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계시는 경기도 부천을 다녀왔다.

어머니를 먼저 뵙고 강원도 속초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려 했으나 일정을 그르쳤다.

우리 집 실세인 딸이 한 살 터울 사촌 언니와 놀다 발가락을 다쳐 깁스를 한 탓이다.

실세는 언니와 더 놀아서 좋다며 붕대 감은 발을 흔들고 또 흔들었다.

그 철딱서니를 보며 비선 실세인 아내와 웃고 또 웃었다.


경기도 부천에서 부산으로 오는 길에 느닷없이 경북 영주를 들렀다.

가까스로 가족이 맞춘 휴가를 공치는 게 아쉬웠다.

부천에서 부산까지 안 그래도 먼 길,

크게 에둘러가지 않는 곳을 고민하다 떠올린 곳인 부석사다.


목발을 짚고도 신난 딸을 업고 무량수전 앞 가파른 계단을 올랐다.

딸 몸이 더 크거나 내 몸이 더 버티지 못해 곧 없을 일이라 생각하니 버겁고 또 섭섭했다.

무량수전 앞에서 그 어여쁨을 더듬으며

말을 고르고 또 골랐을 배순우 선생이 남긴 글을 찾아 읽어줬다.

이렇게 시작하는 글이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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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이 알아듣기에는 버거운 단어가 섞였다는 것은

한참 읽고 나서야 눈치챘다.

분명히 단어가 낯설었을 텐데 딸은 생글생글 웃으며 귀를 기울였다.

능청스럽게 '좋은 아빠' 퍼포먼스를 거든 셈이다.


말 한 마리 덜컥 사 줄 살림은 아니다.

딸이 가고 싶은 학교에 마음대로 넣을 능력도 없다.

물려 줄 번듯한 부동산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만큼만 허락돼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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