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물의 보고답게 기반시설 갖춰갈 것"

대한민국 대표 수산업 도시, 통영

통영. 굳이 첨언하는 게 무색할 정도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수산업 도시임에는 분명하다. 통영에는 '통영수협' 외에도, 사량수협과 욕지수협이 따로 운영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업종별 수협'이라 할 수 있는 기선권현망수협·멍게수하식수협·근해통발수협·굴수하식 수협 등이 있다. 통영에만 모두 7개의 수협이 존재한다.

이 중 통영수협은 지난 2014년 설립 100주년을 맞이했다. 통영에 산재한 수협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통영수협에서 분리 독립해 사량·욕지 수협이 생겼고, 어입인들의 필요와 요구에 의해 업종별 수협이 하나둘씩 설립된 것이다. 그러니 어업인들 중에는 통영수협 조합원이면서도, 근해통발수협이나 멍게수하식 수협의 조합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들 수협은 서로 협력하는 가운데서도 민감한 갈등 사안을 조정해가고 있었다.

조합장.jpg
▲ 통영수산업협동조합 김덕철 조합장. / 박일호 기자

지난해 조합장 동시 선거에서 당선된 김덕철(61) 조합장은 일찍이 통영수산전문학교(현 경상대학교 통영캠퍼스)를 졸업한 후 외항선원으로 온 바다를 누볐고, 가업을 이어받아 쌍끌이 어선을 운영해 왔다. 통영에서 나고 자라 바다에서 잔뼈가 굵었고, 생선을 비롯한 온갖 수산물과 함께 동고동락해온 셈이다.

그가 그리고 있는 통영 수산업의 앞날은 어떤 모습일까? 그는 '통영의 바다'가 국내는 물론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수산물의 보고라는 데 방점을 찍었다. 앞으로 그 미래상 역시 밝다고 했다. 그런들 현재의 모순을 바로잡을 준비가 안 된 조직은 '밝은 미래'의 과실을 맛보지 못하는 법이다. 김 조합장은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위판장 규모 확장, 시설 현대화가 당면 과제

김 조합장은 가장 시급한 통영수협의 현안을 이렇게 풀어놓았다.

"지금 조합 위판장 앞이 도로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임시로 도로를 사용하고 있는 건데, 민원이 발생할 소지가 항상 있습니다. 전국 어디에도 이런 위판장은 없을 것입니다. 위판 작업을 원활히 할 수 있는 자동화 시설을 설치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해수부의 항만기본계획에 20m 정도 매립을 할 수 있는 안이 반영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량을 소화하기도 어렵고,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닙니다."

Q. 왜 이런 기형적인 모습이 되었나요.

"통영은 땅이 좁습니다. 거의 다 매립한 땅이라 할 수 있어요. 옛날 통영 사진 보면 산과 바다가 거의 붙어 있습니다. 지금 통영수협 자리도 옮겨온 곳인데, 자꾸 매립이 되니까 바다와 인접한 이곳까지 오게 됐습니다.

25년 전 지은 건물인데, 지금처럼 물량이 계속 늘어날지 예측을 못 하고 지었습니다. 통영에 오면 다른 곳보다 생선 가격을 좀 더 쳐주니까 객지 배들이 많이 들어옵니다. 또 지금은 대형 선박들도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수산업 규모는 계속 커지는데 우리는 25년 전 인프라에 안주하고 있는 셈이어서 안타깝습니다."

김 조합장이 통영수협 위판장 확장을 강조하는 데는, '통영'이라는 명성만으로 수산업 메카라는 지위를 버텨낼 수 없다는 위기감도 작용하고 있었다.

현황.jpg
▲ 통영수산업협동조합 김덕철 조합장. / 박일호 기자

"통영수협 위판 물량이 전국 10위권 안이었는데, 지금은 업종별 수협이 생기면서 20위권입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전남권의 수산업 규모가 급팽창했습니다. 경남이 어업 기술이 가장 발전한 곳이었고, 그중에서도 통영이었는데, 그 기술이 전남 쪽으로 옮겨가고 평준화되다 보니 바다가 넓은 전남권과 충청권 어획량이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 오징어나 명태가 잘 안 되니까 강원도는 내리막이고 전남, 충청권은 상향 곡선입니다. 옛날에는 경남이 전국 생산 1위였는데, 전남에 그 자리를 내줬습니다. 어업 인구도 전남이 많아졌어요. 위판장 규모를 늘리고, 시설 현대화를 하는 게 당면과제가 되었습니다."

Q. 통영에 7개의 수협이 있습니다. 이게 약점인가요, 강점인가요?

"업종별로 자기들 목소리를 내려면 수협이 있어야 합니다. 솔직히 서로 불편하긴 해요. 신용사업만 하더라도 제 살 깎아 먹기 측면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분들도 같은 업종끼리 뭉쳐서 전국적으로 목소리를 내려면 그게 필요합니다. 간혹 경매할 때 서로 영역침범이라며 갈등이 발생하곤 합니다."

