거예요. 프랑스 혁명도 단두대로 금방 끝날 것 같았는데 나중에 나폴레옹 조카인 나폴레옹 3세가 왕정복고를 했잖아요. 그게 1848년이에요. 1789년 혁명이 시작된 이래 거의 60년 후에 다시 왕정복고가 이뤄진 겁니다. 그렇게 끈질겨요. 다른 하나는 국민주권이 무엇인지 국회의원들이 깨달았다는 것이 드러났다는 점입니다. 노무현 탄핵 때 학습효과가 있어서 새누리당 의원까지 포함해 234명이 찬성표를 던졌잖아요. 2표 기권도 의미가 있다고 봐요. 아마 7명인가는 셀카 찍고 나서 옆에다가 다시 표기해 무효가 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 어쨌든 그것도 남한테 보여주려고 했다는 것 자체가 기회를 본다는 것 아니에요? 다수당이 가면은 국회의원은 무작정 따라갈 거라는 오만이 무너진 거죠. 국민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아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거죠. 그래서 가결이 가능했던 거예요."

Q. 1987년 6월 항쟁과 비교하는 의견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교수님 견해는?

"6월 항쟁의 성과물이 지금의 헌법입니다. 당시와 비교한다면 6월 항쟁은 군부 쿠데타 세력을 헌법으로 제거한 것입니다. 5공화국이나 3공화국 헌법은 국민주권주의를 천명해놓고도 대통령제도 아니고 직선제도 아니고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되지 않도록 해뒀던 것이기 때문에 독재정권이었습니다. 전혀 민주적인 헌법이 아니었어요. 그걸 현재 헌법으로 바꿔 놨는데 그게 수명이 다했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참 답답한 일입니다. 6월 항쟁은 형식적으로 군사정권을 없앤 겁니다. 그때 없앤 줄 알았어요. 하지만 안 없어져서 지금 끝나려는 것입니다. 유신이 지금 끝나려 하는 거예요. 끈질기게 내려오다가 뒷마무리가 되고 있는 거죠. 87년 하고는 다릅니다. 이제는 내실을 채워야 해요. 87년에는 형식적으로 군사정권을 종말 지은 거고. 문민정치를 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헌법을 가동하는 방법을 잘 몰랐던 거죠. 우리가. 헌법을 제대로 운용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 거죠."

Q. 일부에서는 87년 6월 항쟁을 두고 '죽 쒀서 개줬다'는 악평까지도 합니다.

"그건 아니죠. 정권교체를 처음 해봤잖아요. 주고받고. 호주제도도 헌법재판소 구성원이 달라지니까 없어졌고. 정말 시민혁명이죠. 가족제도의 변화가 온 거잖아요. 여성을 가족제도에 묶어놓는다고 시대가 어떤 시댄데 묶여있겠습니까. 하지만 제도적으로 여성을 가족의 틀에서 풀어줬다는 의미가 커요. 그게 가능했던 게 헌법재판소가 독립적으로 설치됐기 때문이고, 그 헌법재판소가 6공화국 헌법의 특징 중 하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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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상진 경상대학교 법대 교수. /정성인 기자

