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글쓰기큰잔치 심사평

단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한 해를 보냈습니다. 온갖 부정부패의 '몸통'인 박근혜 씨와 그 아래 거머리처럼 빌붙어 살아가는 비열한 패거리를 몰아내느라 서울에 몇 번 다녀왔더니, 한해가 거의 다 가버렸습니다. 학교에서 가장 필요 없는 그네는 '박그네!', 불안하고 위험해서 당장 치워야 할 그네도 '박그네!'라는 초등학생들 말을 들으면 '씨'라고 붙이는 것도 민망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이렇게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도 아이들이 부모 손을 잡고 거리에 나와 박근혜 구속과 민주주의를 외치는 모습을 보니 살맛이 절로 납니다. 무엇보다 어떤 시련에도 절망하지 않고 꿋꿋하게 잘 자라주어 참 기쁩니다.

제17회 경남어린이글쓰기큰잔치에 보내온 맑고 진솔한 아이들이 쓴 글을 읽으면서, 어른들이 보여주는 삶이 너무 엉망진창이라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들 글에서도 이런 안타까운 현실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어,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얼른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어른'이란 이름이 하도 부끄러워서 말입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응모한 글은 적으나, 소리 높여 떠벌리지 않고 자기 생각을 자연스럽고 따뜻하게 나타낸 글이 많았습니다. 경남어린이글쓰기큰잔치 행사에 참여하고자 억지로 쓴 글이 거의 없어, 아이들이 진솔하고 감동을 주는 글을 쓴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지난해는 자연을 글감으로 쓴 글이 많았는데, 올해는 살아가는 이야기를 쓴 글이 많았습니다. 그만큼 아이들이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까닭이겠지요.

'낙엽이 춤을 추며 떨어진 날 부러진 내 안경'은 "마트에서 세일하면 좋아하시는 엄마"의 마음과 친구인 승엽이가 안경을 치는 바람에 안경이 부러졌는데도 "친구끼리 놀다가 그런 거는 괜찮다"고 말하는 엄마의 '착한 마음'을 솔직하게 잘 나타낸 글입니다.

'내가 아플 때'는 아들이든 딸이든 형이든 동생이든 누구나 엄마한테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을 나타낸 글입니다. 그래서 "가끔 내가 아플 때 / 빨리 낫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고 합니다. 몸이 아프면 엄마의 사랑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으니까요.

'불쌍한 우리 쌤'은 개구쟁이 남자 애들 때문에 목소리가 쉬어버린 선생님을 걱정하는 마음을 잘 나타낸 글입니다 "불쌍한 우리 쌤 / 남자 애들 선생님 맘 모른다"고.

'심장이 콩닥콩닥'은 "왜 어린이들이 솔직한 느낌을 말하면 어른들은 항상 혼내고 야단을 치는지 궁금해서" 쓴 편지입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세하게 물어보지도 않고, 함부로 화를 내고 벌을 주는 엄마한테 정중하게 쓴 글입니다. "엄마가 화를 내기 전에 먼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왜 그랬는지 솔직한 생각과 느낌을 말할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고요. 정말 살아 있는 글이구나 싶습니다.

'자전거 수리'는 차가 많이 다니는 곳이라 자전거를 타면 다칠까 봐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과 자전거를 타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 잘 나타난 글입니다. "오늘 머리 깎으러 가면서 자전거 수리방에 갔다. 아저씨가 고치는 동안 새 자전거를 구경했는데 너무 사고 싶었다"는 말이 남의 말 같지 않습니다.

'아빠와 나'는 "엄마 없을 때 / 언제나 통하는 아빠와 나"의 관계를 따뜻하고 자세하게 잘 나타낸 글입니다.

'나는 4학년'은 누구나 한두 번쯤 이런 경험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픈 데도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기억이 있지요. 꼭 스케이트가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나왔"지만 태연한 척할 수밖에 없는 그 마음을 잘 나타낸 글입니다.

'목욕탕'은 읽는 내내 목욕탕 풍경이 그려졌습니다. 아빠와 아들이 목욕탕에 다정스럽게 앉아서 등을 밀어주는 풍경을 그려보니 어느새 가슴이 따뜻해집니다. 아빠가 목욕탕에 가자고 할 때는 "싫어"라는 말부터 먼저 튀어나오던 아이의 마음이 조금씩 변하여, "이번 주에 아빠가 내려오시면 슬쩍 옆에 가서 등을 긁어주며 내가 먼저 목욕탕에 가자고 말을 해 보아야겠다"고 합니다. 그 말이 나오기까지 아버지와 주고받았던 정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아이들은 놀고자 태어났습니다. 아이들이 놀아야 마을이 살고 도시가 살고 나라가 삽니다. 아이들은 시멘트로 지은 딱딱한 학교에서 경쟁에 시달리고자 태어난 게 아니지 않습니까? 내년에는 비뚤어진 어른들 때문에 아이들이 거리에 나가 촛불을 들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어야겠습니다. 한 가지 부탁 말씀은 아이고 어른이고 스스로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시를 하루에 한 편씩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람과 자연을 사랑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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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비틀거리는 시대에서도 아이들을 잘 길러주신 부모님과 선생님들께 머리 숙여 인사드립니다. 정성스럽게 글을 써서 보내준 어린이들에게도 인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심사위원장 서정홍(농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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