Q. 올해 여름 고수온 여파로 인한 집단 폐사와 콜레라 사태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전에는 적조 때문에 집단 폐사가 있었고, 올해는 고수온 때문에 많이 죽었습니다. 적조 때와 비교하면 피해 규모는 비슷한데, 고수온 폐사는 보험 적용이 안 되니까 괴로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조선산업 불황과 콜레라 이겨 내야

은은한 미소를 잃지 않고 차분하게 이야기하던 김 조합장은 '콜레라'를 언급할 때 약간 언성을 높였다.

"한 달 정도 거의 작업을 못 했습니다. 잡아도 안 팔리고 가격이 안 되니까요. 언론도 확실히 알고 써야 합니다. 질병관리본부에서 처음에는 정어리 먹고 콜레라 환자가 나왔다고 했다가, 뒤에는 메가리(전갱이)라고 했고……. 정어리와 메가리를 구분을 못 하니까 그런 겁니다. 생선이 대부분 한바다에 살지, 연안에 사는 고기는 없습니다. 한바다에서 바닷물을 채취하지 않고 하수구 인접한 가까운 데서 채취하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오죽했으면 질병관리본부에 데모하러 가자고 수협중앙회에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조선산업 불황으로 통영 역시 경제적 위기를 겪었다. 그러나 거제와 비교하면 그 여파는 덜한 편이다. 그 기저에는 탄탄한 통영 수산업이 자리 잡고 있는 듯했다.

외.jpg
▲ 통영수산업협동조합 김덕철 조합장. / 박일호 기자

"맞습니다. 그나마 통영 경제가 유지되는 건 수산업 덕택입니다. 우리가 자랄 때는 통영 인구의 75%가 어업에 종사했습니다. 그때는 조선소나 관광 인프라가 없었는데도, IMF를 거의 겪지 않았을 정도예요. 사실 통영 같은 곳이 없습니다. 부산 공동 어시장의 한해 위판액이 4300억 원 정도인데, 통영이 그에 맞먹습니다. 생선부터 어패류까지 질 좋고 다양한 어종이 잡히는 데는 통영이 유일합니다."

Q. 귀어를 하는 젊은 층은 많나요?

"무턱대고 귀어를 하는 것보다, 부친의 가업을 이어받는 형태로 오면 빨리 적응들을 하는 것 같습니다. 어릴 때 보고 느낀 게 있고, 아버지 도움도 받으니 수월하겠지요. 요즘 젊은 사람들이 바닷일을 안 하려고 해서 문제지, 도시에서 월급쟁이 하는 것보다야 적응만 되면 바다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이 많을 겁니다.

물론 선원 일이 대표적인 3D 업종이긴 합니다. 그래도 우리 때야 배에서 기름 뒤집어써 가면서 배를 탔습니다. 그렇게 선장도 되고 기반도 잡아 왔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젊은 사람들은 기관사 자격증을 거들떠도 안 보는 것 같습니다. '자격증 따봐야 배 타는 것 밖에 더 하겠느냐'는 생각들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Q. 수산업이 비전이 있다고 하지만 요즘 어획량이 줄어드는 추세라고 하는데요.

"양이 줄어들면 그만큼 단가는 올라갑니다. 어류 소비량은 또 꾸준합니다. 지금도 수입하는 생선이 엄청 많습니다."

Q. 어업현장에 있는 선주이시기도 한데, 조합장 출마 배경은 무엇인가요.

"어업인들 권익을 위해서입니다. 어업인들 중에 벌금 안 낸 사람이 없습니다. 대부분 범법자입니다. 현실과 맞지 않는 법을 바꾸고,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소외되는 어업인들을 도와주고 싶어요. 일제시대 때부터 내려오는 불필요한 규제가 너무 많습니다. 세월호 사태가 장비가 부족해서 일어난 게 아닙니다.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이 문제였어요. 그런데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사람들은 현실적 고려 없이 일괄적으로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시달만 합니다. 밑바닥 현장을 너무 몰라요."

Q. 통영 수산업 역시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시점이지 않습니까?

"요즘 6차 산업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어선에서 잡은 고기를 직접 가공해 바로 마트에 내다 파는 유통구조 등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통영 바다가 워낙 좋은 바다입니다. 우리가 물려 줄 자연 가운데 통영 바다처럼 좋은 데가 없어요. 어자원만 보호해주면,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자랑거리입니다."

통영수협 조합장실에서는 강구안이 훤히 내다보였다. 바다는 잔잔했고, 어선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흔히 나폴리를 끌어들여 '미항'이라고 이름 붙이곤 하는 곳이다. 우리는 '미항'을 떠올리며 비린내와 선박 기름 냄새를 애써 떼어내려고 하지만, 그 비린내와 기름 냄새 없이는 '미항'이 존재할 수도 없을 터이다. 김 조합장은 비린내와 기름 냄새와 함께해온 어업인이었고, '강구안'의 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