대통령 탄핵, 헌법재판소의 손에

Q. 어쨌거나 대통령 탄핵은 헌법재판소에서 최종 결정됩니다. 국회에서는 압도적으로 가결됐지만, 헌재 재판관 성향을 볼 때 인용을 낙관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헌재 재판관은 법률가이기 때문에 일단 믿고 싶어요. 국회 가결로 헌재로 간 여러 이유 중 한 꼭지만 가지고도 충분히 탄핵 인용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비선 실세를 두고 있었다는 것만 해도 그건 국기 문란이에요. 그다음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재난을 극복하고 생명을 구해야 하는 대통령이 하지 않고 세월호 7시간도 밝히지 않고 있다는 것도 그래요, 생명 구하는 데는 관심 없었다는 거잖아요. 검찰 수사 결과인 최순실 공소장에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로서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하고 행정부 수반으로서 행정부를 통할하고 지휘·감독하는 지위에서 또한 경제 성장과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경제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대통령'이라고 했답니다. 이건 헌법에 나오는 대통령의 의무입니다. 이걸 어겼다는 것 말고 더 확실한 탄핵 사유가 있을까요? 경제가 이렇게 표류하고, 세월호로 음식 장사 못 해 모든 경제가 힘들어지고 메르스로 못해, 얼마나 경제가 파탄에 빠졌습니까. 여러 가지 필요 없어요. 이거는 뇌물죄 이런 거까지 필요 없어요. 대통령이 일단 돈을, 세금이 아닌 돈을 내라고 재벌 총수 불러서 말하고 또 확인했다는 얘기며 지시받아 했다는 그 한마디로 끝나는 거예요. 포괄적으로 대통령이 해서는 안 되는 거죠. 그것이 아무리 좋은 일에 쓰였다고 하더라도. 하물며 최순실이 그거를 80%를 딴 데다가 쓰려고 했다면서요. 증거가 있다면서요. 그거는 더는 아무리 대통령이 뽑아준 헌법재판관이라 하더라도 그걸 부인할 수는 없어요. 법관이기 때문에 법에 의해 말해야 하는 겁니다. 대통령을 탄핵하라는 국민의 촛불 때문에 한다? 그것도 말이 안 되는 겁니다. 법관들은, 법을 아는 사람은 증거가 다 있는데 시간 끌려는 목적이 아닌 다음에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예요. 법관들은 자기를 대통령이 헌법재판관으로 뽑았다고 하더라도 찬성할 양심은 있다고 보기 때문에 탄핵 가결을 나는 법관들의 양심에 문제가 있지 않으면 인용된다고 봐요. 정상적인 법조인이라면 그중에 어느 하나만 걸려도 인용이거든요. 이렇게 증거가 명확한 데 대하여 재판관들이 탄핵 인용을 안 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일말의 의구심이 없는 건 아니에요. 재판관들의 선출 분포도를 보면 그래요. 대통령 3명 대법원장 추천 3명이 마음에 걸리는 거죠. 그럼에도 그걸 아니라고 할 도리는 없다고 봐요. 이번에 국회에서 가결된 것처럼 정상적인 국회의원이라면 가결이 안 될 수가 없다고 한 것처럼 재판관의 양심을 믿어야겠죠."

Q. 헌법재판소라는 기구가 있는 나라는 대체로 법리적인 판단보다는 정치적인 판단을 하는 조직으로 규정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얘기도 할 수가 있는데요, 헌재 재판하는 방식은 일반 형사재판 하는 것하고는 달라요. 프랑스나 우리나라 1공화국 같은 경우 탄핵위원회라는 게 있었어요. 거기에는 법관이 아닌 국회의원이 들어가요.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 전원 법관으로 구성됐어요. 교수나 헌법학자는 안 들어갑니다. 사법적 판단에 따른 헌법재판이에요. 정치적이라 하더라도 근거에 의해 해야지요. 지난번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를 짚어보면 '잘못은 했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중대해서 대통령직에서 몰아낼 만 한 일이냐'는 판단이었잖습니까. 대통령이 어떤 자리입니까. 전 국민이 하루 날짜를 빼고 그 많은 예산을 들여서, 그 과정은 어마어마한 자산이고 시간이고 에너지잖아요. 그것을 이런 거 가지고 잘못됐다고 할 수 있느냐. 그게 정치적인 거죠. 그러니까 법적으로 따져놓고 따진 근거에 기준해 과연 이것이 대통령을 내려보내야 할 만한가를 따지는 것이죠. 이게 합리적인 거죠. 법으로 잘못했다고 해서 무조건 다 내려야 하겠어요? 그것도 장관도 아니고요. 헌법이 정치적인 법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고려를 안 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재판입니다. 사법적 판단을 먼저하고, 위헌이나 위법이 있었다는 판단을 하고도, 이게 직에서 파면할 정도로 중차대한 것이냐 까지를 고려하는 겁니다. 형사재판은 처벌하기 위한 것이지만 탄핵심판은 파면하려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다른 겁니다."

Q. 어쨌거나 헌재는 탄핵을 최종 결정하게 됩니다. 인용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긴 합니다만, 헌재 결정 때까지 모든 것을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 아닙니까? 앞으로 정국 전망을 어떻게 하십니까?

