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문학을 품다

흰 종이에 검정 글자, 한 자 한 자 글자를 쓰는 소리…

'옴니글로(omniglro.com)'는 글쟁이들의 공책을 닮았다. 군더더기 없는 기능들이 아날로그적이기도 하다. 누구나 글을 올릴 수 있고, 누구나 들어와 글을 읽을 수 있는 이 공간은 올해 3월 오픈한 글쓰기 플랫폼 옴니글로다.

IT와 문학, 그리고 글 짓는 사람들이 만나는 곳, 지역에서 뭉글뭉글한 감성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기업 이노엡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옴니글로를 만들고 운영하는 IT 벤처기업 이노엡의 이진희(36) 대표를 만났다. 글쓰기 플랫폼을 구상한 건 시인으로서 늘 시를 짓던 아버지의 모습을 봐온 덕분이라고 했다.

일부러 작은 회사에서 일 배웠다

1인 기업으로 옴니글로를 창업한 이 대표는 부산에서 보낸 대학 시절 5년을 제외하고는 창원(마산)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냈다. 대학에서는 의상디자인을 전공했다. 미술과 디자인을 좋아했던 게 전공을 택한 이유이기도 했지만 디자인보다는 의상 산업에 대해 알고자 했던 마음이 더 컸다. IT 기업을 운영하는 모습과 의상디자인 학도였던 시절이 잘 연결되지는 않지만 이 대표가 머릿속으로 그리던 방향은 늘 같았다고 했다. 그녀의 관심은 늘 '창업'이었다.

대학 졸업 후에 곧바로 취업을 했다. 부산에서 학교를 졸업했지만 이 대표는 고향인 마산으로 왔다. 그리고는 소규모 스타트업 회사들의 문을 두드렸다. 대기업 한 부분의 부품처럼 일을 하는 것보다 작은 회사에서 전반적인 업무 과정을 다 배우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물론 창업을 염두에 둔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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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희 이노엡 대표. / 서정인 기자

"아주 막내부터 임원진까지 하는 모든 일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작은 회사 위주로 찾았어요. 입사한 곳이 기획사였어요. 광고기획사 비슷한 곳이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몰랐는데 제가 글 쓰고 디자인하는 창의적인 일을 좋아하니까 적성을 살릴 수 있겠다 싶어서 들어갔어요. 정말 다양한 일을 거기서 배웠죠."

그렇게 6년 동안 일을 하던 중 자연스럽게 터닝포인트가 찾아왔다. 아이를 낳았고 몸이 우선이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산후조리에 집중했다. 그리고 창업에 대해 막연하게만 했던 생각을 그 시기에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었다.

상상해오던 글쓰기 플랫폼 현실화

창업에 대해 계획을 세우던 시기였다. 이 대표는 길을 걷다 우연히 한 광고물을 본다.

"제가 창업한 2011년도에 청년 창업가들을 모집해서 육성하는 경남테크노파크 청년창업아카데미 1기 프로그램을 최초로 진행했어요. 그 프로그램을 홍보하는 광고물을 보고 계획서를 가지고 가서 신청했죠. 1기로 발탁이 됐고 청년창업아카데미 프로그램 과정을 밟아나가면서 창업까지 할 수 있었어요."

회계, 세무, 기업가 정신 등을 배우는 교육 프로그램부터 사무 공간과 많지는 않지만 초기에 든든하게 느껴질 자본금도 지원받았다.

이 대표는 IT 벤처기업을 창업했다. 전공이나 지금껏 일해 온 직종과도 관련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IT 분야로 시선을 돌린 건 이전 직장에서의 경험으로 이 분야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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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희 이노엡 대표. / 서정인 기자

"기획사 일 자체가 특히 산업의 트렌드를 빨리 캐치해야 하는 특성이 있거든요. 기획사에 있을 때가 2009년도였는데 5년만 지나도 IT 서비스 흐름이 달라질 거고, 온라인 문화도 성격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늘 생각해왔던,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IT 서비스의 성격도 있었고요. 준비를 차근차근 했어요. 그 서비스가 지금 저희 이노엡의 글쓰기 플랫폼 옴니글로예요."

2012년도에는 학교에 들어가 컴퓨터공학 학사과정을 거쳤다. 이노엡을 창업한 시기와 옴니글로 서비스를 시작한 시기 사이에는 몇 년간의 공백이 있다. 관련 공부와 용역 중심의 일을 하며 회사를 유지시키던 기간이었다.

