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 서비스에서 2000만 원 관세 환급받은 기업도 있다

작년 말부터 일반인들도 체감하기 시작한 경제 침체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최대 고비, 2008년 세계 금융위기보다 심각하다는 이야기는 이제 식상한 평가가 돼버렸다. 굵직한 조선소들의 구조조정이 잇따르고 조선업이 밀집한 경남에서 한국 전체의 취업률·실업률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조선 '빅3'는 어떻게든 살았지만 납품업체인 중소기업의 생존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비단 조선업종만 국한된 일도 아니다. 대한민국 경제의 희망인 중소기업이 흔들리고 있다.

경제 불확실성으로 불안한 중소기업의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할 지방 중기청장의 역할이 크다. 2015년 2월 취임한 엄진엽(50) 경남지방중소기업청장은 지난 2년간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하루 한 명 이상 만나며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지방 중소기업청은 서비스 기관"이라며 낮은 자세를 강조하는 엄 청장은 취임 초기 '기업 스며들기' 공약(?)은 아주 잘 지킨 셈이다. 두 시간 인터뷰 동안 그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은 '소통'이다. 그다음이 '현장', '협업'이다.

취임 이후 '첫 만남 서비스' 구축·활성화

중소기업청은 우리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중소·중견기업과 소상공인을 육성·지원하는 기관이다. 1996년에 산업통상자원부 외청으로 개청해 올해 20주년을 맞았다. 중소기업 경쟁력을 높이고 소상공인의 자생력 제고를 위해 창업, 자금, 인력, 기술개발, 수출, 판로, 전통시장 현대화 등 다양한 분야를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정책과 지원 예산이 난립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정작 자신들에게 필요한 사업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이에 엄 청장이 취임 후 구축한 시스템이 '첫 만남 서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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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진엽 경남지방 중소기업청장. / 박일호 기자

"올해 중앙 부처와 지자체에서 운용하는 정책 자금만 해도 130개가 넘을 만큼 중소기업 지원사업은 다양합니다. 반면, 중소기업 정책 인지도는 23.6% 수준으로 매우 낮습니다. 경남지역 23만 중소기업 중 28%만이 정부지원 제도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직접 만나보니 중소기업 지원 시책을 전혀 모르거나 어디로 문의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사장들이 너무 많아서 적잖게 놀랐습니다."

경남중기청은 전화 한 통이나, 팩스 한 통만 보내면 직원이나 비즈니스지원단 전문가가 18개 시군 어디라도 해당 중소기업을 찾아가서 지원 정책을 설명하고 문제를 해결해주는 '첫 만남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한 기업은 첫 만남 서비스를 통해 관세를 2000만 원 환급받았습니다. 작은 중소기업에 2000만 원이 얼마나 큰 돈입니까? 중소기업 10곳 중 7곳은 지원 신청이 전혀 없는 업체인데 이유는 반반입니다. '몰라서'가 50%이고, '알아도 서류 작성 요령을 몰라서'가 50%입니다. 50인 미만 업체가 90%다 보니 인력이나 여건이 안 되죠. 이런 업체 컨설팅과 서류 작성을 돕는 것도 경남지방청의 주요 업무입니다."

"현장에 문제와 답이 있다"

"지방 중기청장은 사무실에 있는 비율을 20%로 줄여라."

주영섭 중소기업청장의 지침이기도 했고 앞서 취임한 엄 청장의 지론이기도 했다. 본청 경영지원국, 정책국, 기획조정관실을 거쳐 비서실장을 지낸 엄 청장은 현장을 제대로 경험하고 싶어 한정화 전 중소기업청장에게 경남 파견을 신청했다. 산업단지가 밀집돼 있고 하청업체가 많아 중소기업 현장 목소리를 액면 그대로 듣기에 제격이라고 판단했다고.