"지금은 헌재 탄핵 결정을 지켜보면서 정국 안정시키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해요. 그리고 여야가 합의체로, 대통령이 없으니까 당·정·청 협의는 없는 거고, 여야가 합의해야 합니다. 황교안 총리가 적극적인 행위를 못한다는 게 조금만 잘못하면 자기도 탄핵 대상이거든요. 할 수 없으니까 못하는 겁니다. 부총리까지도 지금 없는 시기고, 사회부총리가 있긴 하지만, 과거 안기부 선거 관여도 있고 문고리 3인방도 있고 그것도 명확한 얘기거든요. 다 알면서 보좌 못 했던 것이고, 그것(총리 탄핵)도 할 수 있는 거라 최소한 자기가 탄핵 되지 않는 선에서, 그 대신 촘촘히 해나가야 헤요, 야당도 긴장하고 바로잡아 가야 하는 거죠. 두세 달 사이에는 다른 것에 마음을 못 쏟아요."

Q. 이번에도 87년처럼 '미완의 혁명'이 될 거라는 우려도 있습니다만.

"이번에는 되게 해야죠. 헌법재판소를 지켜봐야죠. 가동해 놨으니까요. 지켜보면서 야당에서 정신 차려야 해요. 야당이 대통령 선거 위주로 나가지 말고 차분하게 국정 챙기고 꼼꼼하게 해서 나가야죠. 지금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면 안 된다고 봐요. 솔직히 말해서 총리 탄핵까지 나오면 안 돼요. 순서 잡아서 하자고요. 잘못하면 가보지도 못하고 탄핵 가기 전에 응집력이 떨어지게 되면 보수진영에서 바로 반격합니다. 우선 사드 문제가 있죠, 군사정보교류협정 있죠, 미국하고 중국하고 이것만 해도 경제랑 해서 굉장히 가기 버거워요. 이거는 시간을 다투는 문제고, 중국하고 우리가 모든 경제문제에 걸려 있어서 하나도 못 나가고 있거든요. 이 문제만 좀 하고 나머지는 뒷선에서 나오지 말아야 해요. 응집력을 떨어뜨리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고, 적폐를 다 끄집어내서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좀 정략적으로 나가야 해요. 80년에 그러다가 계엄 맞았잖아요. 5·18 때 빌미를 줘서 비상계엄 내렸던 것이고 지금도 호시탐탐 보수세력은 노리고 있어요. 국민 사이에 분열 일어나면 모든 게 끝이에요. 대통령이 바라는 바를 성취시켜 줄 수는 없어요. 현재 가장 중요한 문제인 사드 배치, 군사정보협정, 위안부 문제, 세월호, 경제살리기 이것만 해도 엄청나게 많아요. 사실 사드만 가지고도 분열할 수 있어요. 공통분모만 최소한으로 뽑아서 응집력 깨지 않아야 돼요. 그게 정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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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상진 경상대학교 법대 교수. /정성인 기자

"지금은 개헌 얘기할 때 아냐"

Q. 박근혜는 최순실 국정농단을 덮으려고 뜬금없는 개헌론을 내놨지만, 사실 우리 사회에서 개헌 주장은 꽤 뿌리가 깊습니다. 이번에는 '제왕적 대통령'론이 제기되고 있습니다만, 10여 년 전 노무현 대통령도 대통령과 국회 임기를 맞추자는 뜻에서 '원포인트 개헌론'을 제기하기도 했죠. 개헌에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것으로 압니다만, 전반적인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개헌을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우리 헌법은 누더기가 돼 있어요. 손볼 게 한둘이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은 개헌을 얘기할 때가 아니라는 게 내 정확한 생각입니다. 마치 '너구리 한 마리 몰고 가세요'라거나 '찰랑찰랑 윤기 있는 머리' 뭐 이런 식의 광고 카피처럼 '제왕적 대통령' 어쩌고 하면서 개헌 필요성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니에요. 우리 헌법이 넝마조각 같은 구석이 없는 건 아닙니다만, 국민주권주의 원칙을 분명히 하고 있고, 그대로만 운영해도 충분히 국가를 잘 운영할 수 있어요. 개헌은 정치적 이익을 취하려는 부정한 목적을 배제하고, 정말 장기적인 안목으로 시대 변화를 반영해서 제대로 해야 합니다."