누구나 작가가 되는 곳, 옴니글로(OMNIGLRO)

옴니글로는 올해 3월부터 베타서비스를 시작했다. 'OMNIGLRO'는 '모든 것', '전체'를 뜻하는 접두어 'Omni'와 순 한글 '글로'를 더해 만든 이름으로 '모든 것을 글로 표현하고 싶은 사람을 위한 서비스'라는 뜻을 담았다. 간단한 가입과 인증 이후 자유롭게 글을 쓰고 올릴 수 있는 옴니글로에는 현재 1500여 편의 글이 올라와 있다. 지난 6월 문학 매거진 옴니글로 창간호도 발간했다. 옴니글로는 시, 소설,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의 글로 채워지고 있다.

글쓰기 플랫폼을 꿈꿔온 건 시인인 아버지에게서 받은 영향이 컸다. 어린 시절부터 글 쓰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고 진중하게 글을 쓰는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가 수요가 있을 거라는 걸 확신해왔다. 이 대표의 아버지는 옴니글로를 이용하시지는 않지만 늘 관심을 가지고 모니터링을 하신다고 했다.

"막상 사이트를 열어드리니 아버지는 잘 안 쓰세요.(웃음) 자식이 운영하는 사업이다 보니 조심스러우신가 봐요. 대신 조언을 많이 해주세요. 옴니글로에 글 올려주시는 분 중에 작가는 아니지만 정말 좋은 글을 올리는 분들이 계신데 그런 글을 보면 언제든 저에게 말씀해주시기도 하고요. 지켜봐 주시니 힘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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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노엡의 사무실. / 서정인 기자

옴니글로가 현재 유일한 글쓰기 플랫폼 서비스는 아니다. 하지만 속마음을 담아내도 될 듯한 옴니글로만의 분위기와 일 년에 두 번 출판되는 매거진은 옴니글로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옴니글로는 끌어당기는 사용자층이 분명하다.

"인간은 누구나 조금은 글로서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같은 SNS 서비스에는 정보성 글을 많이 올리잖아요. 옴니글로는 진중하고, 더 문학적이고, 속마음을 담은 글을 드러낼 수 있는 사이트로 구상했어요."

직접 가입해 글을 쓰는 과정까지 해보니 내 블로그에 글을 적는 느낌과 비슷하다. 읽을 때는 가입할 필요 없이 1500여 편 글을 모두 읽을 수 있다. 사적인 공간인 듯한 느낌을 주는 반면 실제로는 아주 오픈된 공간이다.

"처음 기획 자체가 최대한 정제시켜서 최소한의 기능으로 오픈하자는 거였어요. 또 저희는 회사 색깔을 옴니글로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어요."

옴니글로의 여백을 채워주는 사용자 중 30대 여성의 비율이 가장 높다고 했다. 전문 작가가 아닌 일상 속에서 틈틈이 글을 써오던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래서인지 일상에서 느낀 마음을 풀어낸,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글들이 자주 눈에 띈다.

"30대 여성 사용자가 가장 많은데 또 50~60대 사용자분들도 꽤 계세요."

이메일, 필명, 비밀번호를 설정하는 정도로 간단하게 가입할 수 있다 보니 컴퓨터에 능숙하지 않은 중장년층도 무리 없이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겠다 싶었다.

이 대표는 앞으로도 옴니글로 아마추어 작가들의 글로 일 년에 두 번 매거진을 발간할 계획이다. 지난 6월에 나온 옴니글로 창간호의 주제는 '소통'이었다. 옴니글로 사이트에서 활동하는 아마추어 작가 중 22명의 글이 실렸다. 누구도 앞으로의 출판 산업을 긍정적으로 예측하지 못하는 요즘, 굳이 매거진을 출판까지 한 이유가 있을까.

"출판 산업이 어렵다는 건 맞아요. 하지만 책이 가진 본질적인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저는 책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매거진을 만들고 출판해서 배포까지 하고 있지만 이걸로 수익이 나지는 않아요.(웃음) 하지만 매거진 옴니글로는 이노엡이 하는 서비스 가치를 반영하고 또 상징성을 가지고 있어요. 그것만으로 됐다고 생각해요. 정식 작가가 아니라도 한번은 참여해서 이름과 글을 세상에 내보일 수 있는 매거진. 옴니글로가 그런 통로가 되었으면 해요."

옴니글로 덕분에 출판사와 출판 계약을 맺은 작가가 있다고 했다. 이 또한 뿌듯한 성과다.

