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아~아~ 뜸북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원로 가수 고복수 선생이 부른 '짝사랑'이란 노래 가사다. 짝사랑은 가을이 깊어 가면 어김없이 들을 수 있는 노래다. 심금을 울리며 가슴을 파고든다. 짝사랑 노래의 2절 가사에 나오는 뜸북새는 봄이 되면 찾아와 논에서 우는 그 '뜸북 뜸북 뜸북새'. 뜸부기다. 뜸부기는 번식을 위해 우리나라를 찾아온다. 여름에 새끼를 낳아 돌보고 가을이면 따뜻한 남쪽 나라로 떠난다. 그렇게 뜸북새는 알겠는데 그럼 으악새는? 1절에 등장하는 으악새는 풀일까? 새일까? 풀이란 주장도 있고 새라는 주장도 있다. 으악새가 풀이란 주장은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억새가 바로 으악새란 얘기다. 풀의 경기도 방언이 '으악새'인데 억새가 흔들리며 사각거리는 소리가 슬피 우는 것처럼 들린다는 주장이다. 그러고 보면 억새가 소슬바람에 흔들리고 스치며 내는 소리가 쓸쓸한 가을 느낌으로 다가와 슬프게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 노래를 작사한 작사자의 말로는 노랫말을 쓴 배경을 새소리로 설명한다. 뒷동산에 올라가 보니 멀리서 '으악, 으악' 새 우는 소리가 들려 붙인 이름이란 얘기다. 그렇다면 '으악 으악' 소리 내며 우는 새는 어떤 새일까? 비슷한 소리를 내는 새는 강이나 하천, 논에서 꽤 보이는 왜가리다. 왜가리는 먹이를 응시하며 가만히 서 있다가 사람이나 동물이 다가가면 '왁~ 왁~' 큰 소리로 울면서 경계 음을 낸다. 실제로 우포늪이 있는 창녕에서는 왜가리를 '왁 왁' 우는 새라 해서 '왁새'라 부르기도 한다. 왜가리와 뜸부기는 둘 다 여름 철새다. 가을이 되면 동남아시아로 떠난다. 그래서 더욱 슬프게 울었나 보다. 요즘엔 기후 온난화의 영향인지 왜가리는 겨울에도 꽤 보인다. 혹자는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에는 왜가리가 등장하는 것보다 산에 있는 억새가 등장하는 것이 더 운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가을 운치 내는 데는 뭐니 뭐니 해도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가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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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매산 억새밭.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요즘 산에도 들에도 가는 곳마다 하얀 억새 물결이 장관을 이룬다. 마치 하얀 꽃가루를 뿌려 놓은 듯 무리 지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억새는 전국 각지의 산 정상이나 산기슭에서 주로 볼 수 있다. 건조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잘 자라는 특징이 있는데 같은 억새라도 종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난다. 어린 시절 소 먹이러 산에 갔을 때 소가 제일 좋아했던 풀 중의 하나로 기억된다. 새싹이 돋아나 자랄 때는 소가 잘 뜯어 먹지만 커서 억세어지면 덩치 큰 황소 입장에서도 마구 뜯어먹기엔 조금 힘이 든다. '억새'는 억세다의 '억'에 풀을 뜻하는 '새'가 합쳐져서 '억새'란 이름이 되었다. 이파리가 억센 풀이란 뜻이다. 학교 마치고 낫 들고 소 꼴 베러 다니던 시절 억새 잎에 베인 손가락 흉터는 아직도 억세게 남아있다. 그래도 억새 군락지라도 만날라치면 그날은 아주 맛있는 소 꼴을 벨 수 있어 뛸 듯이 기뻐했던 기억도 난다.