Q. '제왕적 대통령'뿐만 아니라 87년 개헌 당시 급하게 만들다 보니 미흡한 부분이 많다거나, 5년 단임제의 폐해, 87년 개헌 후 30년 가까이 지나면서 시대가 변했다는 등 당장 시급하게 손봐야 할 부분이 많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급하게 만들다 보니 미흡한 부분이 많다는 주장에는 일부 동의합니다. 내가 봐도 손봐야 할 게 한둘이 아니기도 합니다. 하지만 왜 제왕적 대통령이 문제입니까? 우리 헌법에는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규정돼 있지 않아요. 3권분립이 명확한데도 그걸 제대로 운영 안 했다는 게 더 큰 문제예요. 그 원인은 국회에 있습니다. 아니 무슨, 여당 국회의원이 청와대 2중대도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국회가 한 것을 봐요. 동영상 다 있잖아요. 돌려보면 금방 나옵니다. 청와대에서 뭐가 나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친위병처럼 행동했잖습니까. 5년 단임제라서 문제다? 4년 중임으로 하면 해결될까요? 4년 한 번밖에 못 할 수도 있어요. 그에 비하면 1년 더하는 5년 단임제가 훨씬 더 소신 있는 정책을 펼칠 수 있죠. 문제는 헌법에 규정돼 있는 대로 시스템이 굴러가고, 매뉴얼에 따라 국가가 운영된다면 지금 드러난 대부분 문제는 해결됩니다."

Q. 사람들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있습니다. 대통령제로 대한민국이 굴러온 게 정부 수립 후 60여 년 중 60년이 넘습니다. 잠시 의원내각제를 했던 적은 있지만 대부분 대통령제였죠. 그동안 10명이 넘는 대통령이 있었지만, 끝이 좋았던 경우는 없습니다. 한 번쯤은 바꿔보는 의미도 있지 않을까요?

"누가 그래요? 우리나라는 제대로 된 대통령제를 시행한 것도 얼마 안 됩니다. 제헌 헌법은 아예 독재하려고 맘먹고 만든 헌법이었습니다. 국회에서 대통령을 뽑았잖습니까. 이승만 대통령이 재선하려고 보니 국회에서 소수당으로 전락했고, 재선이 불가능하다 싶으니 직선으로 바꿨잖습니까. 그래서 3·15, 4·19 났던 거고요. 유신헌법도 마찬가지고요. 국무총리제도도 그래요. 대통령제에 무슨 국회 동의를 받는 총리입니까. 이건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어정쩡한 동거일 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게 의원내각제를 하려면 정당이 튼튼하게 뿌리내리고 있어야 하고 직업공무원제도 자리 잡아야 합니다. 근래 우리나라 정당을 보세요. 2~3년을 못 가는 정당이 허다하잖습니까. 정당이 전국적 조직으로 꽉 틀이 잡혀있어야 수시로 국회 해산되더라도 총선을 제대로 치러내죠. 이원집정부제도 의원내각제를 도입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의원내각제를 할 기본 토대도 없습니다."

Q. 지금이 개헌을 얘기하기에는 적기가 아니라는 말씀이죠?

"분명히 할 것은 개헌하기에는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헌재에서 대통령 탄핵심판에 최대 180일이 걸립니다. 만약 탄핵이 인용된다면 그로부터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러야 하는데, 이 60일은 사실 대선을 치르기에도 빠듯합니다. 그리고 헌법이 확정돼야 대통령 선거를 어떻게 할 것인지도 결정되므로 6개월 안에 개헌을 완료해야 하는데 이건 너무 촉박해 또다시 헌법을 누더기로 만들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촉박하게 개헌을 하려는 의도가 불순합니다. 이른바 '대권'을 잡을 수 없어 보이는 세력들이 힘을 합쳐 권력을 나눠 갖겠다는 게 개헌론의 근저에 깔려있습니다. 개헌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정치적 이해관계를 배제하고 정말 백년대계를 내다보고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충분한 시간을 두고 정말 제대로 검토해서 해야죠. 이미 헌법학회에서 연구 다 해서 결과 내놓았어요. 몇 가지 안을 제시하면서 각각의 장단점도 다 분석해뒀고요. 정의화 국회의장 할 때 국회 개헌특위에서도 대략의 초안은 만들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바탕에 두고 차근차근 검토해나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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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상진 경상대학교 법대 교수. /정성인 기자