"옴니글로에 있는 모든 글은 글을 쓰신 분들에게 100% 저작권이 있어요. 저희 사이트가 소문이 나기 시작하니까 출판사에서도 좋은 글이 있나, 좋은 작가들이 있나 들어와서 보시는 거예요. 저희는 중간에서 전혀 개입하지 않아요. 수수료를 받거나 그런 것도 전혀 없습니다."

매거진 옴니글로는 현재 전국 독립출판서점 25곳, 옴니글로와 북파트너 협약을 맺은 카페 5곳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옴니글로 사이트를 통해서도 구매할 수 있다.

콘텐츠 플랫폼 서비스에 강하다

이 대표는 이노엡(INNOEP)이라는 이름에 '혁신적인 디지털 관점을 가진 서비스를 만들어내자', '혁신적인 디지털 서비스를 널리 배포하자' 두 가지 뜻이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이노엡은 IT 기술을 베이스로 하는 회사이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해 연구하면서 다양한 서비스를 구상하고 있는 중이에요. 특히 그중에서도 콘텐츠 플랫폼을 만들어내는 기술이 뛰어나다고 보시면 돼요."

좋은 콘텐츠와 사용자가 웹을 기반으로 만날 수 있는 플랫폼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일이다. 그 첫 번째 모델이 옴니글로 사이트다. 현재는 베타 서비스 중이지만 수익 모델을 더한 정식 버전 오픈을 준비 중이며 한창 업그레이드된 사이트가 될 것이라고 이 대표는 힘주어 말했다. 이노엡의 콘텐츠 플랫폼 기술은 지금 문학과 결합했지만 방향은 무궁무진하다.

"'웹툰 플랫폼'도 개발은 한 상태예요. 옴니글로 하고는 전혀 다른, 웹툰 플랫폼으로서의 성격을 가지면서 광고주들이 자유롭게 광고를 넣을 수 있도록 매칭해주는 사이트죠. 개발은 끝났고 사업화를 검토 중인데 저희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무기이기도 합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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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 벤처기업 이노엡 직원들. (왼쪽부터)조부관, 이현국, 강아름, 심지민, 박수봉, 이송이, 이진희 대표. / 서정인 기자

"창업 역시 직장인의 일상생활"

1인 기업으로 시작한 이노엡의 직원은 현재 7명이다. 이 대표는 창업을 하고 회사를 꾸려나가는 것이 매일 직장에 출근하는 직장인의 일상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대부분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어요. 직장생활이나 창업 중 어느 것이 더 힘들거나 편할 거라는 생각이요. 저는 창업도 일상생활이라고 생각해요. 대단한 일이 아니고 직장에 나가서 일상적으로 일하는 것과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직장 다니는 리더인 거죠. 다른 직장인과 다른 점은 클라이언트를 빼고는 나에게 간섭할 사람이 없거든요. 그래서 자기관리, 특히 시간 관리가 중요하죠."

이 대표는 창업 후 마주하는 상황들을 해결하고 하루하루 나아지는 것을 즐긴다고 했다. 그 말을 하는 모습이 부드러우면서 아주 강해 보이기도 했다. 청년 창업가로 출발해 회사를 운영해오면서 힘들었던 시기가 당연히 있었을 거라 생각하고 질문을 했지만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창업하고 나서 힘든 점이 없었습니다.(웃음) 솔직하게 얘기해서요. 회사를 키워나가는 과정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어려움들을 겪게 되거든요. 자금적인 어려움, 인재를 구하는 것, 개발 과정은 물론이고, 세무, 회계, 인사까지 그런 것들은 창업하는 사람이 당연히 겪어야 하는 일이에요. 배워나가는 일련의 과정일 뿐이죠. 그래서 힘들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의식적으로 하지 않으려고도 노력하고요."

이노엡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이 대표의 자리가 보인다. 택배 기사든 손님이든 이노엡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은 이 대표다. 이 대표는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 방해받지 않고 일하길 바라는 마음, 이노엡을 방문하는 모든 손님들을 제일 먼저 접대하고 싶은 마음.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나온 자리 배치라고 했다.

"일단 이노엡에서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 여기서 성장할 수 있는 회사이길 바라요. 연령대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친구들인데 본인들의 젊은 시절을 여기에 와서 쏟는 거잖아요. 청춘들이 시간을 여기 쏟는 게 아깝지 않게 뭔가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 그런 회사가 되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습니다. 내년에 회사 매출 얼마 달성… 이런 목표는 솔직히 무의미한 것 같고, 그것 외에는 별로 생각해본 게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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