사나이 우는 마음을 그 누가 아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순정

사랑엔 약한 것이 사나이 마음

울지를 말아라 아 아 아 아 아 아

갈대의 순정

말없이 보낸 여인이 눈물을 아랴

가슴을 파고드는 갈대의 순정

못 잊어 우는 것은 사나이 마음

울지를 말아라 아 아 아 아 아 아

갈대의 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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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가리와 갈대.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1966년 가을에 발매된 저음 가수 박일남의 데뷔 음반에 수록된 '갈대의 순정'이다. 박일남은 문주란과 더불어 1960년대를 대표하는 남녀 저음 가수로 인기를 끌었다. 타이틀곡 <갈대의 순정>은 지금까지도 가을이 올 때마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갈대는 갈색 대나무 같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갈'은 '갈색'을 의미하고 대나무 같이 마디를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한자로는 '노화(蘆花)' 또는 '위화(葦花)'로도 불린다. 한가롭고 평화스러운 정경을 읊은 시의 소재로 많이 다루어지고 고전 문학에도 자주 등장하는 꽃이다. 서양에서는 울타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갯가에 울타리 모양으로 자란다는 데서 유래한 모양이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이니라.' 햄릿의 독백이다. 셰익스피어는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 하기도 한다. 아마도 이 무렵부터 갈대는 지조 없는 여인들의 마음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기 시작한 모양이다. 갈대를 인용한 가장 유명한 문구는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의 <팡세>에 나오는 말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많이 외웠던 문구다. 이래저래 갈대는 나약하거나 지조 없이 흔들리는 식물로 인식되어진다. 신경림의 <갈대>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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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뿌리풀과 미루나무.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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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대밭의 개개비.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억새와 갈대랑 비슷한 풀 중에는 달뿌리풀도 있다. 달뿌리풀은 뿌리를 달고 다니는 풀이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자세히 관찰해보면 뿌리가 성큼성큼 달려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겅중겅중 뛰어간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가는 줄기 마디가 뿌리를 달고 뻗어 나가는데 주로 물이 맑은 냇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산골짜기 맑은 물가에 사는 달뿌리풀은 물을 맑게 해주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식물이다.

억새, 물억새, 갈대, 달뿌리풀 모두 얼핏 보면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다. 물론 자세히 살펴보면 차이점을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소 꼴 베는 일 자주 하신 분들은 더욱 쉽게 알아볼 수 있겠다. 서식지를 중심으로 특징을 설명하면 이렇다.

어린 시절부터 막역한 친구 사이였던 달뿌리풀, 갈대, 억새는 어른이 되어 좀 더 살기 편한 곳 찾아 함께 길을 떠난다. 바람 부는 대로 이리 흔들 저리 흔들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살 곳을 찾는다. 숲을 지나 산마루에 도착하니 바람이 몹시도 불어온다. 앞이 툭 틘 산 중턱이라 바람은 더욱 시원하게 느껴진다. 뿌리가 아주 튼튼하고 건조한 곳에서도 잘 자라는 억새는 살기에 안성맞춤인 곳을 찾았다. 경치 좋은 산마루에 뿌리를 내리고 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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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에는 달뿌리풀 뒤에는 억새밭.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반면에 억새보다 팔도 길고 키도 큰 달뿌리풀이랑 갈대는 다시 산 아래로 내려간다. 조금 더 내려가니 개울이 보인다. 계곡을 따라 내려온 물이라 아주 맑고 깨끗한 개울이다. 모래와 흙이 적절히 섞여 있는 개울은 달뿌리풀이 살기에 아주 좋은 조건이다. 뿌리가 막 달려갈 수 있겠다 싶은 달뿌리풀은 환하게 떠서 밝게 비추는 달 바라보며 들판이 보이는 산기슭 하천에 정착하기로 결심한다. 갈대는 생각이 다르다. 갈 데까지 가보는 것도 좋겠다 싶다. 들판을 지나 강을 따라 부지런히 걸어가는데 바다가 가로막는다. 더 이상은 갈 수가 없다. 바다가 보이는 강가에 자리 잡아 살기로 마음먹는다. 그래서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 산에서 내려와 개울을 지나고 강을 따라가다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갈대가 산다.

그래도 갈대는 외로울까봐 봄이면 멀리 강남에서 친구들이 찾아와 가을까지 같이 지낸다. 갈대밭에 집을 짓고 새끼를 키우는 개개비들이다. 개개비는 갈대밭이 사라지면 집 지을 곳이 없어 같이 사라질 운명에 처한 조류다. '개개개 비비비'하며 운다고 개개비란 이름으로 불리는 새다.

억새는 비슷비슷한 종류가 여럿 있는 데 반해 갈대와 달뿌리풀은 사는 곳만 다르고 생김새가 매우 닮았다. 달뿌리풀은 우리가 사는 주변 하천 곳곳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다. 억새가 유명한 곳으로는 창녕 화왕산, 장흥 천관산, 영남 알프스, 정선 민둥산, 합천 황매산이 있다. 갈대가 많은 곳은 순천만, 고성 마동호, 충남 서천 신성리 등이다.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억새, 갈대, 달뿌리풀 어떻게 다른지 확인도 하면서 가까운 곳에라도 한 번쯤 다녀올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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