개헌보다 선거제도 개선 필요

Q. 지금이 개헌에 적기가 아니라는 말씀은 알겠는데, 현실정치로 들어와서 보면 대권 주자들 가운데 문재인 의원이나 이재명 시장 정도만 개헌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개헌에 반대한다는 게 자칫 이들을 지지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 얘기는 할 필요도 없어요. 어차피 정치인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주장하는 겁니다. 누구 편이다는 생각이 아니라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제대로 생각해봐요. 지금 개헌할 계제인가. 그럼 개헌이 제대로 되겠습니까? 다 땜질식이 되는 거죠. 헌법이 땜질입니까? 여태까지 쿠데타 몇 번 일으키고 그때마다 헌법 뜯어고친 것도 창피해 죽겠는데 그거는 아니죠. 나는 그 얘기는 하고 싶어요. 광고 카피처럼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떠들지만, 과연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입니까?"

Q. 말이 나온 김에 '제왕적 대통령'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죠.

"우리나라 헌법이 '제왕적 대통령'으로 돼 있다는 것은 일부 맞는 주장이기는 합니다. 이를테면 우리 헌법 66조는 대통령에 대해 규정하고 있어요. 1항은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로 돼 있어요. 하지만 40조 국회 조항은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로, 101조 1항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로 돼 있습니다. 3권분립을 규정한 것인데요, 66조 1항은 다른 국가기관 규정처럼 1항에 지금의 3항인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한다'로 돼야 하는 거죠. 그리고 실제로 대부분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하지만 '원수'라고 명기해두지는 않아요. 이러니 대통령이 4부 요인 초청 간담회 같은 것도 위에 있는 대통령이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재소장, 국무총리를 함께 부르고 있잖아요. 국무총리가 그 자리에 참석함으로써 4부 모두 대통령 아래 지위로 되는 겁니다. 그 밖에도 66조에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영토의 보전·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 이런 규정도 손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통령 취임 선서 때 다 하는 말이잖아요. 이게 헌법 규정이 없다고 대통령이 하지 않아도 될 일입니까? 정말 문제는 이렇게 규정돼 있을지라도 헌법운용을 제대로 하면 됩니다. 새누리당 국회의원들 행태를 보면 다 드러나잖아요. 마치 청와대 2중대를 자임한 것 같잖아요. 유승민 의원처럼 국회의원으로서 헌법상 권리를 행사한다면 대통령이 제왕적 권한 못 휘두릅니다. 대통령 비서실이 그렇게 방대할 필요가 뭐 있나요? 국무위원인 장관들 불러모아 논의하면 되는 거죠. 국정원도 국내 정치 사찰 못 하게 하고요, 국정원을 대통령이 주물럭거리니 공작정치나 나오고 그러잖아요. 채동욱 검찰총장 사생활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검찰이 대통령 말을 안 들으니 그리된 것 아닙니까. 검찰은 법에 따라 하면 되는 거죠. 지금 헌법이 여러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해요. 국민주권주의를 무시했기에 이 사달이 난 거죠. 국민주권주의 자체가 문제는 아니잖아요."

Q.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지금 개헌보다 더 어려운 게 선거제도 고치는 겁니다. 영남당 호남당 이렇게 나뉘어 있고, 영남이 의석수가 많으니 중대선거구제 하자고 해도 새누리당에서 반대하는 겁니다. 중대선거구로 바꿔야 국회의원이 국가를 위해 일합니다. 아니 보세요. 탄핵정국이라는 이 난리통에도 지역구에 국비 예산 얼마 따왔느니 이런 자랑이나 하고 있잖아요. 소선거구제에서는 살아남으려면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쪽지예산이라도 좀 따오려면 정부와 각을 세우기도 어렵고요. 어쨌거나 이번 일로 우리가 엄청나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헌법 개정에 매달릴 여유가 없습니다. 그보다는 대통령이 제왕적 권한을 휘두르지 못하게 법률로, 시스템과 매뉴얼을 갖춰나가는 데 힘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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