"최근 경기 침체로 취임 당시보다 지역 중소기업들의 체감경기가 나빠진 것이 사실입니다. 국제유가 하락과 세계 교역량 감소로 수출이 감소하고 주력산업인 조선업이 구조조정을 겪는 등 지역 관련 중소·중견기업들의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조선업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 논의 때에는 조선업과 조선 기자재 업체를, 한진해운 법정관리 이후에는 한진해운 협력사를, 태풍 차바 피해 시에는 피해 중소기업 등을 매주 5개 업체 이상 방문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모든 해결책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지만 경영난을 겪는 기업들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방문한 기업에 대해서는 방문카드를 작성해 애로 해소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엄 청장은 현장에서 들은 기업 애로 첫 번째는 '자금 운영'을 꼽았다. 특히 최근에는 금융권에서 조선 업종이라는 이유만으로 대출·보증금 발급을 기피하거나 만기 연장을 거부하고 대출 조건을 불리하게 변경하는 등 과도한 상환 요구를 하고 있어 조선 기자재 업체가 생존을 위협받는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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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진엽 경남지방 중소기업청장. / 박일호 기자

"리스크 부담이 있어 신용대출 보증 기한이 짧고 심사가 엄격한 것은 이해가 되면서도 해당 중소·중견기업들이 겪는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건조 역량과 기술력이 위축되거나 사장되지 않고 설계분야 등 우수한 인력이 중국 등 경쟁력에 유출되지 않도록 현장의 목소리를 잘 전달하고 있습니다. 장기 전망과 원칙에 입각한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 있는 실업과 지역 경제 어려움에 대한 보완대책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엄 청장은 현장에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전국적으로 동시에 열린 코리아세일페스타 기간 경남에서 참여한 전통시장을 찾은 엄 청장은 상인들 의식이 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명칭이 '코리아 세일 페스타'면 시장을 찾은 도민들은 기본적으로 할인행사가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축제만 있고 상인들이 할인은 전혀 하지 않더라고요. 여러 상황으로 어려운 것은 이해가 가지만 상인들도 시장을 찾는 소비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일 년에 한 번 정기적으로 꾸준히 열릴 예정인데 이 기간 만큼은 감사 세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올해는 대형유통점과 같은 기간 열렸지만 기간도 달리하고 상인 교육을 통해 전통시장 변화를 이끌어 낼 생각입니다."

"중소기업 활성화가 한국경제 답이다"

지표상으로 한국의 전체 고용률은 지난해 65.7%로 청년(15~29세) 고용률은 40% 안팎에 머무르고 있다. 이는 OECD 가입국 중 가장 낮은 수치다. 지난해 대학 진학률은 70.9%가 넘는데 이들 고학력 대졸자들이 선호하는 일자리는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중소기업 인력 수요는 전문대 이하가 50%를 넘고 양자 간 불균형이 크다. 중소기업연구원의 조사(2015년 6월)에 따르면 인력 채용 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중소기업의 응답 비율은 80.5%에 달하는 등 일자리 미스매치가 심각한 사회문제도 대두하고 있다.

기업은 구인난, 청년층은 취업난이라는 부조화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엄 청장은 한국 경제의 미래는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이라고 단언했다. 고용 창출 측면에서다.

"미스매치의 주요 원인으로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임금 격차를 들 수 있습니다. 2015년 기준으로 대기업 월평균 임금이 479만 원인데 중소기업 월평균 임금은 289만 원으로 약 60% 수준입니다. 중소기업에 대한 대국민 인식도 근로 조건, 안정성 면에서 54.6점으로 대기업의 72.8점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입니다. 청년은 취업하지 않고 중소기업은 울며 겨자 먹기로 외국인노동자를 고용합니다. 외국인 노동자 역시 최저임금을 보장해주면서 숙식을 제공해줘야 하기 때문에 중소기업 부담은 더욱 커집니다. 상업고, 공업고 역할이 다시 강화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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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진엽 경남지방 중소기업청장. / 박일호 기자

엄 청장은 인건비를 아끼고자 국외지사를 둔 대기업 고용 창출은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중소기업청은 특성화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중소기업 취업 맞춤반을 운영하고, 특성화고와 전문대학(창원문성대학)을 연계해서 4~5년 과정으로 중소기업 현장 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기술사관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중소기업 사업주와 근로자가 공동으로 적립한 금액을 5년 후에 근로자에 목돈으로 지급해 대기업과의 임금 격차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내일채움공제'를 운영하고, 중소기업에서 5년 이상 장기 재직한 무주택 세대주에 대해 아파트 특별분양 추천 등 혜택을 주고 있다.

엄 청장은 중소기업 근로자의 다양한 혜택에도 제일 중요한 인식 개선이 쉽지 않다고 한숨을 쉬었다. 중소기업 인식 개선을 위해 근무 여건이나 직원 육성에 힘을 쏟는 우수 중소기업을 방문해 인식 개선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청년 실업이 심각해지면서 청년 창업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창업은 구직활동보다 훨씬 어려운 과정으로 성공 창업을 위해서는 아이디와 열정뿐만 아니라 전략, 자금, 판로, 네트워크 등 갖추어야 할 부분이 많다.

엄 청장은 경남중기청의 가장 큰 장점을 관계 기관 간 협업을 통한 창업 네트워킹을 꼽았다.

"경남은 엔젤클럽이 7개 운영되는 등 전국 대비 엔젤투자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편입니다. 경남창조경제혁신센터와 창업선도대학, 청년창업사관학교, 1인 창조 비즈니스 지원센터 등 청년창업 관련 인프라가 다른 지역보다 잘 조성돼 있죠. 창업에 뜻이 있는 예비 창업가들은 이러한 지원 기관들을 방문해서 상담도 받고 준비 중인 사업모델이 있으면 조언을 구해 투자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적이고 참신한 내용으로 구체화하세요. 청년 창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환경이 조성되려면 사회적으로 어려서부터 기업가 정신 교육이 중요한데, 창업동아리나 청소년 비즈쿨 등에 참여하는 학교들이 많아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문턱 낮은 경남지방청 만들겠다

"지방 중소기업청은 정책을 현장에 실현하고 알리는 서비스기관입니다."

이 이야기는 인터뷰 전부터 엄 청장에게서 자주 듣던 말이다. 엄 청장은 중소기업·소상공인을 만날 때마다 권위적인 중소기업청 직원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을 달라는 말로 간담회를 마무리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엄 청장이 당부하는 늘 말이 있다. 하루 10분 투자다.

"어려움을 호소하는 기업 대표들에게 늘 당부하는 게 하루 10분 투자입니다. 스마트폰 앱으로 '기업마당'을 다운로드 받으면 분야별 지원 정보와 중소기업 CEO가 알아야 할 주요 정책 위주로 엄선한 정책 안내 책자를 전자책 형태로 볼 수가 있습니다. 특히 규모, 수출액, 직원 수 등 써넣으면 조건이 되는 맞춤형 지원 정책을 알려줍니다. 며칠 들여다보면 금방 회사에 유리한 정책이나 방향을 찾을 수 있는데 아무리 강조해도 안 따라오는 업체들이 있어 늘 안타깝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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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진엽 경남지방 중소기업청장. / 박일호 기자

또 엄 청장은 중소기업인들에게 중기청의 잦은 방문을 당부했다. 머리를 함께 맞대보자는 말이다.

"정부 정책 자금 필요 없이 사업을 운영하면 가장 좋겠지만 위기가 찾아오게 마련입니다. 그럴 때 문턱을 밟고 한 단계 올라설 수 있도록 돕는 게 우리 역할입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우리 경제의 근간이자 서민경제의 뿌리입니다. 최근 전체 수출이 감소하는 상황에서도 경남지역 중소·중견기업 수출은 5.2% 증가하는 등 경제회복에 희망이 되고 있습니다. 힘든 작은 기업들은 문턱 닳도록 중기청을 방문해서 물어보고 어려움을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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